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장대비가 쏟아지듯 오던 부천. 이보다 아리 에스터의 작품을 보기 좋은 날이 있을까. <유전>(2018), <미드소마>(2019) 단 두 편으로 기이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내 ‘호러 마스터’라는 칭호를 얻은 아리 에스터 감독이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Beau Is Afraid, 2023)와 함께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이날 부천에서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상영 직후 아리 에스터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되었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멘토로 알려진 미국영화연구소(AFI)의 배리 사바스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배리 사바스 교수는 아리 에스터 감독이 2010년 AFI 콘서바토리에 입학한 후 그를 직접 지도하고 이후의 행보를 지켜봐 온 멘토이자 베테랑 영화인이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편집증을 앓는 ‘보’가 그를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엄마를 만나러 가며 겪게 되는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의 여정을 그린 영화다.
<미드소마>가 가상의 세계를 그려냈다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주인공의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선사한다. 아리 에스터는 관객들이 “보의 세상에 둘러싸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마스터클래스에서 나온 아리 에스터 감독의 말, 말, 말을 정리했다.
내 영화는 코미디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연신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코미디라는 것을 강조했다. 영화 상영 직후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된 탓에,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아리 에스터 감독이 ‘코미디’라는 것을 강조할 때마다 의문의 폭소를 터트렸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코미디’이기에, 출연진 섭외 단계부터 코미디나 무대 연기에 능한 배우들을 찾았다고 한다. 영화에서 ‘로저’ 역으로 등장하는 네이선 레인 등이 그 예다. 네이선 레인은 토니상과 에미상을 모두 석권한 배우로, <모던 패밀리> 등 TV 드라마에서 코미디 연기를 펼쳤다. 또한 택배 기사 역으로 카메오 출연한 빌 헤이더는 코미디언이자 배우로, SNL에서 활약한 바 있다. 아리 에스터는 코미디 연기에 능한 배우들로 인해 “과장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아리 에스터는 “영감은 어디서 얻냐”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나는 나를 웃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부터 (영화 작업을) 시작한다”라고 말해 다시 한번 좌중에 폭소를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유전>, <미드소마>와는 달리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고어나 호러 장르라고 칭하기는 어려운 영화는 맞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적어도 아리 에스터 감독에게는 확실히 ‘웃긴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는 ‘아파트 열쇠를 잃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사실 아리 에스터 감독이 <미드소마>나 <유전>보다도 먼저 구상한 이야기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12년 전, 이 영화의 원고를 처음 구상했다. 그래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아리 에스터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이자, 아리 에스터 본인의 유머가 고스란히 녹아든 영화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그가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단편 영화 <Beau>로부터 출발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해당 단편을 구상했던 계기로 “’만약 아파트 열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라고 상상하며, 그 이후에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얘기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단편과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어떻게 바뀌었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좀 더 ‘멍청(stupid) 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들은 바뀌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추가된 장면은 영화 내의 연극 부분과 마지막의 심판 장면이라고.
호아킨 피닉스는 기술적인(technical) 배우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호아킨 피닉스가 ‘보’ 역을 맡길 원했지만, 거절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보’ 역을 맡게 된 호아킨 피닉스와의 작업 과정은 너무나도 즐거웠다고. 둘은 유머 코드도 비슷했다고 한다.
아리 에스터에 따르면, 호아킨 피닉스는 대본을 굉장히 많이 읽고, 질문과 탐구를 열심히 하는 배우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호아킨을 “기술적인 배우”라고 칭했다.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심하게 계획을 모두 세우고 리허설을 여러 번 걸쳐 완성해낸 연기라고.
아리 에스터 감독은 “호아킨은 스스로가 거짓된 연기를 하고 있다고, 진실되지 않다고 생각하면 연기를 바로 멈춘다”라며 그와의 작업을 회상했다. 호아킨 피닉스 외에도, 모든 배우들이 정말 훌륭했다며 아리 에스터 감독은 전했다. 그는 주요 장면들의 동선을 임의로 정해 놓지 않아, 배우들이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보’의 신경계까지 들어가는 경험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중반부의 긴 연극 시퀀스다. 마치 주인공 보의 환상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듯, 줄곧 황홀하고 기이한 장면이 펼쳐진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며, 관객은 어디서부터가 실제인지, 어디서부터가 ‘보’의 편집증에서 기인한 망상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로 인해 관객은 마치 자신이 ‘보’가 된 양, 혹은 마치 그의 뇌 속에 존재하는 양, ‘보’의 세계를 탐구하게 된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장면의 작업 과정을 “지난하고 길고 복잡한 과정”이라고 칭했다. 연극 시퀀스는 ‘보’가 실제 연극을 관람하는 장면,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되는데, 이 장면을 위해 아리 에스터는 칠레의 애니메이터를 직접 찾아 함께 작업했다고 전했다.
아리 에스터는 “애니메이션의 스타일부터 색감, 어떤 스타일이 영화의 다른 부분과 잘 어울리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처음에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때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웠지만, 영화의 다른 부분과 어울리지 않아 다시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한국 감독 중 박찬욱, 나홍진, 홍상수, 이창동, 장준환을 좋아한다
한국 영화에 대한 존경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특히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과 같은 한국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고전 영화는 동시대 영화와 비교해 볼 때, 시대를 앞서간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창동 감독은 “일상의 시인”이라며, 그는 단순한 것에서 날카로움을 꺼내고, 질문에서 질문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밝혔다. 멜로드라마를 만들면서도, 그 안에 미묘하고 복잡한 부분을 잘 녹여낸다는 것.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넷플릭스 말고.
아리 에스터 감독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꼭 극장에서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가 공을 굉장히 많이 들인 작품인 만큼, 영화관에서 봐야만 몰입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아리 에스터 감독은 영화의 공포감을 극대화한 음악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음악은 전작들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고 전했다. <미드소마>의 음악은 2주 만에 나온 반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음악은 몇 달에 걸쳐 완성됐다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7월 5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