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은 정말 인간이라면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코스일까? 흔히 생애 주기라는 사회적 시계에는 탄생부터 죽음 사이에 연애와 결혼을 인간의 과제로 포함하곤 한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쓸쓸함이나 외로움 따위의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애하지 않는 삶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선천적으로 누구에게도 성적으로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연애의 감정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들의 삶은 비참하거나 고독하지 않다. 홀로 좋아하는 라멘 맛집을 즐길 여유가 존재하고, 맘에 드는 바다를 마음껏 방문할 수 있으며,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함께 여가를 보낼 수도 있다. 단지 누군가와 연애 혹은 성적인 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나에게 투자할 뿐이다.

7월 19일 개봉할 다마다 신야 감독의 영화 <보통의 카스미>(2023) 또한 혼자 사는 것이 훨씬 편한 주인공 소바타 카스미(미우라 토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이 특별하거나 다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어머니는 언제나 그녀에게 맞선을 주선하려 노력하고 친구인 줄 알았던 남성이 대뜸 키스를 시도하려고 하는 등, 그녀의 주변 상황은 그녀를 자꾸 연애의 길로 등 떠밀지만,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보통의 카스미>가 개봉하기 전 영화를 좀 더 제대로 보기 위한 몇 가지 포인트를 알아보자!


미우라 토코의 첫 단독 주연작!

<드라이브 마이 카>

<보통의 카스미>는 2021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안겨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주인공인 운전기사 와타리 미사키 역을 맡으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미우라 토코의 첫 단독 주연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덤덤하게 과거의 아픔을 지닌 채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빨간색 사브 900을 몰던 미사키의 굳은 표정과 달리, <보통의 카스미> 속 카스미는 라멘과 맥주, 캠핑과 바다를 즐기며 일상을 만끽하는 과묵하지만 미소가 매력적인 캐릭터다.

미우라 토코는 힘미을 연기하는 배우들과 달리 일상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세밀함을 지니고 있다. <보통의 카스미>에서 도드라지는 일상 속 작은 성장들은 미우라 토코가 아니라면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에 찾아온 변화를 받아들이는 덤덤한 표정과 비로소 완전한 자신을 인정받는 순간 짓는 미소 사이에는 작지만 극적인 감정의 격차가 발생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다루었음에도 <보통의 카스미>가 엄청난 울림을 주는 데에는 그녀의 세밀한 연기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키타무라 타쿠미부터 마에다 이츠코까지 올스타 총출동!

미우라 토코의 첫 단독 주연작 <보통의 카스미>에 일본 영화계의 라이징 스타들이 전부 출동했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산책하는 침략자>(2017), <지구의 끝까지>(2019)을 비롯하여 <이니시에이션 러브>(2015), <신이 말하는 대로>(2014) 등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마에다 아츠코가 오랜만에 마주친 중학교 동창 마호를 연기했다. 성인 배우 출신의 지역 정치인 아버지를 둔 그녀의 캐릭터는 카스미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통쾌하게 부조리에 일갈을 날리는 마호의 모습은 카스미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지난해 개봉한 <썸머 필름을 타고!>(2022)의 주인공 ‘맨발’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토 마리카는 카스미의 동생 시노하라 무스미 역을 맡았다. 순수하고 의욕 넘치는 고등학생 연기를 보여준 지난 작품과 달리 이번에는 무려 임신을 한 채로 등장한다. 결혼의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누구와도 연애를 하지 않으려 하는 카스미의 행보를 의아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우정 출연으로 등장한 키타무라 타쿠미는 긴 말이 필요 없는 배우 아닌가? 첫 주연작인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017)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짧은 출연이지만 엄청난 임팩트를 영화에 몰고 올 예정이다.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에이섹슈얼들의 모습!

토드(왼쪽)는 에이섹슈얼이다.

<보통의 카스미>의 주인공 소바타 카스미는 누구에게도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무성애자(에이섹슈얼)다.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카스미는 비연애를 지향하는 무성애자다. 무성애자 중에서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그 연애에 성적인 접촉이 동반되지 않을 뿐이다. 성적인 자극이나 매력을 타인에게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성적인 관계를 맺을 이유는 없으니까. 이런 무성애자의 모습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대중매체에는 에이섹슈얼이라고 밝힌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무성애자를 다룬 좋은 작품이다.

가령 성인용 애니메이션 시리즈 <보잭 홀스맨>의 토드 샤베즈는 가장 유명한 무성애자 캐릭터다. 애론 폴이 연기한 토드는 이따금 얼빠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타인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낙담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따스한 마음으로 품으려 노력하는 존재다. 자신 같은 존재를 위한 무성애자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만나고 미칠 듯이 기뻐하는 장면은 <보통의 카스미> 속 카스미가 자신이 특별한 것이 아닌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DC 코믹스의 2대 그린 애로우인 코너 호크, 마블 코믹스의 엘레나 벨로바 같은 캐릭터도 설정상 무성애자다. 그리고 작년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은 두 주연이 모두 에이섹슈얼인 캐릭터가 등장하여, 연애도 섹스도 없는 동거를 이어 나가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점차 미디어에서 무성애자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그들도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TV 시리즈 히트 각본가 다마다 신야, 메가폰을 잡다!

마에다 아츠코와 이미 함께 했던 <소란스럽게 밥>

<보통의 카스미>를 연출한 감독 다마다 신야는 사실 4년간 11편의 TV 시리즈 각본에 참여한 히트 각본가 출신이다. 미호를 연기한 마에다 아츠코가 함께했던 TV 도쿄의 <소란스럽게 밥>은 식탁 위에서 따스하게 나누는 평온한 일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시리즈다. 원작 만화의 매력을 잘 살렸다고 평가받은 wowow의 오리지널 드라마 <아오노 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역시 각색을 담당한 다마다 신야에 대한 호평이 자자했다. <보통의 카스미>가 무성애자의 삶을 다루고 있는 만큼 각본이 인물을 어떻게 세밀하게 그려내는지가 중요했다. 다마다 신야는 카스미를 세밀하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데 성공한다.

동시에 다마다 신야는 각본가 출신으로는 드물게 다양한 방식으로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며 연출가로도 훌륭한 자질을 보여주었다. 가령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맞선을 보러 간 자리에서 상대 남자와 대화를 나눌 때 사용한 360도 패닝 기법이나, 마호의 결혼식에 축사 대신 준비한 첼로를 연주하는 카스미를 롱테이크로 잡은 장면, 독립을 위해 새로운 집을 알아보다 문득 들리는 환청 같은 어머니의 목소리, 아버지와 창고에서 보내는 행복한 시간을 멀찌감치 잡는 프레임 등. 잔잔한 일상에 세밀한 조정을 더한 것처럼 자칫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카메라 기법들을 오히려 훌륭하게 녹여내며 인물을 바라보는 영화의 윤리적인 태도를 잘 드러냈다. 마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20)을 만든 미야케 쇼가 연상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인물을 향한 영화의 태도, 미우라 토코의 열연, 유명 배우들의 협업, 유려한 각본 등은 <보통의 카스미> 속 자신을 사랑하는 카스미의 태도를 힘껏 감싸 안아준다. 이따금 바다를 보며 상념에 잠기던 카스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주변 사람들의 따스함처럼 당신의 어떤 모습도 모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보통의 카스미>를 보며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