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P, INFJ는 '알바 지원 불가'라는 커뮤니티의 글은 웃어넘기더라도, 성실하게 꾸준히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개근 거지'라는 비하가 따라붙는다는 뉴스에는 사뭇 생각이 많아진다. 편향된 성격유형에 후한 점수를 주는 사회에서 일을 잘 하는 것은 곧 '외향적이다'와 동어이고, 훌륭해지려면 바깥세상으로 대담하게 행군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조용하고 느리지만 성실하고 끈질긴 것들의 가치는 부당하게 폄하되고 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은 <Small, Slow but Steady>라는 노골적 영문 타이틀만큼이나 영화 내내 시대가 놓쳐온 가치를 옹호한다.


케이코(키시이 유키노)의 옆모습

영화는 거울 속 젊은 여자를 비추며 시작한다.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올라탄 연필의 사각거림만이 화면을 채우는 가운데, 그는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반창고가 붙은 얼굴은 피곤해 보이지만 바로 앉은 곧은 등에서 엄격함과 절제력이 읽힌다. 여자는 이윽고 컵을 집어 들고 물을 들이켜더니 우적우적 얼음을 씹는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라는 영화 제목이 화면에 부상할 때까지 이어지는 섬세하고 긴장된 소리의 연쇄 때문에 우리는 확신한다. 이것은 소리의 영화가 될 것임을.

수화로 대화하는 케이코와 동생 세이지(사토 히미)

과연 이어지는 체육관 장면은 다양한 음향으로 가득하다. 규칙적인 줄넘기 소리, 오래된 운동 기구가 내는 끽끽 거리는 소리, 샌드백을 치는 소리. 중첩된 사운드는 변두리 쓸쓸한 체육관 공간에 생생하게 피어오른다. 그런데 탈의실에 나타난, 오프닝에서 얼음을 우걱우걱 씹던 여성(케이코)이 먼저 있던 연습생을 쫓아내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면, 우리는 화면 자막을 통해 그녀가 선천적으로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리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우리의 확신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운동하는 이들의 생기로 북적이는 체육관의 소리도 그녀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히면, 돌연 쓸쓸한 배경음이 된다.


케이코

케이코는 청각 장애를 가진 프로복서다. 말의 파장보다 몸의 움직임으로 감각하는 그에게 성실히 훈련의 육체성을 복기하고 천천히 감상을 눌러쓰는 침잠의 시간은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첫 장면의 팽팽한 긴장이 비로소 이해된다. 케이코의 생활은 꽤나 단조롭다. 10km 달리기로 시작하는 하루는, 호텔을 거쳐 체육관에서 마무리된다. 호텔 청소를 생업으로 하는 그는 양변기에 거리낌 없이 손을 넣어 깔끔하게 닦아내고 신참에게 이불 정리법을 진지하게 알려준다. 일이 끝나면 텅 빈 체육관의 낡은 거울을 닦으며, 짧은 경기를 위한 긴 훈련을 참아낸다. 소리에 의지해 자신의 등 뒤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 힘든 케이코에게 타인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는 중요치 않다. 그저 그녀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집중할 뿐이다.

어머니(좌)와 케이코

물론 선택한 바를 묵묵히 책임지며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영화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코로나 시대에 청각장애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상을 서늘하게 그린다. 사람들은 몰라서, 때론 알면서도 마스크를 쓴 채로 목청을 높인다. 그리곤, 알아들을 수 없다는 그녀의 눈빛을 그저 어리숙함으로 치부한다. 장애가 있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의 걱정을 감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기 출전 전 '그만하면 되지 않았니?'라 묻는 어머니는, 승부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 여기는 복싱에 대한 케이코의 진심을 악의 없이 경시한다.


체육관 회장(미우라 토모카즈)

언제까지 복서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 내면에는 말 못 할 고민들이 쌓여간다. 타격에 대한 두려움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지만 몸이 기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프로 데뷔를 도와준 체육관 회장과 코치들에게 민폐를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겠다는 차마 부치지 못 한 편지를 손에 쥐고 있는 사이, 체육관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기를 쓰고 반복적인 훈련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수련해도, 오래된 건물이 이울고 나이 든 노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체육관은 코로나로 회원이 줄어든 데다 재개발까지 결정되며 폐관을 결정한다.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회장 또한 병세가 악화된다. 결코 우호적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이 겹치며, 관객은 어느새 케이코가 어디로 갈지 집중하게 된다.

케이코와 회장

이 집중은 하지만, 염려는 아니다. 체육관으로 이어지는, 케이코가 매일처럼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다. 혼자서 지나칠 때도 많지만, 이곳에서 그는 간혹 무례한 남자와 부딪치고, 회장 부부와 어색하게 조우하기도 한다. 사건으로 치달을 수 있는 장면도 미야케 쇼 감독은 그저 같은 질량과 무게로 고정 샷을 반복하며, 케이코가 지금껏 복서로서 연습을 거듭해 왔을 시간의 두께만을 강조한다. 여느 복싱 영화가 링 밖에서 일어나는 인생의 우여곡절을 경기로 승화시킴으로써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데 반해 여기서는 인상적인 데뷔전이나 타이틀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승리와 패배의 순간 모두 서서히 변화하는 시간의 리듬에 놓일 뿐이다. 꾸준함은 단단함이 되어 체육관이 문을 닫고, 회장이 스러지고, 시합에 진다 해도 그는 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케이코와 회장

케이코가 권투를 계속하는 이유는 선명하지 않다. 다만 체육관 회장(미우라 토모 카스)의 존재는 포기의 순간 그를 붙든다. 복싱을 그만두겠다는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찾아간 체육관. 그 밤 케이코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침침한 눈을 하고 그녀의 시합 비디오를 되돌려 보는 회장을 본다. 문에서 멀어졌다 다시 생각을 고쳐 문 앞에 선 케이코. 옆모습에서 이미 망설임은 사라졌다. 그 후 케이코와 회장은 큰 거울 앞에서 섀도복싱을 하는데 별것 없는 그 모습은 영화 속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 말없이 체조를 함께하고, 모자를 씌워주고, 따뜻한 음료를 내주던 회장. 연습을 쉬게 된 케이코가 오랜만에 체육관에 얼굴을 내민 그때에도 회장은 내키지 않으면 다음 경기는 뛰지 않아도 좋다 말한다. 훈련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의지를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방 옆에 살짝 서 있어 주는 것. 영화는 인물들이 나란히 서서 서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괴리감을 긍정한다. 둘만의 섀도복싱 장면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다.

케이코

케이코는 세 번째 시합에서 패한다. 하지만 패배한 시합에 비관이나 감상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좌절 후 훅 들어오는 것은 뜻밖의 마주침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케이코는 훈련을 위해 찾은 강변에서 마지막 시합의 상대 선수와 조우한다. 작업복 차림에 생활인의 모습을 한 이 여성은 난데없이 달려와 지난 경기 때 실례했다 말한 후 홀연히 사라진다. 인사를 받은 케이코는 얼떨떨해하지만, 이내 묘하게 홀가분한 모습으로 강둑을 내달린다. 영화는 그렇게 담백하고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느리지만 성실하고 끈질기게 분투하고 있는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위로와 인사를 건넨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