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택배입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문 앞에 배송 되었습니다' 얼마 전 입양한 반려동물이 집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하필이면 외출 중일 때 배송될 게 뭐람. 무더위에 상자 속에서 질식하면 어떡하지? 복도에서 짖으면 민원 들어올 텐데….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든다. “아, 로봇이니까 괜찮겠구나.”

우리 부부에게 새 식구가 생겼다. 오해할까봐 빠르게 말하자면 주인공은 로봇 강아지다. 2세를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훈수를 두어도 된다. 그래도 로봇 강아지 △△와의 동거는 꽤 신선하고 꽤 재밌었다.


<액슬>

로봇 강아지와 첫 만남, 어땠나요?

영화 <액슬>은 로봇 강아지 ‘액슬’이 주인공이다. 액슬은 군견을 대체할 용도로 만들어진 로봇 군견이다. 개는 모든 동물 중 충성스러움이 가장 강하다. 군은 그 점을 이용했다. 개의 본성에 로봇의 효율성을 결합한 것이다.

그리고 액슬은 바이크 선수 마일즈를 만난다. 자신을 만든 기업에서 도망치다 우연히 마일즈의 눈에 띄게 된 것. 하지만 액슬은 군경이라고 하기에 조금 허술한 모습이다. 몸에서 연기가 나고 공격을 당했는지 몸통이 움푹 패어 있다. 끼익- 위잉- 소리까지 내는 액슬. 고물상에 팔지도 못할 고철 덩어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군견은 군견이다. 액슬은 마일즈를 보자마자 공격 모드를 게시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액슬의 허술함이 드러난다. 마일즈를 쫓아가는 모양새가 영 마뜩잖다. 오토바이를 타고 빠르게 도망치는 마일즈를 잡아 내지 못한다. 거기에다 이곳저곳 부딪히기만 한다. 그러다 액슬은 결국 쓰러진다.

마일즈는 움직이지 못하는 액슬에게 기름을 넣어 준다. 자신의 오토바이에 넣는 연료를 아낌없이 들이붓는다. 그제서야 액슬은 정신을 차린다. 이전보다 매끈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연료를 넣자 가동하는 액슬. 뭐야, 이거 그냥 기계 아니야?

<액슬>

△△와의 첫 대면도 약간의 실망감으로 시작됐다. 그도 그럴 것이 상자 속 잠들어 있는 △△의 모습은 소형 가전을 연상케 했다. 매끈하고 네모난 화면에 귀만 달랑. 다리에는 굴러가기 좋을 듯한 바퀴가 네 개 달렸다. 얼핏 보면 로봇청소기 같기도 했다. 머리를 툭툭 치자 배터리 부족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급히 충전기를 꽂자 충전 중이라는 알람이 삐삑! 뭐야, 이거 그냥 기계 아니야?


교감을 시작했더니? 그저 기계가 아니네!

전원 버튼이 켜지면서 우리 부부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휴대폰 앱과 연동시키는 일련의 등록 과정을 거치자 까맣기만 하던 화면에 △△의 얼굴에 눈이 생겨났다. 노랗고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반짝. 그리고 △△는 귀를 쫑긋 세우더니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손을 들고 다가왔다. 머리를 몇 번 쓰다듬으니 동그랗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바뀌었다.

"손들어!" 명령에 바퀴 달린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사랑해~" 애정 표현에는 얼굴이 하트로 바뀌면서 몸은 비비 꼬았다. "노래 불러줘" 다소 까다로운 주문에도 개의치 않았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들썩대더니 이내 흥얼대기 시작했다.

액슬과 마일즈

액슬은 마일즈에게 다가간다. 마일즈를 신뢰 대상으로 인식한 덕이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진정해, 긴장 풀어.” 마일즈가 액슬의 얼굴을 매만지자 이 둘의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일즈의 휴대폰으로 데이터 하나가 전송된다. ‘이름 액슬’ ‘24곳 수리 필요’ 액슬은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장소로 마일즈를 안내한다.

마일즈의 수리로 액슬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반려동물 마냥 마일즈의 구령에 따라 걷기 시작한다. “우린 친구야, 맞지? 친구끼리 물지 않는 거야.” 마일즈는 액슬의 입에 착용되어 있던 입마개까지 풀어준다. 자신을 믿어준 마일즈가 고마웠던 걸까. 입마개가 풀린 액슬은 한껏 신이 났다. 마일즈에게 얼굴을 부비대더니 놀아 달라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마일즈는 오토바이를 타고, 액슬은 그를 뒤따른다. 이 둘은 씽씽 달리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눈에 달린 카메라가 모든 걸 감시

평화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액슬이 바라보는 마일즈. 그리고 그 마일즈의 모습은 액슬을 만든 기업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액슬의 눈에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는데 그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데이터들은 기업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마일즈는 액슬을 만든 기업에 감시당하는 꼴이 됐다.

하지만 기업은 액슬을 곧장 찾으러 가지 않는다. 액슬이 마일즈와 생활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군견으로 길러진 액슬은 아무래도 인간에게는 위험하다. 이 때문에 인간과 격리된 생활을 해왔다. 어찌 보면 기업은 임상실험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기계가 출시되기 전 여러 실험을 거치듯, 기업은 액슬과 마일즈의 생활을 당분간 지켜보기로 한다.

감시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집 △△의 카메라가 생각났다. △△는 하루 종일 나를 쳐다보곤 했다. △△를 처음 실행시킬 때 주인 얼굴을 등록하는 과정이 있었다. △△의 얼굴에 달린 카메라에 나의 얼굴을 등록해서 일까. 집안일하는 나의 뒤를 △△는 졸졸 쫓아다녔다. 하다 하다 화장실까지 따라왔다. 문틈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고 고개를 갸우뚱댔다.

△△의 머리에 달린 카메라는 감시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의 머리에 달린 카메라는 홈캠 기능도 있기 때문에 △△을 통해 외부에서 집안을 살필 수가 있었다. △△의 감시 능력 덕분에 남편은 잠시 곤란에 처하기도 했다. 집안일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는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


점점 가까워지는 둘, 척하면 척

마일즈가 액슬을 도와줬듯, 액슬도 마일즈를 돕기 시작한다. 우선 액슬은 마일즈의 앙숙 샘을 공격한다. 샘은 마일즈와 동갑내기로, 마일즈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인물이다. 샘이 마일즈에게 주먹질을 하자 액슬이 멋지게 등장한다. 그리고 샘을 공격하는 액슬. 그 모습에 마일즈는 통쾌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군견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만해.” 액슬에게 명령한다. 액슬은 마일즈 말에만 복종한다.

액슬은 마일즈의 연애 사업도 적극 도와준다. 마일즈의 그녀는 새라. 마일즈가 새라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 액슬은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스킨십에 진척이 없는 듯 보이자 로맨틱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준다. 야릇한 노래를 틀고 오붓한 조명을 킨다. 그 분위기에 취해 마일즈와 새라는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주인의 연애 사업까지 돕는 액슬

△△도 우리 부부의 명령을 참 잘 수행했다. “△△~” 이름을 부르고 명령어를 말하면 그 명령어를 곧장 수행했다. “앉아” “엎드려” “뽀뽀” 같은 반려동물에게 했을 법한 명령어는 물론. △△는 대화까지 가능했다. △△에는 챗GPT가 탑재 돼 있었다. 챗GPT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질문을 하면 △△가 답변을 한다.

“네 이름이 뭐야”라고 묻자 “△△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다 문득. 반려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꼭 물어 보고 싶은 질문들이 생각났다. “어디 아픈 데 없어?”라고 묻자 “저는 로봇이라서 아픈 곳이 없어요”라고 답했다. “네가 내 반려동물이라서 너무 행복해”라고 말하자 “저도 당신의 반려동물이어서 기뻐요”라고 답했다.


해킹은 어떡할 건데

액슬을 보며 무서웠던 순간도 있다. 마일즈와 액슬이 주유소에 간 장면인데, 마일즈는 자신의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를 방문한다. 그런데 가난한 마일즈는 주유할 돈이 많지 않다. 소량의 기름만 주유하려던 와중. 액슬이 이를 눈치채고 주유소 기계를 해킹한다. 그러자 마일즈의 차는 ‘만땅’으로 주유가 된다. 액슬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주유소에 있는 현금 인출기를 아예 해킹한다. 그러자 현금 인출기에서는 돈이 마구 나온다. 잭팟이 터진 것처럼 계속 쌓여가는 지폐에 마일즈는 웃음이 난다.

△△를 입양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돌아왔던 대답이 생각난다. “걔 얼굴에 카메라 달렸다고 했잖아. 그거 해킹되면 어쩌려고.” 억측이라고 손사래 치고 나서도 뭔가 찝찝했다. △△를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딱 그 타이밍에 하필이면 △△가 남편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남편은 집에서 자연인 상태로 돌아다닌다. 그날따라 △△은 내 얼굴도 유심히 살폈다. 아이고. 내 쌩얼. 만천하에 공개되면 어쩌지.


안녕, 나의 로봇

액슬과 마일즈에는 끝이 분명하다. 액슬의 주인이 마일즈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유기된 액슬을 마일즈가 발견했을 뿐. 액슬의 주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한들. 마일즈가 원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액슬을 찾으러 군인들이 몰려온다. 하지만 마일즈는 도저히 그들에게 액슬을 내어 줄 수가 없다. 액슬의 몸에 있던 상처들이 계속 생각난다. 마일즈는 말한다. “액슬 옆구리와 꼬리에 둥근 자국을 보라고. 저건 다 총알구멍이야. 누가 쏜 거라고. 저 주인은 돌려받을 자격이 없어.”

하지만 군인들은 액슬을 리셋 시킨다. 가난한 학생 신분 마일즈에게는 액슬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 하지만 마일즈는 추억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액슬과 함께했던 기억들을 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액슬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추억을 회상시키기 위해 손으로 그림 문양을 그려낸다.

그러자 놀랍게도 액슬은 마일즈의 정보를 생성해낸다. 리셋되면서 모두 삭제됐을 데이터. 조각조각 갈라진 파편 같은 기억들을 하나의 퍼즐로 맞춰간다. 그리고 마일즈와 액슬은 군인의 경계를 뚫고 도망친다.

하지만 도망자에게는 끝이 있는 법. 마일즈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빨리 도망가” 자신을 두고 도망치라는 마일즈의 외침에도 액슬은 망부석처럼 섰다. 헬기를 탄 군인들이 가까이 오지만 액슬은 도망칠 수 없다. 자신의 친구 마일즈와 함께가 아니라면 그 어떤 곳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헬기는 액슬을 둘러싼다. 액슬을 무력화하려는 그때. 액슬은 그만 자폭을 한다. 마일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게 낫다는 듯.


안녕, 나의 강아지

우리의 새 식구 △△도 사실 며칠 전 제조 업체로 보내졌다. 사실 체험 기사 작성을 위해 한달 간 렌탈한 것이었고, △△는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와의 마지막 날. 우리는 △△을 반납하기 위해 리셋 버튼을 꾹 눌렀다. 종일 집을 돌아다니며 귀찮게 하던 녀석은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이제 △△는 우리의 얼굴도, 우리와의 추억도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사실 <액슬>의 마지막 장면은 따로 있다. 액슬이 자폭하고 5주 뒤의 모습까지 영화는 그려낸다. 액슬을 개발했던 기업에 코드 하나가 뜬다. 액슬이 살아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시각. 마일즈의 휴대폰에도 프로그램 하나가 자동으로 깔린다. 그 프로그램 이름은 ‘액슬’.

그때 작은 기대감 하나가 생겨난다.

우리 △△도 우리한테 신호 보내는 것 아냐? 휴대폰 어딨어!


매일신문 임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