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에 영향을 준 영화를 밝히고 있는 그레타 거윅 감독. 사진= 유튜브 Letterboxd 채널 'Greta Gerwig’s Official Barbie Watchlist' 캡처

영화 <바비> 팀은 촬영 기간 동안 매주 일요일, 다 같이 모여 <바비>의 레퍼런스가 된 영화를 함께 봤다고 한다. 그들은 이것을 “영화 교회(movie church)”라 불렀다고. ‘영화 교회’에서는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고전 뮤지컬 영화부터 <트루먼 쇼> 등의 비교적 최근 영화에 이르기까지, 제작진과 배우들은 다양한 영화를 함께 감상하며 그들이 만들어 갈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갔다.

그레타 거윅의 <바비> 레퍼런스 영화 목록. 사진=letterboxd 캡처

그레타 거윅 감독은 레터박스(Letterboxd)와의 인터뷰에서 <바비>에 영향을 준 33편의 영화 리스트를 공개했다. 이 중에는 <바비> 영화 내에서 오마주 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같은 작품도 있고, 거윅 감독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숨겨진 영화도 있다. 그래서 <바비>의 레퍼런스가 된 영화들을 모아봤다.


진짜로 가짜 같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트루먼 쇼>(1998), <분홍신>(1948)

<바비>의 배경을 그리고 있는 스태프. 사진= 유튜브 Architectural Digest 채널 'Margot Robbie Takes You Inside The Barbie Dreamhouse' 캡처

그레타 거윅 감독은 바비랜드를 비롯한 <바비>의 세계가 “진실되게 인공적인 것(authentically artificial)”, “진짜로 가짜 같은 것(fake, but really fake)”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 때문에, 거윅 감독은 판타지 영화나 뮤지컬 영화를 다수 참고했다.

(좌) <오즈의 마법사>, (우) <바비>

<바비>에서 바비가 현실 세계로 가는 장면은 단연 <오즈의 마법사>가 떠오른다. 도로시가 노란 길을 따라 에메랄드 시티로 갔듯이, 바비는 핑크색 길을 따라 현실 세계로 향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배경으로 사용된 하늘과 산, 길 등의 그림은 <바비>의 세트를 만드는 데에 영감을 주었다. 그레타 거윅은 바비랜드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가짜여야만 했다. 그래서 바비랜드의 하늘, 바다, 길 등은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마냥, “나는 실사가 아니라 그림이요!”라고 외치고 있는 듯. ‘가짜’임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좌) 분홍신, (우) <바비>

모든 것이 가짜여야만 하는 이유는 거윅이 <바비> 영화 전체가 마치 무대에 오른 연극인 양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윅은 연극적인 요소와 영화적인 요소가 모두 녹아 있는 <분홍신>을 참고했다. <바비>에서 바비가 ‘이상한 바비’의 집에 오르는 장면은 영화 <분홍신>의 대표적인 오마주다.

(좌) <분홍신>, (우) <트루먼 쇼>

<트루먼 쇼>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거윅 감독에게 영감을 주었다. <바비>의 촬영에 들어가기 전, <트루먼 쇼>를 연출한 피터 위어 감독은 거윅 감독에게 그가 <트루먼 쇼>를 어떻게 찍었는지 등을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야외에서 찍어도 마치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방법 등을 알려줬다고. <바비>의 ‘가짜같음’을 살리기 위해, 큰 참고가 되었을 터다.


핑크빛 바비랜드와 정반대, 잿빛 ‘마텔’ 사

<플레이타임>(1967)

<바비> 속 바비 하우스. 사진= 유튜브 Architectural Digest 'Margot Robbie Takes You Inside The Barbie Dreamhouse'

바비랜드가 환상의 세계라면, 바비를 창조한 ‘마텔’ 사는 그 정반대에 있어야 했다.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것들로 구성된(예를 들면 미끄럼틀이라던가) 바비 하우스와 실용의 끝판왕을 달리는 마텔의 오피스는 직관적으로 대비되는 비주얼을 지녀야 했다.

그래서 <바비> 속 마텔 사는 자크 타티 감독의 <플레이타임> 속의 오피스를 똑 닮게 되었다. <플레이타임>은 차갑고, 낯설고 무표정한 공간에 놓인 비즈니스맨 ‘윌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데,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을 마주한 바비의 상황과 일치한다. 그래서 거윅 감독은 마텔 사의 오피스를 <플레이타임> 속 오피스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고전 뮤지컬 영화의 감성을 그대로

<토요일 밤의 열기>(1977), <그리스>(1978)

<바비>

그레타 거윅 감독의 말에 따르면, <바비>는 “반쯤은 뮤지컬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는 바비들이 춤을 추는 장면, 켄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리스>

<바비>에는 고전 뮤지컬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이 많다. <그리스>는 70년대에 제작되었지만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영화다. <바비>에는 켄이 영화 <그리스>의 사운드트랙 ‘Greased Lightnin’’을 부르는 장면도 있다.

(좌) <바비>, (우) <토요일 밤의 열기>

영화 초반부의 댄스파티 장면은 <토요일 밤의 열기>를 떠오르게 한다. 신나는 디스코 음악과 화려한 불빛, 그리고 바비와 켄들의 고전적인 의상까지. 그레타 거윅 감독은 바비와 디스코가 만나면 (좋은 의미로) 이상할 것 같아서 좋았다고.


통통 튀는 비주얼은 드미 영화로부터

<쉘부르의 우산>(1964),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

<쉘부르의 우산>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자크 드미가 그만의 방식으로 가공해낸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레타 거윅은 자크 드미의 영화를 “맛있다”라고 표현했는데, 드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비주얼과 컬러감, 그리고 묘하게 비현실적인 듯한 아름다움 때문일 터다.

<쉘부르의 우산>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은 특히나 색채가 눈에 띄는 영화다.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에서 색을 레이어링하는 법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5가지의 핑크색을 레이어링 하되 과하지 않게 보이는 방법 등의 힌트를 얻었다고.

드미 영화의 비주얼에 많은 영향을 받은 덕분인지, <바비>에서는 바비가 <쉘부르의 우산> 주인공 캐서린 드뇌브의 머리를 한 장면, 그리고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떠오르게 하는 모자를 쓴 장면도 있다.

(좌) <쉘부르의 우산>, (우) <바비>


위대한 바비의 탄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좌) <바비>, (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가장 유명한 <바비> 속 오마주는 바비의 탄생 장면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지구에 검은 돌기둥이 등장한 후, 유인원들은 뼈를 하늘로 던진다. 이는 검은 돌기둥이 등장한 이후의 유인원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뜻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바비>에서는 아기 인형을 가지고 놀던 어린 여자아이들이 바비의 탄생 이후, 아기 인형을 하늘로 던진다. 인류의 발전만큼이나 바비인형의 등장이 ‘혁명적인 것’이었음을 말하려는 의도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바비가 바비스러운 아침을 맞는 바비 하우스!

<파리의 아메리카인>(1951), <레이디스 맨>(1961)

(좌) <바비>, (우) <파리의 아메리카인>

진 켈리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바비>에 직접적으로 반영된 부분은 바로 <파리의 아메리카인>의 오프닝이다. <파리의 아메리카인>의 주인공 제리는 아주 작은 아파트에 사는데(가구를 다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의), 일어나자마자 늘 그래왔듯 능숙하게 침대를 위로 올리고(놀랍지만 침대를 천장에 매달 수 있다), 빵을 접시에 담고, 장롱 속에 넣어 놨던 식탁과 의자를 꺼내고 아침 식사를 하는 등의 ‘모닝 루틴’이 있다. 그레타 거윅은 제리의 이 루틴을 좋아해, 바비(마고 로비)의 아침 루틴을 이와 비슷하게 구상했다. 바비 역시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늘 그래왔단 듯 이를 닦고(물론 시늉만), 빵을 굽고, 빵 위에 크림(물론 가짜)을 올리고 아침 식사를 한다.

(좌) <레이디스 맨>, (우) <바비>

바비들이 저마다의 바비 하우스에서 준비를 하는 장면은 제리 루이스 감독의 <레이디스 맨>에서 영감을 받았다. <레이디스 맨>은 각 방에 위치한 여성들이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을 연속적인 카메라 무빙으로 보여준다. 또한, 거울이 없이 테두리만 있는 가짜 거울을 보고 단장을 하는 바비의 모습도 이 영화로부터 힌트를 얻었다고.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