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키즈〉(2018)는 자유롭게 춤추고 싶은 열망 하나로 미군, 공산포로, 반공포로, 중공군 포로, 양공주가 하나가 되어 탭댄스를 춘다는 내용의 영화다. 거제 포로수용소에 소장으로 부임한 로버트(로스 케틀)는 ‘자유세계의 이념적 우위를 선전하기 위해 전쟁포로로 구성된 댄스단을 조직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이 선전용 댄스단을 이끌 책임자로 선정된 건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 전직 브로드웨이 탭 댄서 잭슨 하사(자레드 그라임스)다. 잭슨은 이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바라던 대로 오키나와로 발령을 내주겠다는 로버트 소장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현지에 남겨두고 온 일본인 아내와 다시 만나 정식으로 결혼하려면, 오키나와 발령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포로수용소 포로들을 대상으로 연 오디션, 브로드웨이에 섰던 잭슨의 눈에 차는 사람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온갖 쭉정이들을 걸러내고 고른 건 네 명이다. 전쟁통에 헤어진 아내가 찾아오기 편하도록 유명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합류한 반공포로 강병삼(오정세), 그저 춤추는 것이 좋아서 합류한 중공군 포로 샤오팡(김민호),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양공주’란 손가락질을 감내해가며 미군부대 쇼걸부터 무허가 통역사까지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는 양판래(박혜수), 그리고 공산포로들 사이에서 ‘인민영웅’으로 추앙받는 청년 로기수(도경수). 각자 이념도 소속도 다른 다섯 사람은, 멋지게 탭댄스를 추자는 일념 하나로 뭉쳐 천천히 호흡을 맞춰 나간다. 이 과정에서 기수는 ‘인민영웅’이 어떻게 미제 춤을 추느냐는 주변의 시선에 시달리게 되지만, 춤을 향한 뛰는 가슴은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기수가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자였을까? 영화는 기수의 공산주의자됨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한다. 친구 만철(이규성)이 “적의 보급에 타격을 입힌다"라는 핑계를 대며 미군 식량 창고로 숨어들어가 버드와이저를 마시고 허쉬 초콜릿을 빼돌리는 걸 보면서도, 기수는 친구가 미제에 물들었다는 걸 비난하는 대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쪽을 택한다. 자신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미군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와 지포 라이터를 빼앗는다. 로버트 소장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삼식(송재룡)을 린치하려는 공산포로들을 만류하고, 팔다리를 잃고 광기 어린 이념의 추종자가 된 광국(이다윗)을 보며 낯섦을 느낀다. 광국이 주도하는 테러와 살인에 마지못해 가담하면서도, 기수는 칼날을 제 손에 쥐고 칼자루로 사람을 찌르는 시늉만 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이념에 제대로 경도된 적이 없는 기수였기에, 탭댄스에 매료되는 것도 그만큼 쉬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산진영의 ‘인민영웅’이 아니라고 하기엔 영화 초반 기수의 태도가 걸린다. 병삼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기수는 병삼을 조국을 져버린 “반동분자”라고 규정하고, 잭슨에게도 “남의 나라에 쳐들어 와서 이리 죽탕을 쳐놓고도 모자라서 오락가락하는 간나 새끼들을 데리고 흑색 얼굴을 해가지고 흑색선전을 하는” 검은 얼굴 양코잽이라고 일갈한다. 내심 춤추는 게 좋고 함께 순회공연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기수는 자신이 속한 진영이 공산진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물론 기수가 진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념이라기보단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가 더 컸을 테다. 자신이 춤을 춘답시고 반공포로 진영으로 넘어가는 순간, 함께 군에 입대한 다섯 살 수준의 지능의 소유자 형 기진(김동건)도 피해를 볼 테니까. 하지만 다른 보는 눈이 없는 순간에조차 병삼과 잭슨에게 경계심을 세웠던 건, 내면에서 자신이 공산진영의 사람이란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공산진영 청년마저 이념을 뛰어넘게 만드는 자유와 춤’을 내세웠다는 점만 본다면, 〈스윙키즈〉는 얼핏 자유주의 체제의 우위를 선전하는 반공영화의 계보 위에 있다. 하지만 영화는 자유주의를 찬양하기보단 차라리 이념 대결 자체를 비웃는 탈이념적 행보를 걷는다. 영화가 그리는 로기수는 북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인민군이 된 청년, 혹은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였지만 집단 광기와 전체주의를 목격하고 당혹스러웠던 청년에 가깝다. 그리고 영화가 그리는 자유주의 진영이라고 해서 딱히 대단히 바람직한 곳이 아니다. 같이 복무하는 군인들 사이에서도 인종차별이 난무하고, 전쟁통에 여성은 착취 당하며, 체제 선전을 위해 포로들을 제 입맛대로 활용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무참히 버려버리는 체제. ‘괴물 같은 공산주의’와 경쟁한다는 핑계로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자유주의 진영의 과거에 대한 환멸을,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 모호한 주인공을 내세워 그에게 한껏 동조하게 만든 작품, 자유주의 진영의 과거에 대한 환멸이 묻어있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체제 경쟁에서 자유주의 진영이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본다고 해서 공산주의 체제에 매료된다거나 경도될 사람도 극히 적을만큼 자유주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여러 이념과 사상이 공존하고 서로 견제하는 사회를 건설했던 자유주의 체제는, 한 가지 이념 아래 모두를 줄 세우려 했던 공산주의 체제보다 더 유연하고 건강했다. 자유주의 체제는 냉전이 극심했던 시절 매카시즘으로 ‘빨갱이 사냥’을 했던 과거를 반성했고, 내부에서 스스로 비판하고 갱신하는 과정을 거치며 열린 사회로 나아갔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체제는 공산주의자였던 파블로 피카소나 프리다 칼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예술 세계를 기꺼이 기념하고, 소련의 스파이로 활동한 줄리어스 로젠버그의 재판 과정이 부당했다고 넉넉히 인정한다. 미국, 서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자유주의 국가는 공산주의 정당을 허락하고 있는데, 이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선 자유주의 체제가 이미 승리했으며 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결과일 것이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지만,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은 일찌감치 끝났다. 로기수가 〈스윙키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런다고 해서 북한 체제를 동경하고 그에 넘어갈 사람이 극히 적을 것이며 그것이 체제에 유의미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념 경쟁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서로를 적대시했던 과거를 반성한다고 해서, 지금의 체제가 붕괴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작업이, 우리가 만들어 갈 세상을 더 건강하고 튼튼한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개봉한지 벌써 5년이다. ‘인민영웅’ 로기수가 탭댄스를 추면서 즐거워하는 영화를 기꺼이 수용했던 5년 전의 우리는, 분명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쯤 있는 걸까. 그때의 그 아량과 배포와 자신감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