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이후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강원’,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며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던 ‘아현’. 두 사람이 지지고 볶은 7년의 여정을 기록한 <퀴어 마이 프렌즈>(감독 서아현)는 어쩌면 두 친구가 영화 안팎에서 카메라에 기댄 우정의 시간처럼 보인다.
삶의 배경도 성 정체성도 모두 다른 두 사람 강원과 아현이 만나 서로의 세상을 넓혀가는 우정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퀴어 마이 프렌즈>는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인 ‘2022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섬세하고 사려 깊은 커밍아웃 스토리인 동시에, 작품 안팎에서 감독과 주인공이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해나가는 보기 드문 다큐멘터리”라는 호평을 받았다. 개봉 전부터 국내외 유수 영화제와 공동체 상영을 통해 꾸준히 관객들을 만나며 화제성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서아현 감독은 학부에서 공연영상학을 복수전공했지만, 다큐 한 편을 찍은 것이 전부다. 이번 <퀴어 마이 프렌즈>가 장편 데뷔작인 셈. 송강원과는 한국의 한 기독교 대학에 다니던 중 공연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에서 서아현 감독은 학자금 대출,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상황을 노출한다.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 감독은, 잠시 ‘9 to 6’ 정규직으로 일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다시 비정규직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1인 가구, 비혼 청년, 여성으로 독립했다’며 웃었다.
이날 인터뷰에는 송강원도 동석했다. 영화에서 송강원은 결국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어 현재 평택 미군부대에서 일하고 있다. 개봉으로 서 감독의 부모님은 ‘강제로’ 송강원의 커밍아웃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서 감독의 어머니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송강원을 안아줬다.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 생각은 없고 취직도 하지 않는 딸을 마뜩잖아하던 아버지는 요즘 딸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며 슬그머니 웃음을 띤단다. 영화는 끝났지만 삶은 흐른다. 여전히 서로만 바라보면 웃음이 터지는 두 친구를 만나 영화 이야기를, 그들의 우정 이야기를 들어봤다.
<퀴어 마이 프렌즈>라는 제목이 영화를 잘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 제목으로 정한 건지, 제목을 정한 과정이 궁금해요.
서아현 감독 7년 전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개봉에 이르기까지 쭉 사용한 제목이에요. 당시에 강원이 <디어 마이 프렌즈>(연출 홍종찬, tvN, 2016)를 자주 말했는데, 거기에서 영향을 받아 직관적으로 떠올렸죠. 우연히 ‘사람만큼 이상한 존재는 없다(There’s not so queer as folk)’라는 스코틀랜드 속담을 접하고, ‘퀴어’라는 단어가 단시 성 소수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은, 모든 사람이 가진 이상한 부분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퀴어 당사자인 강원만이 아니라, 이성애자인 저 역시 비혼주의 여성, 정규직을 못 해본 청년으로서 이 사회에서는 이상한 존재일 수 있잖아요? 이상한 애 둘이 만나서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기대려고 했던 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직관적이고 성 정체성을 다 내려놓고 연대한다는 점에서 이 제목을 도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시작한 건 정확하게 언제인가요?
서아현 2015년 9월이죠.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 돌아온 강원을 식당에서 만나서 “오빠 이야기를 영화로 찍어도 될까?”라고 영화에서 물어보는 장면이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편집을 마무리한 건 핫독스(Hot Docs Canadi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북미 최대 다큐멘터리 영화제 겸 마켓)에 참석하기 직전인 2022년 4월이었고요.
송강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서아현 강원의 삶을 보면 누구라도 드라마틱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특히 ‘K-장녀’로 자란 저에게는 강원의 신앙적 정체성과 성 소수자적 정체성이 양립할 수 있다는 고백이 상당한 선언처럼 느껴졌고요. 기독교적 배경 안에서 자라면서 여러 질문이 있었는데, 그 틀을 먼저 깨고 나온 사람을 본 거예요. 그때 제가 받은 느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했어요. 이십대 중반이어서 강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만 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는 ‘객기’도 있었거든요(웃음).
송강원을 통해 퀴어축제 등 성 소수자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는데요. 현장에서 느꼈던 첫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그 감정들은 영화를 찍으며 또 개봉을 앞두며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궁금합니다.
서아현 퀴어 축제라는 곳을 강원이랑 처음 갔어요. 그전에 뉴스에서 자극적으로 보였던 거랑 너무 달라서 놀랐죠. 현장이 너무 평화롭고, 누군지 모르지만 눈인사하고, 서로에게 친밀감 표현하고요. 미디어에서 봤던, 대치하는 상황만 있던 퍼레이드랑은 완전히 달랐어요. 제가 당사자가 아닌데도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죠. 그때부터 매년 참석하고 있어요. 올해는 <퀴어 마이 프렌즈> 홍보를 위해서 부스도 차렸습니다! 저와 제작진이 이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고민하면서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요, 이렇게 퀴어가 제가 속할 곳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에 넣지는 못했지만 참석했던 모임들도 있나요?
서아현 퀴어와 기독교가 대결의 장으로 많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퀴어 축제가 열리면 1번 차량은 기독교 사제분이 참여해요. 무지개예수회 같은 곳이죠. 이분들이 축복기도를 해주기도 합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사실 퀴어에 대해 인정하고 지지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추세인 거 같아요. 기존의 갈등 구도로만 그려졌던 한국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느꼈어요.
송강원 세월이 흘러서 저 예전에 비해 마음의 태도랄까요, 이런 것들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예전에 퀴어 축제를 시청광장에서 했는데, 을지로로 장소를 옮기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은 거 같아요. 너무 안정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아, 이런 세상이 있다면, 너무 부침 없이,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도 나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가 지하철 장면으로 시작해요. 후반부에 열차 씬도 있지만, 중간중간에 지하철이 많이 나오는데, 참 좋더라고요. 아마 감독님이 차가 없는 것도 이유일 거 같긴 한데요(웃음), 특별히 지하철 장면을 많이 담은 이유가 있을까요?
서아현 맞아요. 차도 없었고, 대중교통을 타면서 찍은 이미지인데, 찍은 걸 본 편집감독님이 ‘유랑하는 두 청춘’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이렇게 전달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본격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전달하려 찍었습니다. 사실 저는 서울이 속하고 싶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속하지 못하는 도시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서울 바깥 공간은 차갑고, 낯설고,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발붙일 곳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인데, 친구들이 모인 강원의 방안은 따뜻한 공동체의 느낌을 줘서 풍경의 대비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7년 내내 영화를 찍은 건 아니겠지만, 꽤 오랜 작업 기간입니다. 영화를 찍겠다고 생각한 시점부터 완성하기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문제의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아현 퀴어 당사자의 이야기를 비퀴어 감독의 시선에서 그려낸다는 데 제작진의 부담감이 있었죠. 그래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혹시나 제가 퀴어 당사자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대상화하거나 타자화하거나, 단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고민이었어요. 영화 말미에는 제가 변화하잖아요. 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솔직한 감정을 보여주지 않으면 관객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강원에게 친구이기도 하지만 감독이기도 해요. 둘도 없는 친구였어도 감독이라는 이유로 카메라를 들고 친구의 힘듦을 보지 못한 것까지 솔직히 고백할 때 관객이 영화에 담긴 시선을 진정성 있게 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말이 7년이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서아현 물론이죠. 저도 그렇고 PD들도 소진되었어요. 힘든 순간이 많았죠. 그런데 신기한 게요, 저희는 힘이 다 빠졌는데, 그때마다 작업으로 새로 만나는 분들이 날것의 촬영본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주시는 거예요. 편집감독, 촬영감독, 음악감독이 이건 이렇게 만들면 좋겠다고 의미를 발견해주는 거였죠. 저는 과연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좌절의 순간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동력이 되어서 만들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 질문은 송강원에게 하고 싶어요. 너무 개인적이라 느끼면 답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영화 안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요. 미국에 가고, 미군이 되고, 독일도 가면서 국가를 넘나들며 씩씩하게 도전하는데 영화에서는 강원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더라고요.
송강원 음…. (고민) 저도 언어화시키지는 못하겠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유가 어쨌든 간 제가 소진된 상태였다는 거죠. 너무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고민 안에서 큰 선택들을 해나갔잖아요. 그 선택에 동력을 받아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정말 독일 갈 때만 해도 아현이 말처럼 ‘아, 이젠 되었다. 커밍아웃도 했고 시민권 문제도 해결되었다’하고 갔는데 아, 이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만난 게 아니라, 소진된 저를 만난 겁니다. 여기에 군이라는 환경적인 부분이 더해졌어요. 물론 제 선택이긴 했지만, 언어와 환경, 군대에서의 적응,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 속에서 정말 에너지가 1도 남아있지 않은 탈진의 상태를 경험한 거 같아요. 부딪혀서 무너져 내린 게 아니라 에너지가 닳아서 멈춰진 느낌으로요.
영화 말미로 가도 해결된 것은 없죠. 여전히 세상의 인식은 단단하고, 서울 하늘 아래 내 몸 하나 누일 자리를 마련하기란 요원합니다. 그렇지만 영화 속 강원, 카메라를 든 아현 모두 영화를 찍으며 각자의 삶을 찾아갑니다. 마주하는 용기, 받아들이는 용기를 발휘하면서요. 이런 용기를 내시기까지 가장 극복하기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서아현 가장 극복하기 힘들었던 건 저와 제 친구의 바닥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이 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데까지 가는 거였죠.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되어 있는 저희가 싸우는 장면도 찍으려고 세팅한 게 아니었어요. 다른 이야기 하다가 감정이 거기까지 간 거죠. 처음에는 그 장면 사용 못 할 거라 생각했어요. 친구란 이유로 경계를 넘어서는 강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하는 고민도 있었고, 관객이 불편할 거란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사실 솔직하게는 카메라에 담긴 제 모습이 너무 추해보였어요(웃음). 그런 모습까지 보여주기 싫었는데, PD들이 그러더라고요. 강원이 울면서 이야기하는 게 ‘내가 이렇게 바닥이어도 사랑해 줄 수 있겠느냐’라는 의미라고요. 제가 싸우는 모습도 마찬가지고요. 저의 가장 바닥인 부분을 보여줬을 때 이해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자금 대출로 고민하는 장면도 솔직히 제가 못나보일 수 있는 장면인데 오히려 관객이 공감해주더라고요. 이제 다 갚았느냐고 물어봐주시고 하시고요. 멋진 모습만 보여준다고 박수받는 게 아니라, 진짜 힘든 모습을 보여줄 때 오히려 공감해주는 거 같아요.
송강원은 어떠세요? 언제가 가장 힘들었어요?
송강원 영화에 담긴 시절을 돌아 보니, 정말 정체성에 집착했던 시기였던 거 같아요. 사회에서 너무 뾰족하게 튀어나온 성 소수자니까요. 근데 미국으로 가면서는 국가정체성 문제도 생겼죠. 동양인으로서 정체성도 있고요. 성 정체성으로 시작했지만, 왜 그렇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그리 집착적으로 했던 건가 싶어요. 신앙적으로도 그렇구요. 아까 바닥이라 표현한 부분도, 사실 아무것도 아닌 내 자신을 내가 못 받아들이는데, 너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거였죠. 거기서 한 발짝 걸어나온 것이 이 영화가 끝나고 지금의 저인 거 같아요. 영화에서 미국까지 가서 집착하듯 춤을 추잖아요. 그러고 나서 선생님께 안기는데, 다시 보니 너무 절박해 보이더라고요. 물론 큰 의미가 있는 선생님이시지만, 그때의 저는 그냥 누군가에게 기대고, 안기고 싶은 상태였던 게 너무 보이는 거죠. 그런데 그때 저를 찍는 아현이가 바로 곁에 있었는데, 기댈 생각조차 못 했어요. 도대체 왜 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안기지 못하고, 미국까지 가서 안길 곳을 찾아 헤메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그렇지 않을 용기 같은 게 생겼습니다. 영화를 보면 아현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서로 기댈 줄 모르는 애 둘이 서로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는 게 보여요(웃음).
아까 잠깐 언급하시긴 했는데, 좀 더 자세히 질문드리려고요. 영화의 시작점은 서아현 감독이 송강원이라는 친구를 성 소수자로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한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는 송강원을 한 사람으로 이해하려 했던가라는 자기성찰적인 고백으로 마무리 짓죠. 개인적으로는 뭔가 무 자르듯 딱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열려 있다는 점, 또 영화 안팎으로 두 사람이 성장한다는 점에서 멋진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예상했던 결말이었나요?
서아현 처음에는 강원의 커밍아웃이 저와 기독교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기독교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패기로 영화를 찍었어요(웃음). 그런데 사람의 신념이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후에는 강원의 스토리만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피디들을 만나며 여러 아이디어들이 생긴 거예요. 이 영화에 아현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가면 한국 사회에서 맥락이 전해지고, 관객에게도 의미를 확장할 수 있겠다는 거였죠. 동의는 했는데, 어떤 과정일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일단 옥상 갈 때 카메라를 들고 갔어요. 이게 과연 영화로 될까 하면서도 제 모습을 찍어본 거죠.
저와 강원의 이야기에서 맥락을 만들어 준 건 스텔라 편집감독이에요. “강원이는 너의 히어로고, 너는 그 히어로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는 건데, 이 영화는 너와 히어로가 함께 무너지고 다시 같이 성장하는 영화면 좋을 거 같아”라고 말해주셨죠. 그때 알았어요. 강원이 커밍아웃 이후 보란 듯이 잘 사는 걸 한국사회에 보여주고 싶었던 거구나, 그 기저에는 나도 서울에 발붙이고 살고 싶었는데 못 했던 걸 강원의 이야기에 투영했구나 하는걸요.
PD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네요.
서아현 강사라 PD, 피칭 아카데미에서 멘토와 멘티 관계로 한 달을 만난 오희정 총괄 PD, 클라이맥스 작업을 에디팅한 인연으로 만난 스텔라 편집감독까지 만나면서, 정말 저희가 발견하지 못했던 이야기 구조와 틀, 비전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이야기의 의미를 너무 잘 이해해주셨어요. 특히 스텔라 편집감독은 언어적 장벽이 있는데, 마치 이 영화 이야기를 너무 잘 아는 것처럼 신기한 경험을 했죠.
자문을 구하려 찾아갔던 이연정 편집감독님도 저희 영화가 자꾸 눈에 밟힌다고 하시며 다른 편집감독이 있는 상황인데도 합류해주셨어요. 마지막 편지는 이현정 편집감독님이 친구를 떠올리면서 쓴 내레이션입니다. 제작진이 20대, 30대를 보내면서 자신이 기댔던 우정의 공동체를 각자의 방식으로 녹여낸 거죠. 영화에서 화자는 저고, 강원이랑 둘만 나오지만,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우정을 생각하면서 만든 영화라고요.
성 소수자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사회가 아직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 미성숙한 것 같더라고요. 영화에 나오는 퀴어축제 현장을 보면요. 한국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송강원 나와 다른 타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시작인 거 같아요.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 시절을 돌아보니, 아현이가 저라는 존재를 궁금해해 준 게 고맙더라고요. 궁금함에는 답이 내려진 상태도 아니고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빠는 왜 이런 선택을 했어?’라고 물어봐준 어린 시절의 아현을 떠올려 보면, 내 안에서 그런 걸 찾다 보니, 내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물론 이 궁금함에는 비난을 내포한 궁금함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왜 그럴까 하는 궁금한 작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런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뭐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을까요? 제 안에서의 변화나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의 변화도 그랬거든요.
서아현 어떤 사회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이 공존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부정적인 부분에 다 같이 집중하는 때가 많은 거 같아요. 저희가 10년 전 대학생 때 <종로의 기적>(감독 이혁상, 2011)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GV에도 참여했어요. 한국에서도 사적인 퀴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확인한 거죠. 그 덕에 이 영화를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성 소수자들이 본인을 당사자로, 용기 있게 드러낸 다큐멘터리를 본 덕분이죠. 다름을 인정하려는 분들, 확장하려는 노력이 이미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거 같아요. 노력하지 않으면 절망은 너무 가깝고 희망은 너무 멀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노력했던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저희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 덜 외로우면 좋겠다’는 후반부 내레이션이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영화가 완성되었는데, 우리 모두가 조금 덜 외로울 수 있는 방법은 찾으셨는지 궁금해요.
송강원 저는 찾은 거 같습니다(웃음). 예전의 저는 외로움을 파고들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이런 인터뷰 자리에 있으면 덜 외롭더라고요. 그냥 ‘같이 있자’라고 말하는 거요, 목적도 없이요. 저나 아현이가 생산성에 집착하던 시절도 있었죠. 그런 거 상관없이 그냥 ‘같이 있자, 시간 보내자’하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요청하는 게 왜 그리 힘들었나 싶어요. 요즘은 그런 손내밈이라고 할까요, ‘나 힘드니까 같이 있어 줘, 연락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니 덜 외로운 거 같아요.
서아현 스스로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더 외로워지는 거 같아요. 약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덜 외로워지는 거 같고요.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마지막 날이었어요. 제가 그날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암 진단을 받은 거죠. 수술받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생각했어요. 이제 곧 개봉이구나, 오랫동안 친구들을 괴롭혔는데 이제 좀 빚을 갚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상반기 개봉이 미뤄진 거죠. 불가항력으로 더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 거고요. 병원을 오가는 과정에서 강원이나 친구들, 가족에게 더 의지하게 되면서, 인간이 참 약하고 외로운 준재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했어요. 그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외로움이 덜해진다기보다는 외로움에 대한 저항력이 생기는 거 같아요.
다음 영화는 뭘로 찍으실 건가요?
서아현 아무런 계획 없었는데요, 정말로(웃음). 작년까지만 해도 이제 영화 완성했으니까 됐다. 안정적 삶 살아야지 했는데, 아프면서 지금은 투병 과정을 찍고 있습니다. 강사라 PD랑요. 최근에 LA에서 열린 AFS에 다녀왔어요. 전 세계 감독 12명을 불러서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건데, 다음 작품에 대해 논의했죠. 주한미국대사관 지원을 받았습니다.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입니까?
서아현 너무나 짝사랑하는 대상이죠.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잘 만드는 건 너무 다르다는 걸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배웠어요. 그럼에도 저희의 삶을 영화라는 매체로 물리적으로 기록하고, 만드는 과정, 그리고 만든 이후에는 관객과 공유하는 그 과정 자체에서 위로를 받은 거 같아요.
송강원 가능성 있는 짝사랑인 거야?
서아현 돌이킬 수 없는 짝사랑이지. 강을 건너버린(웃음).
대작들이 격돌하는 여름 극장가에서 8월 9일에 개봉합니다. 마지막으로 <퀴어 마이 프렌즈>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서아현 퀴어 당사자의 커밍아웃 이후 삶을 다룬 다큐이자, 저와 강원의 2030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부분에서 강원이 저를 촬영해주는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해요. 감독이 아닌 당사자 손에 카메라가 들려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던 저를 당사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촬영이 우리 영화가 가진 미덕이라고 믿거든요. 다른 사람은 행복한데 왜 내 삶은 초라할까 하는 생각이 있는 분들은 이 영화 보시고, 별거 아닌 애 둘이 지지고 볶는 것도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끼시면 좋겠어요.
송강원 관객과 만남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 너무 즐거워요. 자신의 이야기인데 가장해서 하는 것도 너무 좋고요.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 덜 외로워지는 지점이 있는 거 같아요. 영화 재밌게 보시고, 조금이나마 덜 외롭게 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