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머릿속에 간직한 장면이 무심결에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아니면 잊지 않겠다고 힘주어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 다짐이나 약속일까. 전쟁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을 비추는 다큐멘터리 <206: 사라지지 않는>에서 기억은 생리적 본능도, 의식적 결단도 아닌 특별한 행위다. 땅을 파헤치면서 망각에 저항하고 흙을 털어내며 은폐를 차단하는 사람들. 퍼내고 나르기를 부단히 반복하면서 누군가는 되찾고 싶은 기억을 건져 올리고, 다른 이는 영영 지우지 못할 기억과 대면한다. 땀 흘리며 보낸 계절이 저물어 갈 무렵, 수십 년간 지하에 묻혀 있던 뼈가 모습을 드러내면, 지상은 드디어 새로운 이야기를 얻는다. 유실과 부식 위험에서 살아남은 뼈들은 그 주인의 성별, 나이, 사망 원인에 관한 정보를 하나씩 일러준다. 함께 발견된 장신구와 소지품은 이야기를 한층 풍성케 한다. 두 살배기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사살당한 여자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용케 몸수색을 피한 남자가 라이터 겉면에 제 이름을 새기며 무얼 생각했을지 짐작해보라. 유해와 함께 세상에 드러난 거대한 기억 더미는 개인과 집단, 과거와 현재에 관한 빤한 상식과 흔한 관념을 모조리 뒤흔든다.
영화는 2014년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시민발굴단)을 기록한다. 한국전쟁 시기에 학살로 목숨을 잃은 민간인은 무려 십 만여 명.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영문 모르고 끔찍한 죽임을 당했으나 유가족은 희생자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침묵해야 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정부와 군대의 무자비한 논리는 또 다른 폭력이었다. 국가가 무고한 국민을 해치는 죄를 저지를 리 없기에 국군과 미군이 살해한 이들은 죽어 마땅한 존재가 됐다. 죽음은 ‘빨갱이’라는 증거였다. 산 자는 애도할 권리마저 빼앗긴 채 ‘빨갱이 가족도 빨갱이’라는 낙인에 가로막혀 일생을 시달렸다.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야 시작됐다. 2005년에 출범한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전문가 및 유족과 소통하며 민간인 학살의 실체를 밝혀내는 일에 몰두했으나 애초 계약한 조사 기간마저 채우지 못하고 5년 만에 해체했다. 이후 활동을 마무리하고 아카이빙에 참여하던 조사관을 중심으로 유해 발굴에 관한 논의가 재점화됐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민간인 학살을 또다시 미완의 과제로 덮어둘 수 없다는 책임감은 시민 발굴단 결성으로 이어진다.
시민 발굴단을 구성하는 ‘시민’은 각양각색이다. 과거 위원회에서 일했던 조사관들이 발굴단을 이끄는 가운데, 발굴 시기와 지역에 따라 유족과 자원활동가 등 새로운 인물이 자발적으로 합류한다. 그들은 프로젝트 팀처럼 움직인다. 나이부터 직업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유해 발굴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친다. 영화는 그들 속에 들어가서 박제된 기억이 실존의 행위로 반전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발굴은 기본적으로 육체 노동이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현장으로 출근해서 종일 흙먼지를 뒤집어 쓴다. 카메라는 일의 순서와 내용을 담을 뿐만 아니라 일에 사용하는 도구와 장비 또한 세세하게 비춘다. 발굴단의 일터는 곧 학살 현장이기에 영화는 죽음을 뒤쫓는 무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거대한 구덩이 안과 밖에는 이따금 생기가 감돌기도 한다. 그곳은 일터이자 배움터다. 박선주 교수는 야외 수업을 나온 듯 자원활동가에게 치아 조각으로 시신의 생몰 연대를 파악하는 법을 가르치며 뼈만 남은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자 제안한다. 그렇듯 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공유하고 미처 몰랐던 역사를 손으로 만지며 깨우친다.
민간인 학살은 “모두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공공의 비밀이었다. 시민 발굴단은 이를 캄캄한 지하가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지상에 내놓으며 공공의 진실로 자리 잡게 하고자 애쓴다. 그러한 비밀과 진실 사이에서 여러 목소리가 등장한다. 한 정치인은 마이크를 잡고 외친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의 역사입니다. 왜 과거가 미래의 짐이 됩니까?” 유족은 여전히 겁에 질린 듯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하고, 어떤 조사원은 유해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 나머지 꿈속에서 계시를 듣는다. 한편,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어조를 유지하는 음성이 있다. 편지 형식으로 구성한 내레이션은 단정한 목소리로 거듭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발신인은 감독 허철녕이고 수신인은 그의 전작 <말해의 사계절>(2017)에 출연한 김말해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당한 남편의 아내,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두 아들의 어머니. 국가는 말해를 짐짝으로 여기거나 죄인 취급했으나, 말해는 제 몫의 삶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안간힘 썼다. 2013년 밀양 산골짜기에 위치한 말해의 집 앞에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 강행됐다. 밀양 투쟁에 기록 활동가로 참여한 감독은 그곳에서 말해와 처음 만났다. 인터뷰 마지막에 으레 질문하듯 꿈을 묻자, 말해는 뜻밖에도 “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글을 익혀 내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는 말해의 소망에 응답하듯 감독은 한 글자씩 눌러 쓴 편지를 읽는다. 그녀 인생에 자리한 질곡을 되짚고 거기서 벗어나려 했던 그녀의 의지를 떠올린다. 세상을 떠난 말해에게 가 닿지 못할 편지를 쓰는 감독의 일과 시민 발굴단의 일은 그렇게 영화 속에서 교집합을 이룬다. 발굴단이 유해와 함께 땅속에 파묻힌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애쓰듯 감독은 말해와의 연결고리를 끈질기게 주장하며 기억을 붙든다. 신체를 구성하는 206개의 뼛조각을 온전히 찾아내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감독 또한 말해의 모든 것을 알 수도 들려줄 수도 없다. 다만, 편지 쓰기와 발굴은 죽음을 죽음에만 머무르지 않게 한다. 발굴단은 유해를 “죽었어도 죽지 않은 존재들”이라 일컫는다. 그들은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게 생을 종료 당한 자가 제대로 죽음을 맞이하기를 염원한다. 지난한 세월 끝에 겨우 암흑을 벗어난 유해는 무섭거나 흉측한 대상이 아니다. 그간 외로움을 견뎌줘서 고맙고, 이렇게라도 만나서 반가운 존재다. 말해 또한 고통과 원망 속에서 평생을 보낸 기구한 운명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감독은 불쌍한 아무개가 아닌 사랑하는 할머니로 호명하며 말해를 기린다.
발굴 작업이 마무리되고 편지가 끝나면, 영화가 담은 모든 행위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땡볕에서 묵묵히 흙을 헤집는 발굴단의 손끝에도, 90년 가까이 나와 무관하게 살아온 말해를 ‘내 할머니’로 껴안는 감독의 목소리에도 사랑이 묻어난다. 영화 중반부, 한 노인이 가죽 소파에 앉는다. 손에 들린 액자에는 젊은 남자의 흑백 사진이 들어 있다. 김광욱 씨는 유년 시절에 잃은 아버지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죽은 아버지보다 몇 배를 더 살았으나 과거는 여전히 생생한 고통으로 남아 있다. 그는 설움에 북받쳐 아이처럼 통곡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그 울음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성격으로 반복된다. 김광욱 씨가 합동 안치식에서 막 절을 올린 참이다. 그는 끝내 아버지와 만나지 못했지만 괜찮다고, 발굴단에 참가해 일흔 명의 유해를 찾았으니 기쁘다고 전한다. 아버지, 하고 우는 모습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눈물에 담긴 의미는 달라 보인다. 김광욱 씨는 이제 과거를 서러워하는 대신에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사랑을 지켜보고 응원하던 발굴단이 곁을 에워싸며 함께 울기에 그는 드디어 마음 놓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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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