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는 60년대 후반의 할리우드를 다루며 독특한 방식으로 연출자의 시선을 퍼트린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진행이 안되는 그의 영화에서 이번에도 당연히 피가 사방으로 튄다. 하지만 그는 헤모글로빈이란 메인 재료를 이용해 심지어 감동과 위로의 단계에 관객을 가져다 놓는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나면 데이빗 핀처라는 감독이 스릴러 깎는 장인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그러기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관람전에 준비를 필요로 한다. 실은 타란티노 감독은 관객이 세 가지를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우선 1960년대 미국의 분위기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와 전 세대가 불러온 사회 분위기에 반대하는 일종의 사회현상이었던 히피 문화, 그리고 여배우 샤론 테이트의 살인사건이다.
60년대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엄청난 호황을 맞이한다. 잿더미가 된 세계에 비해 멀쩡히 돌아가는 공장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전쟁 물자를 만들던 엄청난 생산력은 곧 민간 물자를 향했고, 더불어 미디어와 광고가 엄청나게 발전했다. 부부와 두 아이가 교외의 마당 넓은 집에서 강아지를 기르는 것은 미국의 전형적인 가정이 됐다. 이들은 안정적이었지만 자식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세계대전, 아버지는 한국전쟁, 자신은 베트남전으로 징집되어야 한다면 사회의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품는 게 맞지 않냐는 것이다. 히피(hippie)들의 등장이었다.
히피
그들에게 보통의 미국이란 4인 가정이 아니라 전쟁국가였기에 평화, 자유 등의 가치를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것은 방종이 되어 씻지도 않고 마약을 빨며 성폭행이 당연시되는 방관을 낳았다. 서양 철학의 핵심인 이성 중심 자체가 잘못됐다는 사상을 부르짖으며 인도나 미국 원주민의 삶으로(Feat. 마약) 돌아가자는 세력도 있었고 감정 및 자연과의 교감이라 부르는 바이브(Vibe)만이 진실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늘어갔다. 하지만 사랑과 평화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피스 앤 러브는 곧 sex + drug + Rock&Roll이 됐다. 히피들이 주장하는 것이 반주류다 보니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뭔가 B급이며 서브컬처로 취급받는 것이다. 히피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은 가장 비주류의 사람이었다. 그중 최고봉은 찰스 맨슨이었다.
비주류 전문가
실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서 스타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찰스는 사탄과 하나님이 사과했다는 둥, 흑인 봉기 백인 학살이 멀지 않았다는 등등의 주장으로 팬을 모았다. 그리고는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다. 자신의 앨범 발매가 무산되자 인종 전쟁을 얼른 일으키는 것을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유한 백인 마을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목표는 찰스의 음반을 만들 뻔했던 음악 프로듀서, 테리 멜쳐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테리 멜쳐가 이사간 그 집엔 임신 8개월의 여배우, 샤론 테이트가 거주하고 있었고 살해당했다. 범인들은 당시에 더 유명한 사람을 죽였다며 더 기쁘다는 인터뷰까지 했다.
캐릭터들
이런 배경과 사건을 가진 60년대에서 타란티노 감독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까? 주인공인 릭(레오나르도 디카브리오)은 잘나가는 배우였지만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릭은 옛 시절 잘 나갈 때 자신이 출연한 작품 속에서 나치들을 화염방사기로 지진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소품을 집에 아직도 지니고 있다가 살인을 저지르러 온 히피를 지져버린다. 이것은 ‘쿠 감독’의 특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악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를 상정해놓고 통쾌한 형식으로 짓눌러 버리니 청량한 배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함으로써 샤론을 살릴 수 있고, 릭의 멘탈을 본궤도에도 올리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세상에 이런 연출을 쿠 감독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극 중에서 살인을 저지르러 온 히피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사랑과 평화, 평등, 자유고 나발이고 간에 TV가 살인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파한다. 대중문화가 품은 부정적 측면을 고발하려는 것 같지만 실은 개소리다. 그들을 패는 스턴트 배우 클리프(브래드 피트)는 타란티노 감독의 시선에서는 열심히 자기 분야를 일궈낸 존재다. 그런 존재가 그들을 피떡이 될 때까지 팬다는 것은 헛소리하지 말고 그냥 맞으라는 뜻이다. 실제로 약을 빨고 히피들을 아작을 내는 장면은 피가 튀고 살점이 날리지만 화염방사기 장면만큼이나 통쾌하다.
위안
릭은 자신이 시들어져 감에 슬퍼한다. 누구나 자신의 소망만큼 해내지 못해 스스로에게 낙담했을 때가 있을 것이다. 릭은 그런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기 시작한다. "날마다 조금씩 쓸모 없어진다"라는 그의 대사는, 언젠가는 세월을 머금고 총명함을 흘리고 살아갈 우리 모두의 자백을 담는 것 같다.
그러나 타란티노 감독의 위로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한때는 잘 나갔지만 이제는 대사나 까먹고 촬영장의 민폐로 전락한 것이 릭,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릭이 선보이는 최고의 연기는 자신이 별로라는 걸 깨달은 직후였다. 그리고 여기엔 지난 시절, 즉 의미 없다고 생각한 성실함들이 켜켜이 쌓인 함의가 되어 돌아온다. 이는 가치 없는 시간이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엔딩 지점에서 히피들이 왔다 갔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샤론 테이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따듯함으로써 스미게 된다. 즉, 역사적 팩트와는 어긋나지만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선사하는데 성공했기에 이 사건의 충격을 알고 있는 모두에게 안심하라는 위안을 건네게 되는 것이다.
요즘에 사회에 안전망이라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존재를 작별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억울하게 떠나보낸다.지금이야말로 타란티노식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 일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