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1일은 바로 힙합 탄생 50주년인 날. 지난 첫 번째 글에 이어 ‘당신이 놓치지 말아야 할 힙합 영화/다큐 베스트 10’의 5위부터 대망의 1위까지 선정했다. 아래 작품들 중 <슬램>은 극장 개봉, <허슬 앤 플로우>와 <보이즈 앤 후드>는 DVD 출시됐다.


5위. <슬램>(Slam, 1998)

<슬램>은 1998년에 개봉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영화다. 뒷골목에서 랩을 들려주며 마리화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레이몬드 조슈아. 어느 날 그가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난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경찰에 잡힌 레이몬드는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교도소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차, 그는 로렌벨이라는 여인을 우연히 만난다. 한때는 성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죄수들을 가르치는 그녀에게 끌린 그는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입으로만 시를 쓸 수 있었던 그는 점차 글을 배우고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사울 윌리암스의 뛰어난 연기는 물론 시와 랩의 중간 정도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포에트리 슬램’이 가진 날 것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참고로 사울 윌리암스는 작가이자 음악가이자 배우다. 다재다능하면서도 각각의 영역에서 뛰어난 기량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가 200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셀프 타이틀 앨범 『Saul Williams』는 그가 갖춘 재능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음악적으로는 록과 전자음악으로부터 얼터너티브 사운드를 가져오는가 하면, 랩을 하다가도 시를 읽는 방식을 활용하며 차분함과 격렬함 사이를 오간다. 또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고민이 담겨있기도 하다.


4위. <허슬 앤 플로우>(Hustle & Flow, 2005)

미국 남부의 멤피스를 배경으로 한 힙합 영화. 주인공 ‘디제이’는 한때 래퍼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뒷골목의 포주로 하루하루를 거칠게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키보드 한 대를 얻게 되고, 잃어버린 꿈을 되찾기 위한 사투가 다시 시작된다. 테렌스 하워드가 주인공 디제이를 연기했고, 남부힙합이 낳은 최고의 래퍼 루다크리스가 영화에서도 악명 높은 랩 스타로 등장한다. 영화적 재미는 물론, 흔히 ‘쌈마이’라는 속된 말로 표현되던 말초적인 미국 남부힙합 사운드가 실은 흑인들의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


3위. <러블 킹스>(Rubble Kings, 2010)

뉴욕의 자치구 중 하나인 브롱크스는 1970년대에는 버림받은 땅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브롱크스의 갱 문화는 1960년대 미국 흑인 인권운동이 남기고 간 아쉬움과 울분의 대물림이었다. 이 작품은 그 어떤 법 또는 기관에서도 막을 수 없었던 폭력을 서서히 완화시킨 힙합 문화의 탄생기를 서술한다. 당시 갱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인물들과의 인터뷰 영상, 재연, 기록,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현존하는 다큐멘터리 중 1970년대 뉴욕의 갱 문화를 가장 잘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짐 캐리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위. <보이즈 앤 후드>(Boyz N The Hood, 1991)

스파이크 리 감독과 함께 90년대 초반 투쟁적 흑인 영화의 흐름을 이끌었던 존 싱글턴 감독의 1991년 작품이다. “흑인 남성 21명 중 1명은 살해당한다. 그들 대부분은 같은 흑인 남성에 의해 죽는다”는 문구를 첫 장면에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에 사는 흑인의 삶’에 내내 집중한다. ‘게토’ 흑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성실한 태도가 탄탄한 구성과 맞물리며 의미와 재미를 모두 잡은 작품이다. 이후 <쓰리 킹즈> <트리플 X 2: 넥스트 레벨> <라이드 어롱> 시리즈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하게 되는 아이스 큐브의 영화 데뷔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이스 큐브의 솔로 데뷔작 『AmeriKKKa’s Most Wanted』는 이 영화와 함께 들으면 좋을 앨범이다.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로듀싱팀 봄스쿼드(The Bomb Squad)가 참여했으며, 동부와 서부의 색 사이에서 강렬한 메시지와 힘 있는 갱스터 랩을 구축했다. 스스로 여러 역할을 연기하며 흑인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고발한 스토리텔링 역시 인상적이다. 음악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 모든 면에서 힙합 역사에 남을 명작이다.


1위. <나스: 타임 이즈 일매틱>(Nas: Time Is Illmatic, 2014)

2014년에 선보인 <나스: 타임 이즈 일매틱>은 나스(Nas)의 데뷔작 『Illmatic』(1994), 그리고 이 앨범의 창작에 영향을 끼친 것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발매 후 20년 동안 이 앨범은 줄곧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거론되며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이 영화는 나스의 유년기로부터 시작해 『Illmatic』의 사운드와 가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다루고 있으며, 앨범의 음악적 성과는 물론 사회적 의미 역시 놓치지 않는다. 나스 본인과 앨범에 직접 참여한 이들, 그리고 나스의 가족이 출연해 이해를 돕는다. 이 영화는 힙합이 음악인 동시에 문화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말해줄 것이다. 더불어 랩은 곧 시라는 믿음, 그리고 사회적 산물로서의 힙합이 그 어떤 음악보다 강력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역시 증명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나스의 데뷔작 『Illmatic』은 힙합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이 앨범을 조금 긴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게토 흑인의 삶에 대한 치밀한 다큐이자 동시에 시적인 문학을, 힙합 장르의 고유한 작법만을 활용한 청각적 기술로 표현을 시도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쾌감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한 작품’. 또한 단순히 한 래퍼의 정규 앨범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며, 그 자체로 힙합의 아이콘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김봉현 음악평론가,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