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하에 실행되었던 폭압적인 검열과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1970년대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공포영화는 꾸준히 제작되고 살아남는 분야 중 하나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심야 촬영이 대부분이므로 저예산 제작이 가능하고, 정치적, 사회적, 현실적 묘사에 있어 검열과의 충돌이 일어날 요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비교적 안전한 장르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또한 당국이 시행하던 영화 정책으로 한국 영화 3편을 제작하면 외화 쿼터 1편을 주는 시책을 실행했는데 제작자들은 쿼터를 얻기 위해 저예산 한국영화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공포 장르는 쿼터 획득을 위한 편수 채우기의 제작으로 비용 면에서, 제작의 용이성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성공했던 공포영화는 속편 제작, 시리즈 제작으로 이어지면서 그만의 시장을 확보해 나갔다.

박윤교 감독의 ‘한 시리즈’는 <며느리의 한>(1972)이 흥행에 성공하고 <옥녀의 한>(1972), <꼬마신랑의 한>(1973), <낭자 한>(1974)으로 제작이 이어지면서 시리즈로 자리 잡게 된 케이스다. 1970년대의 공포영화들은 선대에 제작되었던 공포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상이점을 보이는데 이는 에로티시즘과의 결합이다. 특히 성적으로 능동적이고 주체적, 심하게는 집착적이기까지 한 여성 주인공들을 (귀신이나 괴물로) 내세운다는 점은 70년대의 공포 장르에서 보여지는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이다. 학자들은 70년대의 영화들에서 전반적으로 에로티시즘의 재현이 증가하고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성적 재현에 대한 검열의 제재가 엄격했던 선대에 비해 유신 이후로 독재 정권이 정치나 이념의 문제에는 더 엄격해지고 이에 대한 보상 혹은 회유책으로 성 문제에는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포영화가 드러내는 변화 역시 이 자장 안에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소자 관람불가'의 <며느리의 한>

한 많은 며느리

이런 맥락에서 70년대에 들어 관습화된 에로틱 공포영화와 80년대에 본격화된 에로 영화, 혹은 성애 영화의 확장은 독재 정권 하의 영화검열과 통제 정책에서 기인한 문화적, 산업적 현상들 중 하나로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탄생한 ‘한국형’ 에로틱 공포영화들 중 한 편인 홍파의 <묘녀>(1974)는 소재와 주제면에서,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공포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홍파는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몸 전체로 사랑을>, 1971년 영화평론 <영화를 보는 눈>에 이어,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나리오 <사람을 찾습니다>로 당선되었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정부의 만행적 영화검열과 통제정책을 비판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것을 도모하고자 이들과 연대했다. 동인들과 공저한 글에서 홍파는 영화검열이 “핵심적인 예술적 영상을 소아병적으로, 신경질적으로 잘라낸다는 것은…, 진취적이며 개혁적인 영상작가의 순수하고 풍부한 발전 의식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는 커다란 바보스러운 악덕(惡德)”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연출 데뷔작 <몸 전체로 사랑을>의 흥행 실패 후 그가 영상시대 운동의 시작과 함께 재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공포 스릴러 <묘녀>다. <묘녀>는 한국의 토속신앙을 공포 장르에 접목한 작품으로 김문수의 소설 「증묘」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증묘 의식’(고양이의 원혼을 이용해 증오의 대상을 죽이는 의식)으로 일어나는 미스터리 연쇄살인을 다룬다. <묘녀>의 여주인공, ‘고여사’(선우용녀)는 과거에 살던 마을에서 결혼 첫날밤에 원인불명의 사고로 남편을 잃는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이유가 그녀를 사모했던 ‘훈’의 아버지가 증묘 의식을 치러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여사는 같은 방법으로 고양이의 원혼을 이용해 훈의 아버지를 죽이고 고아가 된 훈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정착한다. 성인이 된 훈은 고여사의 동거인이자 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늘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그가 욕망을 품는 다른 모든 여성은 고여사의 저주에 의해 살해된다. 훈은 종종 고여사가 증묘 의식을 위해 사육하고 있는 고양이와 교차편집되며 클로즈업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훈을 고여사, 혹은 여성의 성적 쾌락을 위한 재물이자 희생자로 등치 시키는 영화적 설정으로 해석된다.

<묘녀>의 개봉 포스터

영화는 (고여사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체, 검은 고양이를 안고 있는 고여사, 고여사와 정훈의 정사신, 무당의 굿을 지켜보는 정훈의 어린 시절 모습 등 흑백의 스틸 사진들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영화 자체는 컬러로 보여지기 때문에 흑백 사진들은 과거의 기록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사진 위에는 금속으로 된 체인이 동물의 우리처럼 놓여 있는데 그 체인 사이에 인물의 얼굴을 배치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무언가에 얽혀 있다는 것을 상징하려는 은유일 것이다.

스토리는 훈을 유혹했던 여자들이 차례로 죽는 연쇄 살인 사건으로 전개된다. 영화의 본론은 훈과 고여사의 과거 플래시백을 보여주며 사건의 실마리를 드러낸다. 고여사는 과거에 훈의 아버지가 죽인 남자의 신부였고, 그 복수로 고여사는 증묘 의식을 통해 훈의 아버지를 살해한다. 마을을 도망치면서 고아가 된 훈을 데리고 나온 고여사는 그가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가 정부로 삼고 훈과 관계가 있는 여자는 모두 제거한다. 남편을 살인한 자를 죽이고 그의 아들, 훈을 철저히 소유함으로써 2대(代)에 걸친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묘녀>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파격적인 수위로 묘사한다. 이는 자신의 성욕을 충족하기 위해 훈을 소유하고 독점하려는 고여사에 국한된 것이 아닌, 훈의 주변 여성 캐릭터들—훈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다방 여급, 이발소 직원, 훈의 출판사 동료에게도 공통적으로 보여진다. 상대적으로 훈은 의기소침하고 여성들의 욕망을 두려워하는 소극적 캐릭터, 즉 희생양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훈을 사모하는 이발소 직원이 훈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올 때도, 출판사 동료가 그를 여관으로 끌고 갈 때도 훈은 회피하거나 침묵으로 일관, 혹은 수동적으로 반응만 하는 정도다. 즉, 영화가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이 모두 여성 캐릭터에 의해 주도되고 재현되는 것이다.

고여사에게 사육 당하는 '훈'

결국 고여사가 아닌 다른 여자(출판사 동료)의 유혹에 넘어가 하룻밤을 보낸 훈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여 죽고 만다. 영화는 형사에게 “저를 동물 학대로 체포할 건가요?”라고 말하는 고여사가 사실상 증묘 의식으로 훈을 죽였다는 암시를 남기며 결말을 맺는다.

강렬한 에로티시즘과 토속공포를 배양한 하이브리드 영화로 <묘녀>는 특이하고도, 흥미로운 영화다. 그럼에도 <묘녀>를 필두로, 1970년대 에로틱 공포영화들이 표방했던 공포와 에로티시즘의 기묘한 만남은 아마도 영화 산업 불황기의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검열로 인해 사지가 절단된 한국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서글픈 자구책이기도 했을 것이다.

*필자의 저서, "야한영화의 정치학" 중 한 부분을 인용, 확장하였습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