스탠리 큐브릭의 역작, <샤이닝>이 재개봉한다. 스티븐 킹의 1977년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샤이닝>(원제 The Shining)은 스탠리 큐브릭과 소설가 다이앤 존슨이 공동 각본을 쓴 공포 영화다. <차이나타운>(로만 폴란스키, 1974), <이지 라이더>(데니스 호퍼, 1969) 등으로 스타가 된 잭 니콜슨과 칸 영화제에서 <세 여인>(1977)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셜리 듀발이 영화의 메인 캐릭터, 잭과 웬디 역을 맡았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회복 중인 알코올중독자 이자 작가인 ‘잭 토렌스’(잭 니콜슨)다. 그는 아내 ‘웬디 토렌스’(셜리 듀발), 어린 아들 ‘대니 토렌스’(대니 로이드)와 함께 콜로라도 록키산중에 고립된 역사적인 호텔, ‘호텔 오버뷰’의 비수기 관리인 자리를 수락한다. 잭에게는 겨울 동안 호텔을 관리하며 생활고도 해결하고 느긋하게 소설을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한편, 보이지 않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샤이닝’ 능력을 가진 아들 대니는 이 호텔에 드리워진 음산한 기운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의 능력으로 대니는 룸 237호에서 일어났던 참극에 대한 이미지를 보게 된다. 폭설로 호텔이 고립되자 잭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서히 미쳐간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그를 지켜보는 아내 웬디와 아들 대니는 극한의 공포에 시달린다.


'샤이닝' 능력을 가지고 있는 대니

개봉 당시 <샤이닝>은 흥행과 비평 양쪽 모든 평가에 실패했다. 또한 영화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 역시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 공개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킹은 “영화의 전반적인 음산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영화가 너무 평면적(flat)”이고 “영화를 지배하는 악마성이 캐릭터가 아닌 ‘오버룩 호텔’, 즉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길 원했지만 큐브릭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실망을 표현한 바 있다.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셜리 듀발 역시 레지 어워드 (Razzie Awards)에서 ‘최악의 여주주연상’으로 지목 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해를 거듭하며 호평을 받기 시작했고 그 초기의 혹평을 전복해 왔다. 현재 <샤이닝>은 시네필들뿐만 아니라 영화평론가, 영화감독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는 전설의 영화 중 한 편이 되었다. 영화의 개봉 이후 35년이 지난 2012년, 영국 영화 협회의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 (Sight & Sound)가 진행한 영화감독들의 투표에서 <샤이닝>은 역대 최고의 영화, 75위에 올랐다. 2018년, 영화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 의해 "문화적, 역사적, 미적 중요성"으로 미국 국립 영화 등록소에 선정되었고, 2023년 6월 「가디언」지는 <샤이닝>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에서 최고작 중 한 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From The Shining to Carrie: our writers pick their favourite Stephen King movies”).

그 밖에도 영화 <샤이닝>은 주목할 만한 영화적 유산을 남겼다. 이를테면 영화는 <마라톤 맨>(1976), <로키>(1976)를 포함해 이제 막 개발이 되어 출시된 ‘스테디 캠’이 사용된 초기 영화들 중 한 편이기도 하다. 특히 로키산맥을 부유하듯 산과 골짜기를 훑고 지나가는 오프닝 시퀀스는 앞으로 이 산속에서 벌어질 참극을 경고하기라도 하듯 음산하지만 신비롭다. 마치 인간의 하찮음과 자연의 위력을 대조하는 듯한 이 스테디 캠 시퀀스는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한 부분을 전시하듯 웅장하고 심오하다.


[이 부분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매 시대마다 해석을 달리할 만한 수많은 영화적 아이콘과 메타포들로 가득하다. 영화의 평가가 수십 년을 거쳐 변모해 왔던 것은 아마도<샤이닝>의 이러한 이니그마틱(Enigmatic, 수수께끼 같은)한 면모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령 소설가로서의 잭이 소설가지만 글을 쓰지 못하는 와중에 호텔에서 칩거하는 중 살인마로 변모한다는 설정은 ‘Writer’s block’(집필자 장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방황하는 상황)의 공포를 은유했다는 해석을 얻기도 했다. 또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호텔을 소재로 하는 <샤이닝>은 ‘캐빈 피버’(Cabin fever: 귀신 들린 오두막을 배경으로 하는 공포영화) 장르의 완벽한 구현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확실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이 거대한 (그러나 텅텅 비어 있는) 리조트 호텔의 어마어마한 재물, 혹은 재화를 부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니와 웬디에게 호텔 곳곳에 넘쳐나는 음식과 상품들을 소개해주고 있는 '딕'

가령, 잭의 가족이 처음으로 호텔에 입성했을 때 호텔의 총 주방장인 ‘딕’(스캣맨 크로더스)이 웬디와 대니 모자에게 호텔 투어를 해주는데 이때 창고마다 가득 찬 고기와 인스턴트식품들, 술과 음식들을 짧지 않은 시퀀스로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영화의 “한 달 후” 플래시 포워드(flashforward) 이후로도 그간 있었던 그들의 소비는 저장고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호텔은 풍족하다. 어쩌면 산속의 산장 같은 (스티븐 킹의 다른 작품, <미저리>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관습적인 장소 설정이 아니라, 약간은 이질적인, 산 중 럭셔리 리조트라는 <샤이닝>의 설정은 이러한 ‘호텔’의 자본주의적 성정을 드러내기에 더 적합해서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럭셔리 리조트가 죽은 원주민 인디언들이 묻힌 장 소위에 지어졌다는 것은 더더욱 상징적이다).

궁극적으로 그다지 풍요롭게 살지 못했던 잭의 가족에게 갑작스러운 ‘물질’의 홍수는 궁극적으로 계급의 상승이 아닌, 광기와 파괴의 결과를 불러온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던 잭이 호텔에서의 거주와 함께 다시 술에 손을 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영화의 공포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귀신’의 존재에서보다는 사회적 시스템과 구조의 변화에서 오는 인간의 멘탈리티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울 배스의 인터내셔널 개봉 버전 <샤이닝> 포스터

현재까지도 <샤이닝>의 평가는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평과 해석의 홍수 속에 관객들은 더욱더 영화를 추앙하게 될 것이다. 영화 그래픽의 장인, 사울 베스가 디자인한 인터내셔널 개봉 버전의 포스터 카피처럼, <샤이닝>은 “현대 호러의 걸작”으로 손색이 없다. 과연 이번 재개봉 이후의 영화의 평가는 어떨지 매우 기대가 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