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도통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기가 찾아온다. 구멍이라도 뚫린 듯 위에서 쏟아지는 빗줄기와 우중충한 잿빛의 하늘이 며칠이고 이어지는 시간. 살갗을 끈적이게 만드는 습기로 가득 차서 도저히 집 밖으로 나설 수 없게 만드는 그 이름은 바로 장마다. 불쾌지수가 최대치를 찍고, 햇빛 한 점 보이지 않아 우울함을 극대화하는 여름 장마를 견디기 위해서 사람들은 에어컨과 짜릿한 쾌감을 주는 액션 무비를 필수로 꼽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1년 365일 중에 비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날은 오로지 장마뿐이다. 조금 많이 습하고 흐리지만, 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오래 볼 수 있는 장마만의 매력이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꿉꿉한 습기를 가시기 위해 액션이나 스릴러처럼 자극적인 영화를 찾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겠지만, 1년에 얼마 되지 않는 장마의 정취를 즐기기 위해선 비가 오는 영화를 고르는 것은 어떨까?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는 연인들의 모습.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가방을 머리 위에 덮고 폭우가 쏟아지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모습. 하루가 멀다 하고 무료하게 내리는 비에 축축하게 젖은 도시를 오가는 트렌치코트의 사내와 폭우를 피해 건물 안에 모인 청춘들의 초상. 어쩌면 장마의 정서를 온전하게 만끽하기 위해서는 스크린 속 인물들도 당신과 함께 비를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부터 장마에 잘 어울리는 비로 가득 찬 각국의 영화를 소개해 보려 한다. 기왕이면 습기와 더위를 가시기 위해 맥주 한 캔, 혹은 하이볼 한 잔을 준비한 채로 이 영화들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와니와 준하>(김용균, 2001)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영화의 멜로가 지니는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봄날은 간다>(2001)로 대변되는 허진호 감독과 <비 오는 날의 수채화>(1989)부터 <클래식>(2002)까지 이어지는 곽재용 감독의 영화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장마가 이어지는 여름날만큼은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2001)를 이길 수 있는 작품이 있을까? 와니(김희선)가 애니메이터로 재직 중인 회사와 본가가 위치한 춘천, 그리고 준하(주진모)의 집이 있는 옥수동의 풍경들. (사실 와니의 집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이 촬영지다.) 두 연인이 항상 거니는 좁은 골목과 아기자기한 포장마차에는 어김없이 여름 장마가 내린다. 와니와 동거 중인 준하는 이따금 우산을 챙기는 것을 까먹는 그녀에게 머리라도 젖지 말라며 벙거지를 선물하기도 한다. 마치 준하가 쓰는 시나리오의 내용이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배회하는 인물들의 로드무비를 다룬 것처럼, 두 연인 사이에 내리는 장마는 서로를 멀고 또 가깝게 만든다.
<와니와 준하>는 90년대 후반의 한국형 멜로와 유사한 질감을 지니고 있지만, 어딘가 이질감이 드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촬영의 크로스오버 기법은 동화적인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잔잔하게 흐르는 빗속으로 동화같이 펼쳐지는 두 연인의 사랑과 잊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기억도 멜로드라마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와니가 지닌 첫사랑의 기억은 선뜻 장르의 문법에서 등장하기 어려운 관계다. 전혀 동화적이지 않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완연하게 지나가는 여름의 한 페이지를 넘겨 보듯 그려내는 연출은 끝내 와니의 기억을 납득하게 만든다. (물론 영민 역의 조승우가 지닌 매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장마가 내리는 시간 동안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것처럼 <와니와 준하> 속 두 연인의 마음을 바라본다면, 당신은 어쩌면 내년 장마를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 1982)
<와니와 준하> 다음에 <블레이드 러너>(1982)라니. 정석적인 멜로드라마를 언급하고 나서 대뜸 누아르와 사이버펑크의 대명사를 추천하는 모양새가 혹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야말로 1주일씩 비가 내리는 장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필립 K 딕의 SF 명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만든 이 작품의 배경은 2019년의 LA다. 사막성 기후로 비가 잘 내리지 않는 현실의 LA와 어울리지 않는 스모그와 산성비로 가득 찬 <블레이드 러너> 속 LA의 풍경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마치 1940년대 선한 존재는 없고 모두가 이중성을 띠는 누아르 장르의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영화 속 기후는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 속 고담 시의 풍경 등 다양한 작품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관에서는 인간과 같은 지적 능력과 앞서는 신체 능력을 갖춘 레플리칸트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몇 차례 폭동을 일으킨 후, 지구에서 거주하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 그래서 지구에 불법적으로 잠입한 레플리칸트를 처형하기 위한 특수 보직이 바로 ‘블레이드 러너’다. 영화에서는 LA 주변에서 수십 명을 학살한 6명의 레플리칸트 ‘넥서스 6’를 잡기 위해 전직 LAPD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투입된다.
하지만, 줄거리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블레이드 러너>의 매력을 담지 못한다. 반젤리스(Vangelis)가 전곡 프로듀싱한 사운드트랙부터 하루 종일 비만 오는 디스토피아 세계의 LA. 앞으로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절대 늙지 않을 이미지로 가득한 <블레이드 러너>는 인물과 함께 비를 맞으며 경이에 빠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태풍 클럽>(소마이 신지, 1984)
장마가 언제 그칠지 가늠이 되지 않는 비의 연속이라면, 태풍은 하루빨리 그치기를 소원할 수밖에 없는 폭풍우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여름 장마와 달리 태풍을 맞이할 때는 한껏 몸을 웅크린 채 안위를 빌어야만 한다.
1980년대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이름인 소마이 신지의 <태풍 클럽>(1985)은 가혹한 태풍을 온몸으로 버텨야만 하는 청춘을 대변하는 걸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태풍 클럽>에는 태풍이 등장한다. 영화는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어느 중학교의 학생들이 태풍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5일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청춘과 태풍이라는 두 요소의 조합은 얼핏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2016)처럼 질고 끝에 성장하는 인물에 대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태풍 클럽>은 오히려 이런 작품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거센 비바람에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창문처럼 <태풍 클럽> 속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불안에 떨며 휘청인다.
아무리 거친 태풍이라도 끝내 맑은 하늘을 내어준다는 자연의 섭리가 이뤄진다 해도, 정작 그 태풍 속에 휘말린 존재들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날려버릴 무자비한 폭풍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 이 영화 속 아이들은 태풍이 집어삼킨 학교 안에서 폭력성과 광란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기대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본능의 춤을 춘다. 방치된 청춘은 담배를 피우고, 옷을 벗고, 목을 조르고, 죽음의 공포를 직면한다. 하지만 영화 속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을 책임지려하지 않는다. 소마이 신지의 <태풍 클럽>은 불안정한 청소년기의 혼란을 태풍에 빗대어 절절하게 그려낸다. 아이들의 불안함을 포착하기 위한 그의 롱테이크 시퀀스를 보고 있자면, 당신의 10대를 간파당하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못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 시절의 열병을 성인이 된 지금 다시 본다면 어떻게 다가올까? 거센 비와 폭풍우가 치는 밤이 된다면, 내내 마음을 졸이며 모든 것에 두려워했던 당신을 다시 직면하기 위해 <태풍 클럽>을 보기를 바란다. 스스로에게 좋은 어른이 되었는지 되물을 기회가 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