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사체와 상상력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사소하고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서 그 씨앗이 시작되며, 제아무리 작은 공간일지라도 뿌리를 내릴 수만 있다면 언제든 그 생명을 움틀 수 있다. 작은 포자들이 모여 복잡한 소우주를 형성하는 것처럼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동떨어진 요소들을 모이면 인간의 상상은 그 어디든 손을 뻗을 만큼 거대해진다. 상상력도 곰팡이도 결국 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동력만 존재한다면, 그 어떤 것들보다 빠르고 거대하게 몸짓을 불릴 수 있다. 8월 2일 개봉한 박세영 감독의 신작 <다섯 번째 흉추>(2023)가 지닌 무한한 아이디어는 이번 영화의 소재인 곰팡이처럼 무한하게 증식하고 번식할 힘을 지니고 있다.

<다섯 번째 흉추>는 한 연인의 불화 이후 곰팡이 덩어리가 자라나기 시작한 침대 매트리스가 서울의 여러 공간을 떠돌기 시작하면서 점차 인간의 뼈를 탐해 고유의 육체를 형성하여 기묘한 생명체로 성장해 가는 크리쳐물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기존의 크리쳐물이 거대한 서사를 기반으로 공포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섯 번째 흉추>는 매트리스 속에서 번식을 시작한 곰팡이라는 사소하지만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판 삼아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전개한다. 로그 라인을 읽는 지금도 도저히 가늠이 안 될 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다섯 번째 흉추>를 둘러싼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새로운 크리쳐, 새로운 비쥬얼의 탄생

박세영 감독은 2019년 단편 <캐쉬백>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 편집상을 받은 이후로 <Godspeed>(2020), <Vertigo>(2021) 등 다양한 단편 작품을 연출하며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큰 주목을 받아왔다. 장르 영화 외에도 실험 영화, 패션 필름, 뮤직비디오, 사진 등 다양한 예술 문화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2021년 루이비통 X BTS 패션 필름(LVMenFW21)을 <소공녀>(2018)의 전고운 감독과 함께 연출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장르에 상관없이 독특한 색감과 화려한 테크닉을 가미한 파격적인 비쥬얼을 앞세운 박세영 감독만의 연출 기법은 이번 <다섯 번째 흉추>에서도 도드라진다.

존 카펜터와 일본 핑크 필름, 그리고 B급 호러의 연출을 참고했다는 인터뷰에도 드러나듯, 매트리스 속 곰팡이가 인간의 뼈를 뺏어 육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CGI가 아닌 미술감독과의 DIY 형식으로 연출한 방식은 마치 현미경으로 괴생명체의 탄생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이 곰팡이 크리쳐가 점차 고유의 형태를 지니기 시작하면서 인간과 크리쳐 간의 관계가 형성되는 점 또한 유심히 지켜볼 포인트다. 부글거리는 음성에서 시작하여 알아들을 수 없는 울음소리를 거쳐 희미하게 들리는 인간의 언어로 진화하는 이 곰팡이의 언어는 어느 순간 짧게나마 인간과 교감하기도 한다. 분노와 욕망을 먹고 산다는 기존 크리쳐물의 문법과 달리 <다섯 번째 흉추>의 곰팡이는 인간의 사랑, 애증, 걱정, 죽음 등 다양한 감정과 마주한다. 단순한 공포와 기괴함의 대상을 넘어서 <다섯 번째 흉추>가 직조한 크리쳐는 인간과 공명하는 슬픔과 무형의 감정을 어루만진다.


가장 기이한 방식의 로드무비

근래 본 적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창조한 크리쳐에 모든 관심이 빼앗길지 모르지만, <다섯 번째 흉추>는 어떤 면에서 강북구로부터 연천군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로드무비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곰팡이가 서식하는 매트릭스는 ‘결’(문혜인)과 ‘윤’(함석영) 두 연인의 자취방에서 시작하지만, 이내 모텔 객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호스피스,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밤거리와 스타렉스 차량을 거쳐 끝내 연천군의 주상절리에 도착한다. 박세영 감독이 기자 간담회에서 밝히길, 이런 일련의 로드 무비는 그의 자취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서울 중심부에서 자취를 시작하여 오르는 월세에 의해 점차 서울 밖으로 밀려 나갔던 경험이 인간이 되고 싶지만 끝내 중심에서 멀어져 가며 ‘인간 되기’에 실패한 <다섯 번째 흉추> 속 곰팡이의 여정에 묻어난다.

사실 박세영 감독에게 있어 어떤 인물 혹은 대상의 이동은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 중 하나다. 그의 단편 데뷔작인 <캐쉬백>은 중고 거래를 위해 밤이 깊어져 가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우는 물건과 함께 움직인다. 2020년 공개한 단편 <Godspeed>는 검은개 조직의 하수인들이 서로 다른 물품을 끊임없이 운반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예술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랑 (사이) 깍두기>(2020) 역시 수많은 예술가 사이를 유영하는 ‘배달부’라는 존재를 앞세운다. 박세영 감독에게 인물 혹은 대상은 줄곧 도시와 도시 주변부를 유영하며 끊임없이 이동하고 가로지른다. <다섯 번째 흉추>의 곰팡이가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 역시 로드무비라는 문법을 통해 주변부로 밀려나며 가능한 이야기다. 그 여정 속에서 곰팡이는 죽기 직전 환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랑을 나누거나 다툼을 이어가는 연인들의 삶을 잠잠히 목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특한 캐스팅 비하인드와 실험적인 사운드트랙

<다섯 번째 흉추>의 로드무비는 연인, 배달기사, 환자 등 다양한 인물을 만나며 전개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단연 독립영화계의 라이징 스타 배우 문혜인이다. 2016년부터 크고 작은 단편 영화에 다수 출연한 문혜인은 <에듀케이션>(2019),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 <소피의 세계>(2021)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미 두터운 팬을 보유한 배우다. 그녀는 <다섯 번째 흉추>에서 ‘결’ 역을 맡아 연인과의 다툼을 겪고 소멸한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까지 곰팡이의 탄생과 번식, 죽음에 기여하는 가장 결정적인 존재는 ‘결’이다. ‘결’의 연인으로 출연한 ‘윤’ 역의 함석영 배우는 박세영 감독과 오랜 기간 음악감독으로 합을 맞췄다. 건축을 전공하고 인디밴드 유기농맥주의 보컬 및 기타로 활동했던 함석영 배우를 이번에는 음악감독이 아닌 연기자로 캐스팅한 것이다. 재즈 베이시스트인 정수민 역시 이번엔 ‘준’ 역을 소화하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준'의 연인인 ‘율’ 역의 온정연 배우 역시 새로운 얼굴이다. 박세영 감독의 신작<지느러미>에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크리쳐 무비를 비롯한 호러 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단연 사운드트랙이다. 지알로 무비의 대가인 마리오 바바 혹은 영국 컬트 무비의 대명사인 켄 러셀의 영화에는 공포와 신비스러움을 배가시키는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함석영 배우는 이번에도 스트링과 플루트를 이용한 트랙을 프로듀싱하여 영화에 함께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는 한민희 음악감독이 전반적인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다. 문혜인 배우의 단편 연출작인 <트랜짓>(2022)에도 참여한 적 있는 한민희 감독은 영화 음악뿐만 아니라 승무 음악, 댄스 필름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박세영 감독의 주문대로 거칠고 단선율의 음악을 제작하는 데 집중했다. 거칠지만 동시에 세밀한 사운드트랙은 매트릭스에 살고 있는 곰팡이의 심연을 대변하는 하나의 언어로 기능한다.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실험적이면서 기묘한 정서는 한민희 감독의 세밀한 터치로 완성되었다.

8월 2일 가장 더운 시기에 개봉하는 박세영 감독의 <다섯 번째 흉추>는 근래 경험하지 못한 감각의 극단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다. 기묘한 생명체의 탄생의 순간으로부터 끝내 도착하는 영겁의 미래까지. 시간과 공간, 감각과 지각을 아우르는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고 싶다면, 극장에서 <다섯 번째 흉추>를 직접 관람하는 것은 어떨까?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