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히어로 영화의 트렌드는 멀티버스다. 다중 우주를 바탕으로 같은 캐릭터여도 완전 다른 인생을 산 인물이 되는 설정을 흥미롭게 구축하는 중이다. 하지만 배우가 직접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에, 영화 속 멀티버스는 코믹스 원작의 그것보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현실 배우가 여러 히어로 영화의 출연을 해서 이걸 멀티버스로도 연결할 수 있다는 점. 실제 <플래시>는 이런 캐스팅을 활용한 전개를 보여줬고, 내년에 선보일 <데드풀 3>역시 이 설정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마블, DC 영화에 다른 캐릭터 혹은 같은 캐릭터로 여러 번 출연한 배우들을 살펴본다. 그야말로 배우 자체가 멀티버스인 이들이다.


라이언 레이놀즈 - <엑스맨 탄생: 울버린> <데드풀>

<엑스맨 탄생: 울버린> / <데드풀> 웨이드 윌슨

슈퍼히어로 장르 영화와 궁합이 좋지 않았던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의 엄청난 성공으로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과 맞먹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흑역사를 완전히 지울 순 없다. 그는 여기서 울버린(휴 잭맨)과 함께하는 팀의 요원 웨이드 윌슨으로 출연했다. 실질적인 데드풀 캐릭터의 첫 번째 등장. 하지만 원작과 다른 캐릭터 해석과 낮은 비중으로 팬들의 실망은 컸다. 이에 해당 캐릭터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을 제작, 출연해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데드풀 3>에서 울버린, 휴 잭맨과 다시 함께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작품 자체가 20세기 폭스에서 만든 마블 영화의 멀티버스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다.


크리스 에반스 -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 <판타스틱 4> 시리즈

<퍼스트 어벤져> 캡틴 아메리카 / <판타스틱 4> 쟈니 스톰

우리의 영원한 캡틴 크리스 에반스도 두 편의 세계관이 완전 다른 마블 시리즈에 출연해 나름의 멀티버스를 구축했다. 캡틴 아메리카 역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에서 아이언맨과 함께 세계관을 이끌었던 그는, 그 이전에 2005년 폭스의 마블 영화 <판타스틱 4>에도 출연했다. 여기서 그는 수 스톰의 동생이자, 폭주 청년 쟈니 스톰(휴먼 토치) 역을 맡았다. 이 인물은 희생과 정의의 대명사인 캡틴 아메리카와 너무 상반된 성격을 가졌는데, 이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두 캐릭터를 연기한 크리스 에반스에 대한 밈도 유행했다. MCU가 멀티버스를 본격적으로 펼치는 중인 지금, 나중 크리스 에반스가 휴먼 토치로 등장해 캡틴 아메리카를 만난다면 꽤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마크 스트롱 -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 <샤잠!>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 시네스트로 / <샤잠!> 닥터 시바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출연작마다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마크 스트롱도 히어로 영화에 자주 출연했다. 특히 그는 DC 영화 두 작품에서 빌런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먼저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에서 할 조던을 그린 랜턴 군단에 인도했지만, 더 큰 힘에 빠져버려 빌런으로 변신할 시네스트로로 출연했다. <샤잠!>에서는 아버지와 형에 대한 원망으로 성격이 뒤틀려버린 닥터 시바나 역을 맡았다. 이처럼 DC 영화 두 편에 출연한 소감을 묻자, 마크 스트롱은 “<그린 랜턴>이 DC 확장 유니버스에 속했어야 했다”라며 전작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크 스트롱은 두 시리즈에서 카리스마 가득한 연기를 펼쳤지만, 두 작품 다 흥행 결과가 좋지 못했다. 향후 DC의 멀티버스에서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마이클 키튼 - <배트맨> / <플래시>

<배트맨> / <플래시> 배트맨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은 멀티버스를 통해 다른 영화에 출연한 모범 사례가 아닐까 싶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브루스 웨인(배트맨) 역을 맡은 마이클 키튼은, 한때 미스 캐스팅이라는 소문까지 있었지만 영화의 준수한 완성도와 좋은 연기로 이 같은 편견을 뒤집었다. 이제는 배트맨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일 정도다. 그런 그가 같은 역할로 근 30년 만에 DC 확장 유니버스 <플래시>에 출연했다. 멀티버스 세계관에 온 배리 앨런(플래시)에게 히어로의 책임과 능력을 가르쳐 준 멘토 역할을 훌륭히 보여줬다. 마이클 키튼의 이런 멀티버스 연기는 마블에서도 이어진다. MCU의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벌처 역으로 출연한 그는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영화 <모비우스>에도 등장해(쿠키 영상이지만) 두 세계관의 가교 역할을 펼쳤다.


J. K. 시몬스 -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3부작 / MCU<스파이더맨> 시리즈 / <스파이더맨: 스파이더 버스> 시리즈까지

<스파이더맨> /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J. 조나 제임스

J.K 시몬스는 <스파이더맨>가 선사한 멀티버스의 대표 배우가 아닐까 싶다. 그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에서 데일리 뷰글의 편집장 J. 조나 제임스로 출연했다. 직원에게 호통치며, 특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모습으로 이야기의 잔재미를 빚어냈다.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같은 역할을 맡았는데, 배경 설정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즉, 다른 세계관에서 같은 역할로 출연해 영화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여기서 그는 스파이더맨이 미스테리오를 죽였다고 보도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스파이더맨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캐릭터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도 J.K 시몬스는 J. 조나 제임스 목소리 역을 맡아, 다양한 세계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젬마 찬 - <캡틴 마블> <이터널스>

<캡틴 마블> 미네르바 / <이터널스> 세르시

지금까지 각기 다른 세계관에서 여러 (혹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를 소개했다면, 젬마 찬은 이들과 성격이 다르다. 같은 세계관에서 다른 캐릭터를 맡았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은 젬마 찬은 <캡틴 마블>에서 캐럴 댄버스와 함께 팀을 이뤘지만, 묘한 라이벌 의식을 가진 미네르바 역을 맡았다. 그런데 그의 다음 MCU 행보는 <캡틴 마블>의 후속편이 아니었다. <이터널스>에서 미네르바가 아닌 완전 다른 캐릭터를 맡았다. 여기서 그는 인간을 보호하려고 온 이터널스의 멤버 중 하나인 세르시 역으로 출연했다. 사려 깊은 태도로 팀 내부의 분열을 막으려는 캐릭터로 신비한 매력을 자아냈다. <캡틴 마블>의 미네르바가 원작에서 캐럴 댄버스의 숙적이라 후속편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이터널스>의 출연으로 이 계획은 많이 어렵게 되었다.


니콜 키드먼 - <배트맨 포에버> <아쿠아맨>

<배트맨 포에버> 닥터 체이스 / <아쿠아맨> 아틀라나 여왕

세계적인 명배우 니콜 키드먼도 DC 영화에 두 편 출연했다. 그것도 DC를 지탱하는 두 영웅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말이다. 그의 첫 번째 출연작은 <배트맨 포에버>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힘든 브루스 웨인을 보살피는 범죄 심리학자 닥터 체이스 역을 맡았다. 배트맨의 연인뿐 아니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힘과 지략도 있는 캐릭터다. 근 20년의 세월이 지난 뒤 그는 DC 확장 유니버스에도 얼굴을 비춘다. <아쿠아맨>에서 아쿠아맨의 어머니이자 아틀란티스의 통치자 아틀라나 여왕 역을 맡았다. 니콜 키드먼은 인간 세상에서 아들 아서 커리(아쿠아맨)과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아틀란티스의 위협이 계속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식과 이별한 어미니의 마음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조슈 브롤린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 / <데드풀2>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타노스 / <데드풀2> 케이블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 조슈 브롤린도 여러 편의 마블 영화에 출연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마블 히어로를 위협했던 최강의 적 타노스 역을 맡았다. 그는 <어벤져스>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 중심 축을 잡는 빌런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데드풀 2>에서는 미래에서 현재로 온 케이블 역으로 출연했다. 미래에서 아내와 딸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현재에 온 캐릭터로, 초반 데드풀과 많은 마찰을 벌인다. 하지만 이내 오해가 풀리고, 후반부에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손을 잡는다. 온갖 드립이 난무하는 <데드풀>답게 조슈 브롤린 관련 드립이 빠질 수 없다. 극중 데드풀이 케이블에게 “입 닥쳐 타노스!”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참기 어려울 것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