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

SNS가 <마스크걸> 이야기로 가득 찼다. 7부작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감독 김용훈)이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TOP 10(비영어) 부문 2위를 달성한 것. 8월 23일 넷플릭스 TOP 10 웹사이트(Top10.netflix.com)에 따르면 <마스크걸>은 공개 후 3일 만에 280만 뷰를 기록하며 단숨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비영어) 부문 2위에 올라섰고 한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14개 국가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이한별, 나나, 고현정 3인이 연기)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고, 그의 정체를 알아본 직장동료 주오남(안재홍)이 엮이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후 김모미는 성형수술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고, 사라진 아들 주오남을 찾기 위해 김경자(염혜란)가 이 사건에 뛰어든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바깥세상과 감옥을 오가며 펼쳐지는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성찬얼, 이화정, 주성철 세 기자의 글을 싣는다.


낮과 밤, 두 개의 삶을 살아가는 마스크걸 김모미(이한별)

웹툰과 넷플릭스의 만남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웹툰을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꽤 화제를 모았고, 그중 몇 작품은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다만 불행히도, 필자는 그 '히트작'들 대부분에 만족하지 못한 편이다. 진작에 원작을 본 작품은 핀트가 엇나간 각색에 실망했고, 드라마부터 접한 작품은 원작을 찾아보고 싶을 만큼 훌륭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마스크걸>은 그중 전자에 속한다. 김모미가 인기 BJ를 지나 살인자가 될 때까지, 그리고 그 사건이 주변 인물의 삶을 흔들리기까지. 원작 웹툰의 골조는 그대로 가져왔으나 그 무드나 독창적인 시선을 구현하는 데 실패했다. 드라마와 웹툰이 정말 다른 매체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인간이 가진 위선적인 모습과 추남추녀를 내세워 외모지상주의에 보내는 메시지는, 현실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정서로 변모한다. 요컨대 동정심이 필요 이상으로 발생한다. 일종의 블랙코미디적 성격이 강한 원작은 인간의 이중성을 포착하는 매미 작가의 캐릭터 구축과 희세 작가의 다소 과장된 그림체의 시너지 덕분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스토리의 사건만 남겨두고 캐릭터 성격을 뒤바꾸면서, 실사 매체 특성상 그것을 ‘현실’로 표현해야만 하면서 다소 애매한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완성도가 부족한 것은 아니나, 작품의 특색은 거의 사라졌다. 딱 잘라말하면 또 하나의 '넷플릭스표 드라마'에 불과하달까(이것도 누군가에겐 오히려 좋은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의 최고 장점은 역시나 배우들의 연기다. 누구 한 명 호명하기 어려울 만큼 주연 배우들의 열인이 빛난다. 특히 아니나 다를까, 염혜란은 오늘도 무대를 찢는다.

성찬얼 씨네플레이 기자


역시나 낮과 밤, 두 개의 삶을 살아가는 주오남(안재홍)

‘모미’ 날씬하지만 못생겨서 마스크를 쓰고 BJ로 활동하는 여성. 얼굴을 ‘감춘다’는 초반의 설정을 제외하면 <마스크걸>은 이 정도로 ‘대놓고’ 모든 걸 보여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모든 걸 드러낸다. 모미가 자신을 보호하던 마스크를 벗은 후부터는 전개에 가속이 붙는다. 섹스와 살인이 짝을 이루고, 훔쳐보기와 노출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폭력은 살인을 부르고, 살인은 복수를 낳으며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마스크걸>은 사회병리학적 관점을 빌어 와 외모콤플렉스, 남성주의사회 안에서 고통받고 희생되어 온 여성들을 위한 판을 벌인 살풀이 페스티벌이다. 이 자체가 균형을 벗어나 과장되고, 비뚤어진 전개지만 이야기의 판을 벌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같은 괄시 받고 비루한 여성들은 <화차>에서처럼 자신의 정체를 바꾸어서라도 꾸역꾸역 이 사회의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델마와 루이스>의 여성들 같은 해방감을 맛보다가, <친절한 금자씨> 같은 복수극에 도전하고, <밀양> 같은 도덕적, 윤리적 고뇌 안에서 헤엄친다. <비밀은 없다>와 <올드보이> 같은 비밀과 죄의식 사이에서 발목이 잡히기도 하고, <마더>의 엄마처럼 자식을 위해 행동한다.

마치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케 하는 김모미(나나)와 김춘애(한재이)

명백히 넷플릭스라 가능한 허용 범주 안에서 마음껏, 뻔뻔하게, 눈치 보지 않고, 자극적으로 이 모든 요소들을 차용하는데, 탄탄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전개가 이를 뒷받침한다. 모미를 중심으로 각 화의 주인공이 챕터를 책임지게 함으로써 흥미와 긴장을 불러일으키되, 매 화 짝을 이룬 인물들과 활약해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들어 준다. 김용훈 감독은 멀티 캐릭터의 들고나감을 활용한 전작이자 장편영화 데뷔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거쳐 7부작 시리즈 <마스크걸>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짧은 러닝타임에 모든 걸 풀었다 매듭짓는 영화보다 긴 호흡을 보장받은 시리즈에 와서 진가를 발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보는 건 뭔가 작은 레퍼런스의 조각을 이어붙여 거대하게 만든 ‘패치워크’ 담요를 덮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얼핏 신선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신선함은 이미 앞선 금기를 깨 온 무수한 개별 작품들의 도전들에 대한 ‘빚’을 진 결과이기도 하다. <마스크걸>이 이 흥미진진한 전개를 넘어서 작가적 색깔을 획득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동어반복적인 불러오기를 넘어설 이 작품만의 고유성, 즉 벌린 판을 수습하려는 해법과 노력이 더해졌어야 했다. 이는 명백히 후반부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모든 걸 뛰어넘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새로운 발견 이한별의 신선함, 안재홍의 치밀한 캐릭터 표현력은 압도적이다. ‘비통함’으로 움직이는 모성을 표현하는 염혜란은 ‘어나더 연기 레벨’을 갱신하며, 춘애와 함께 짝을 이뤄 ‘결행’하는 나나의 동적 이미지는 이 시리즈를 생동감 있게 해주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회를 거듭하며 속도감을 더하는 캐릭터 김경자(염혜란)와 두번째 김모미(나나)

<마스크걸>은 물론 1화부터 흥미진진하지만, 마스크걸인 첫 번째 김모미(이한별)와 그의 회사동료이자 추종자인 주오남(안재홍)이 동시에 사라진 뒤, 3화부터 주오남의 엄마인 김경자(염혜란)가 등장하면서부터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빠져들게 만든다.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라인에서 활동하다 사라진 마스크걸을 추적해야 하지만 ‘컴맹’이기 때문에, 문화센터부터 등록해 하늘에서 단어가 쏟아져 내리는 컴퓨터 타자 연습부터 시작한다. 더불어 “어쩔 수 없이 애기들이 쓰는 말을 배워야했제잉”이라는 구수한 내레이션과 함께 ‘레알 오크’, ‘갑툭튀’, ‘방가루 방가’라는 단어를 실생활에 활용한다. 여기서부터 드라마의 색깔은 블랙 코미디로 분명해진다. 매번 자신의 아우라를 갱신하는 것 같은 배우 염혜란은 단연 압권이다. 자칫 무거운 일방통행의 범죄스릴러로 나아갈 수 있는 스토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꽉 붙들어맨다.

여기서 ‘아들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직진하는 경자의 모습은, 캐릭터 이름부터 비슷한 봉준호 감독 <마더>(2009)의 골프채를 든 엄마 혜자(김혜자)를 떠올리게 한다. 내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다른 집 자식이 누명을 써도 상관없다던 <마더>의 혜자처럼, <마스크걸>의 경자도 불에 타 죽어 신원을 알 수 없던 남자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가장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죽은 놈이 어떤 놈인지는 상관없는 것이다.

아들의 인생을 통째로 복습해나가며 사건에 뛰어든 마더 김경자(염혜란)

마치 변영주 감독 <화차>(2012)의 선영(김민희)처럼, 자신의 정체를 계속 ‘페이스오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운명의 김모미는 이한별, 나나, 고현정이라는 세 배우의 몸을 빌려 완성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여성 주인공들이 하나의 집으로 엮이는, 왓챠에서 공개된 미국 CBS 10부작 시리즈 <와이 우먼 킬>(2019)을 떠올리게도 한다. 나나가 연기하는 두 번째 김모미가 김춘애(한재이)와 함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처럼 공조하는 모습은 <델마와 루이스>(1991)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데 마치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식상하고 관습적인 느낌으로 이처럼 다른 작품들을 쭉 떠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마스크걸>만의 분명한 서사의 ‘코어’가 있기에 이 모든 연상 작용들이 흥미롭게 ‘착붙’이다.

개인적으로는 김모미의 본가와 주오남의 본가가 각각 상투적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는 것 정도가 살짝 물음표를 세우게 했을 뿐, 그야말로 ‘시간 순삭’이었다. 한편, 최근 가장 핫한 두 시리즈인 디즈니플러스의 <무빙>과 넷플릭스의 <마스크걸> 모두 ‘청소년관람불가’ 시청등급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각각 이를 연출한 박인제 감독(<모비딕> <특별시민>)과 김용훈 감독(<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모두 이미 충무로에서 장편영화 연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게 느낀다. 어느덧 충무로의 기존 상업영화들이 대부분 가족 단위 관객을 겨냥해 ‘15세 관람가’ 이하 등급으로 획일화되고 그로 인한 표현과 묘사 수위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을 때, OTT 시장이 기존 영화감독들에게 어떤 식으로 어필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분명 중요하게 함께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