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비주얼을 봅니다

* <스파이더 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들 내 이야기가 정해진 것처럼 말하는데 내 이야기는 내가 쓸 거야

<스파이더 맨 : 뉴 유니버스> (2018)에서 마일스(샤메익 무어 )는 등교하며 풀린 빨간 조던 하이탑을 지적받는다. 그러나 그는 "응 그건 나의 선택이야"라며 얼버무린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에 아빠에게 사랑해요.를 강요당한 직후였으니 자신이 쿨하단 것을 증명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범인에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에서 풀린 신발끈에 의해 피해를 본다. 웹슈터를 발사하고 건물 사이를 뛰어 넘나들고 해야 비로소 스파이더 맨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고층 빌딩의 옥상에 올라간 그는 무서워 그냥 계단을 내려온다. 다시 마음을 먹고 히어로의 수행을 결심하고 달려간다. 그러나 그는 풀린 신발끈을 밟고 넘어져버린다.

풀린 신발끈은 친구에게서 지적을 받은, 일종의 과오다. 이것은 그냥 까먹은 것일 수도 있고, 마일즈의 말대로 정말로 스타일일 수도 있다. 아니면 끈을 묶어야 한다는 세상의 룰에 항거하여 '그냥' 풀어 놓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건, 결국 그것은 실수를 부른다. 그의 말대로 신발끈은 풀고 다녀도 상관이 없을까?

내가 선택한 거 잖아, 그 자유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겠다. 거두절미하고 대답하자면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마일즈는 신발끈을 풀고 다닐 자유를 펼친 대가로 가벼운 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신발끈을 묶고 나서야 제대로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자유에 관한 어떤 태도나 사상을 가졌는지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점프를 잘하고 싶다면 신발끈을 알맞게 묶어야 한다. 누군가는 또 이에 반항하여 에라이, 끈없는 신발(그웬처럼 토슈즈라던지)을 신고 점프를 시도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점프를 잘 할 수 있는 신발의 컨디션이라고 하는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문제의 신발인 에어조던 하이85 바시티 레드. 약 46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멀티버스에서는 무엇이 기준이 되는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의 극중에서 수많은 스파이더맨 중 리더격인 미겔(오스카 아이작)은 원래의 세계에서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죽은 또 다른 차원에서 딸의 아빠이자 아내의 남편으로 살아가다가 차원의 붕괴를 경험한다. 이것은 스파이더맨이라고 하는 히어로의 간판을 달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뼈대에 해당하는 감점의 덩어리로 설정된다.

그 옛날 <스파이더맨>(2002)에서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은 벤 삼촌을 잃었으며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 시리즈(2012,2014)에서 스파이더맨(앤드류 가필드) 또한 벤 삼촌과 그웬(엠마 스톤)을 잃는 비극을 맞이한다. 위 두 시리즈는 소니에서 만든 스파이더맨이고, 이것이 디즈니의 마블 체제로 넘어가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삼촌이 아닌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를 잃기도 한다.

이번에도 토비가 춘 몹쓸 춤을 일러스트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프렌차이즈가 기본적으로 사춘기 소년을 주인공을 삼는다. 그에겐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이 생기고, 오만에 빠진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경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유사)아버지의 존재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런 경고를 무시하지만 그 당사자의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주인공도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큰힘과 책임감을 지닌 익명의 히어로로서의 삶을 택하게 되고, 이는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깊어지면서 서사의 중심 역할을 한다.

즉, 점프를 준비할 때 신발끈을 묶어야만이 오로지 점프가 가능한 것처럼, 스파이디의 세계에서는 소년이 성장통을 통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필수적 개념이 된다. 실은 이 당연한 요소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가장 거대한 갈등을 만든다. 미겔은 자신이 존재했던 차원에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자신의 가족을 만났다가 더 큰 비극을 초래한다. 그리고 그렇게 필수적인 존재의 상실이 이른바 '스파이더 유니버스'에서 발생하는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누군가는 이것이 벤 삼촌을 잃는 일이고, 누군가에겐 친절한 이웃이었던 경찰 서장을 잃는 일이거나 혹은 숙모를 여의는 사건이 될 것이다.

수많은 아군(혹은 적군)이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마일즈는 전편에서 삼촌을 잃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자극하여 진짜 히어로로 태어나게 하는 불가결의 요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겔이 중심이 되어 스파이더맨들이 살아가는 차원에서 마일즈는, 자신의 차원에서 아빠가 죽게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당연히 마일즈는 아빠를 살리는 길을 택한다. 비록 그것이 차원의 붕괴를 가져오더라도 내 삶의 그런 비극은 허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해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 그러나 그것이 차원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아는 미겔을 비롯한 250여종의 스파이더맨들은 마일즈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든다.

전편에서 삼촌의 죽음이 히어로가 되는 필수적 역할을 하지 못한 까닭일까? 마일즈는 아빠도 살리고 히어로의 존재도 유지하며 차원의 붕괴도 막겠다고 단언한다. 마치 히어로가 되기 위한 점프 트레이닝은 해야 하지만 신발끈은 묶고 싶지 않은 자유가 상충하는것 처럼 말이다.

얼마전에 개봉한 <플래시>(2023) 또한 멀티버스를 다룬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은 엄마의 억울한 죽음을 막으려 한다. 거기서 그는 (엄마가 살아있는) 다른 차원에서의 자신을 만나 세계의 멸망을 해결하는 동시에 엄마의 죽음을 막으려 한다. 그러나 원 차원에서 온 주인공은 엄마를 살리는 것은 세계의 멸망과 필연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엄마의 죽음을 택해버리고 만다. 여기에서도 다른 차원은 활용되지만 '세계를 근간하는 필수적 요소'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페이즈 5가 진행중인 디즈니의 MCU 페이즈 4는 멀티버스라는 개념으로 인해 그 망가짐이 심하다. 3기의 전설적 마무리였던 <어벤저스: 엔드게임>(2019) 이후로 대중이 외면하는데에는 마일즈의 신발과 같은 개념이 있다. 멀티버스니까 뭐든지 해도 된다는, 일종의 안일함 같은 것이다. 이러한 디즈니의 망령에 대하여 DCEU와 소니가 함께 소리치는 것 같다.

자유가 가장 어려워, 그 가이드를 어디에 둘건데!!??

베가본드의 타쿠앙 스님의 설법이 생각나기도 한다.

"너의 일생은 이미 하늘에 의해 모두 결정되어 있다. 그래서 너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엔딩에서 주인공은 아빠를 구하러 원래의 차원에 돌아가고자 하지만 엉뚱한 차원에 떨어진다. 그리고 1편의 친구들이 원래의 차원으로 가서 아빠의 죽음을 방지하려 한다. 아마 미겔은 마일즈의 귀환을 막으면서 친구들을 훼방할 것이다.

만약 미겔이 승리한다면 운명론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며 패배한다면 60여년간 이어진 스파이더버스의 혁명적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혹은 제 3의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2편으로 끝나는 이야기였어도 이미 명작 반열에 오른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지만, 3편과의 시너지가 더해지면 어떤 감동을 선사할지 예상도 되지 않는다.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