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기대작 ‘빅4’ <밀수> <비공식작전>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여름 대진표가 공개됐다. 첫 스타트를 끊을 영화는 7월 26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밀수>다. 이후 한 주 간격으로 8월 2일에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 작전>과 김용화 감독의 <더 문>, 8월 9일에는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 예정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신작이며 각기 다른 장르와 개성 강한 배우들의 색다른 조합이 시너지를 일으킬 작품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산업이 가파른 하락세에 접어들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인 만큼 제작진의 고민과 기대가 모두 담긴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아직 4편의 영화가 모두 언론에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들을 취합해서 각각의 영화들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짚어봤다.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진화,
수중 액션 <밀수> VS 카체이스 액션 <비공식작전>
류승완 감독의 <밀수>와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은 모두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액션 영화를 표방한다. 시대 배경도 다르고 액션을 펼쳐 보이는 연출 스타일도 전혀 다르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바닷가 마을 군천의 해녀들이 주인공인 <밀수>는 1970년대 항구 마을과 바닷가가 주요 배경으로, 전국구 밀수 조직과 평범한 해녀들이 얽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이다. <비공식작전> 역시 액션 스릴러를 표방한다. 평생 책상에서 펜대만 굴리던 외교부 직원이 동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도시를 찾아가 테러 조직과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작 외유내강 / 배급 NEW / 등급 15세 관람가 / 제작비 170억원대
바다로 간 류승완표 액션 활극
<밀수>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류승완 감독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액션 장면이 바다에서도 펼쳐진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에서 본 적 없는 수중 액션 장면이다. 홍보 문구로 ‘액션 활극’이란 표현을 자주 쓰는데 장르적으로는 케이퍼 무비의 재미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수중에서 펼쳐지는 긴박한 밀수 장면은 케이퍼 무비에서 볼법한 팀플레이를 활용하며 신명나는 류승완표 액션 리듬을 만들어낸다. 물론 류승완 감독은 수중 액션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다. 뭍으로 나오면 돈에 눈먼 사내들끼리 속고 속이는 피비린내 싸움을 벌인다. <모가디슈>에 이은 조인성의 선 굵은 액션 연기를 이번에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꺾이지 않는 욕망의 눈빛, 김혜수와 염정아의 투톱 플레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인물 구도는 바닷가 마을 해녀들의 리더인 진숙(염정아)과 외지 출신의 춘자(김혜수)와의 속고 속이는 관계다. 오랫동안 막역하게 지냈지만 진숙은 춘자의 진심을 잘 모른다. 두 사람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해녀들을 이끌고 밀수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데 그때부터 조그마한 군천 땅에 눈먼 욕망이 들끓기 시작한다. 진숙과 춘자를 연기하는 염정아, 김혜수 두 배우의 연기 조합을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두 배우는 자신들의 필모그래피에서 각각 범죄물 캐릭터를 대표하는 <범죄의 재구성>의 ‘구로동 샤론스톤’ 서인경과 <타짜>의 “이대 나온 여자야” 정마담을 연기한 이력이 있다. 마초들이 들끓는 판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날 선 눈빛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속에서 활약하는 해녀들과 바닷물 위 선상에서 이들을 돕는 장도리(박정민), 해녀들과 밀수꾼 사이를 오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뉴-종로 다방의 주인장 고옥분(고민시) 등 놀라운 씬스틸러 배우들의 활약도 주목해야 한다. 순진한 해녀들을 위협하는 전국구 밀수왕 권상사(조인성)의 등장으로 인물 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갈등이 심화되는데 범죄자들 간의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마는 과정이 속도감 넘치게 진행되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만든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익히 봐온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가 그가 연출한 영화 중 가장 현란한 편집과 과시적인 음악 사용을 보여준다는 걸 느끼게 될 것 같다. 특히 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듯한 액션 영화의 질감도 보여준다. 장르적 쾌감과 새로운 시각적 재미를 구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류승완 감독의 야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제작사 와인드업필름, 와이낫필름 / 배급 쇼박스 / 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 / 제작비 200억원대
1980년대 레바논 배경의 버디 액션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비밀 작전에 뛰어든 외교부 직원의 활약상을 다룬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두 주인공이 펼치는 버디 액션이다.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레바논 현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는 신분도 성격도 전혀 다른 두 주인공이다. 이들이 작전을 수행하고 살아서 돌아와야 하는 곳은 한국영화에서는 거의 등장한 적 없는 미지의 장소 레바논. 테러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던 1980년대 레바논은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에서나 보던 곳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제작진이 직접 모로코 도심 한복판에서 촬영을 한 만큼 활용도면에서 할리우드의 첩보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동양인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테러 우범 지역에서 우연히 판수를 만난 민준은 테러리스트들과 추격전을 벌이게 되고, 군대생활조차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두 사람이 고군분투하는 액션은 스파이 액션 스릴러에서 보여주는 긴장감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굵직한 장르 영화에서 각기 다른 스타일의 액션을 선보였던 하정우, 주지훈 두 배우가 보여주게 될 연기 호흡이 이 영화의 승부를 가를 포인트다.
혼돈의 1980년대, 국가란 무엇인가
영화와 드라마 경계를 오가며 <끝까지 간다>(2014), <터널>(2016)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2019) 등 여러 화제작을 내놓았던 김성훈 감독은 OTT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이 됐다. <비공식작전>은 사실 제작 단계에서는 <피랍>이란 제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모로코 현지 촬영이 중단, 제작이 연기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제목을 바꾼 데서도 알 수 있듯 보다 장르적인 매력을 어필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느껴진다. 제임스 본드나 에단 헌트 같은 캐릭터가 활약하는 스파이 스릴러와는 방향이 다르지만 모든 게 서툰 두 사람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관계를 쌓아 나간다. 그 바탕에는 결국 88올림픽도 열리기 전의 대한민국이 처해 있던 국제적 위상, 그리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 명의 국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사람들의 공로가 숨겨져 있다. 영화는 그러한 시대 상황이 만들어내는 나라 안팎의 풍경을 뜨겁게 묘사하고 있다.
재난 SF의 새로운 차원을 열다,
우주의 <더 문> VS 지구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시각적 충격과 체험의 재미를 기대하게 만드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 한국 시각특수효과 VFX 산업의 최전선에서 <미스터 고> <신과함께> 시리즈 등을 만들어냈던 쌍천만 신화의 주인공 김용화 감독의 신작 <더 문>과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 주인공이다. 한쪽에선 우주의 재난을 보여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대편 지구의 위기 상황을 다룰 예정이며 갈등 구조나 관전 포인트도 전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영화도 이런 비주얼과 이야기 규모를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들어낸 대형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두 영화 모두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든다.
제작 CJ ENM STUDIOS, 블라드스튜디오 / 배급 CJ ENM / 등급 12세 관람가 / 제작비 280억원대
우주로 뻗어 나가는 김용화표 감동 판타지
대형 스크린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영화를 보는 날이 오고 말았다. 본격적인 우주 배경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승리호>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극장용 대형 스크린에서는 이 영화를 볼 수는 없었다. 극장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줄 스타트는 <더 문>이 끊지 않을까.
현재 공개된 시놉시스에 따르면, 이 영화는 우주 배경의 SF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가 될 것 같다. 때는 2029년, 한국이 개발한 달 탐사선 우리호가 달을 향해 떠나던 중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풍이 덮쳐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홀로 남겨진 황선우(도경수) 대원을 살리기 위해 등장한 인물은 전임 센터장 김재국(설경구)이다. 하지만 재국에게는 아픈 과거의 상처가 있다. 5년 전에 이미 대한민국의 달 탐사선 나래호가 우주로 향하는 시도를 했지만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공중 폭발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 사고 때문에 당시 책임자였던 재국은 속세를 떠나 야인처럼 지내고 있었지만 우주센터 관계자들과 정부의 노력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산을 내려온다.
아마도 영화는 우주에 홀로 갇힌 황선우 대원이 처한 갖가지 위험천만한 상황들과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사투를 동시에 번갈아 보여주며 서스펜스를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황선우 대원과 김재국 센터장 사이에서 새로운 구원의 손길을 뻗어줄 인물로 NASA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윤문영(김희애)이 등장할 예정. 현 우주센터장은 박병은, 정부 측 인사로는 조한철과 최병모, 재국의 동료를 맡은 홍승희 등이 황선우 대원의 무사 귀환 프로젝트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분명하게 예상할 수 있는 건 우주에 홀로 남겨진 대원 선우를 살리기 위해서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감동 코드가 선명한 영화일 거라는 점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신화를 이뤄낸 김용화 감독이기에 관객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데 능한 그가 보여줄 가슴 찡한 엔딩이 벌써부터 눈앞에 그려진다.
한국 VFX 기술의 최전선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드물었다. 시각특수효과 기술의 구현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한국영화계는 눈부시게 성장해왔고 최근에는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2021)를 만들었으나 안타깝게도 OTT 플랫폼 공개로 인해 극장 상영이 무산되고 말았다. 또한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를 통해서는 그동안의 한국 영화·드라마 촬영장에서 거의 구현해본 적 없는 LED월을 배경으로 한 버추얼 프로덕션 촬영 방식을 도입, 4K 해상도 시대에 걸맞은 비주얼을 구현해 내는데 성공한 바 있다. 그다음 주자는 <더 문>이다. 이 영화는 한국 VFX 기술의 현주소를 보여주게 될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BH엔터테인먼트 /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등급 15세 관람가 / 제작비 170억원대
무너진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지옥도
아파트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다. 사회면 뉴스에 매일 같이 등장하는 아파트 관련 기사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만약 이런 아파트를 둘러싼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재난 스릴러의 틀에서 보여주게 될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공개된 예고편을 보면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 땅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건물이 바로 황궁아파트로, 영화의 메인 공간이 될 곳이다. 살아남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자신의 터전을 외지인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재난 상황이니 만큼 터전을 사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모두가 이로운 방향이지만 누군가는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한다면 과연 사람들은 마음을 모을 수 있을까.
예고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며 시선을 강탈하는 배우 이병헌은 위기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면서 이를 진두지휘하는 임시주민대표 영탁을 연기한다. 아마도 아파트란 유일한 생존 공간을 사수하기 위해 어떤 위험도 불사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인물로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영탁의 옆에서 그를 도와주는 인물로는 평범한 가장이었다가 위기 상황에서 점점 대범하게 변한다고 알려진 민성(박서준)이 등장하며, 간호사 출신의 평정심 유지 능력이 뛰어난 민성의 아내 명화(박보영)가 옆을 지킨다.
위기 상황에서 갈등을 야기하게 될 인물 후보로는 황궁 아파트 부녀회장 금애(김선영)와 바깥에서 살아 돌아온 혜원(박지후), 비협조적인 주민 도균(김도윤) 등이 개성 강한 면면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스펙터클한 재난 상황의 이미지보다는 위기 상황에서도 결코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악한 마음이 빚어내는 모습,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참극을 통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 양상을 반추해볼 수 있는 재미를 강조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웹툰 원작의 ‘유니버스 세계관’을 펼치는 시작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레진코믹스에서 2014년부터 연재됐던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가 원작이다. 웹툰의 1부는 지진이 발생해서 무너져버린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이 영화는 2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색을 거쳐 탄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시작으로 대지진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대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로 확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다른 장르의 형태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관객과 시청자를 사로잡게 될지 모르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국내에서 시도해본 적 없는 ‘유니버스’ 프랜차이즈의 시작점이 될 영화다.
김현수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