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인간의 생존신고> 포스터.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2023년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 중 하나가 9월 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내 가수 뮤직비디오는 내가 만든다(!)’라는 무모하면서도 당찬 목표를 갖고 시작한 영화학과 동기 3인방이 찍은 <듣보인간의 생존신고>(감독 권하정‧김아현)다.

영화학과를 졸업했지만, 딱히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다른 취업 대안도 없던 권하정은 혼자만의 ‘동굴’ 속에 숨었다. 그랬던 그를 위로해준 건 다름 아닌 이승윤 가수의 노래. 동굴에서 나온 언니를 위해 김아현, 구은하는 이승윤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자는 당돌한 목표를 설정한다.

이후 일면식도 없던 이승윤 가수에게 스마트폰으로 제작한 소소한 일러스트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USB에 넣어 전달한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와 함께. 오매불망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이승윤 가수에게 연락이 온다. “영상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 당신들과 함께라면 ‘무조건’ 뮤직비디오를 하겠다”라고.

그렇게 세 사람은 이승윤 가수의 새 앨범에서 뮤직비디오로 제작할 곡으로 ‘영웅수집가’를 선정하고, 아이디어 회의부터 제작, 후반작업까지 그야말로 고군분투한다. 처음에는 뮤직비디오만 찍으려고 했던 이들은, 중간에 이 과정을 남겨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로 탄생했다.

(왼쪽부터) 권하정 감독, 김아현 감독, 구은하. 사진 제공=(주)시네마달

엄청난 경력도, 넉넉한 예산도 없이 무작정 열정과 행동력으로 밀어붙이는 MZ세대의 고군분투. ‘덕업일치’를 이루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세 친구의 유쾌한 청춘 도전기는 그 자체로 관객들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할 것이다. 이들이 난관에 부딪히는 순간에 관객들은 어쩌면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그들을 응원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길거리 공연을 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던 한 가수, 이승윤의 스토리가 더해지면서 영화의 구조는 더욱 탄탄해진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던 그 시기, 세 친구를 만났고, 이들과 작업을 하면서 [싱어게인-무명가수전](<JTBC>)에서 우승하며 유명 가수로 우뚝 서게 된 것.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 이후 9월 6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유쾌하고 재밌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가슴이 찡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젊은 시절의 도전과 실패를 세 친구가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일단 해보자, 용기를 내 보자’라고 권하는 것만 같은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김아현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개봉을 앞두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하정 정말 개봉까지 올 줄 몰라서요. 영화에서 ‘저희가 첫 관객이자 마지막 관객이 아니면 좋겠다’라고 말했는데, 많은 분이 함께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김아현 저는 아직까진 실감이 안 나요. 개봉 뒤에 생각이나 감정이 정리될 거 같아요. 기쁘다기보다는 무사히 개봉 잘할 수 있게끔 마음을 단단히 하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해내자는 마음이 더 큰 거 같아요.

먼저 제목부터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라는 제목은 어떻게 지었어요? 해외 영화제에도 나갈 거 같은데 영어 제목도 궁금해요.

권하정 제가 영화를 그만두고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권하정은 이제 영화 안 한 대?”라는 말을 들었어요. 오랜만에 학교를 갔는데, 선배 한 명이 “너 영화 안 한다더니 살아는 있었네?”라고 하는 거예요. 자격지심이었는지 ‘영화를 안 하면 죽어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다가 이 영화는 마치 나의 생존신고 같다는 생각으로 제목을 지은 거죠.

영어 제목에서는 ‘듣보인간’이라는 뉘앙스를 살리고 싶었어요. 외국인 언니에게 물어봤는데, ‘듣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평범한, 특별하지 않은 아이들의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지어달라고 부탁해서 <Notes from the Unknown>으로 지었습니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영화를 보면 카메라를 가지고 정말 재미있게 노는 것 같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떨지도 않아요. 줌 회의도 익숙하죠. 줌 회의 와중에도 세 명이 정면을 바라보는 화면이 아니고, 한 명은 측면샷으로 깨알 포인트도 주고요. 인스타, 카카오톡 등 SNS도 영화에 부자연스럽지 않게 녹여냈어요. MZ만의 특성은 아닌 거 같은데요. 어쩌면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작업을 하고, 후반에 일 사이즈가 커졌어도 집중을 잃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원동력이랄까요?

김아현 어쨌든 저희가 한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서로 마음이 안 다치면 좋겠다는 마음요. 여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그래서 힘든 상황이 닥쳐도 유쾌하게 넘어가려고 했어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 것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거 같아요.

권하정 저는 작업하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일에 부딪혀도 내색을 잘 안 했던 거 같아요.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고, 두려움도 컸어요. 많이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입 밖에 내는 순간, 정말 그런 현실과 마주하게 될 거 같은 거예요. 저희를 짓누르는 무게감을 최대한 가볍게 여기려고 오히려 시답잖은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한 거 같아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뮤직비디오도 찍고,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도 담으면서 이것만은 꼭 지키자고 했던 기준 같은 게 있을까요?

권하정 저희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게 가장 컸어요. 그래서 거치식 카메라를 많이 썼고요. 생생한 모습을 담았죠. 그리고 방금 아현이도 이야기했듯이 과정이 중요했어요. 결과물이 아무리 좋아도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 주거나 피해를 주면, 이 결과물이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죠.

김아현 다큐 제작할 때나 뮤직비디오 작업 때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는데요. ‘이렇게 합시다’라는 가이드라인이 없었어요. 서로의 성격을 알다 보니까 서로 생각하고, 고민해본 거죠. 서로 다른 생각을 해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했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우리의 다큐멘터리가 이승윤 가수의 인기에 편승하지는 말자는, 그런 건 지양하자는 마음은 있었던 거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로 완성시키자는 생각을 처음부터 공유했어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세 분이 너무 친한데요. 그래도 혹시 싸운 적은 없나요?

권하정 아현이랑 저는 진짜 자주 투덕거리고 싸웠어요(웃음). 은하는 잘 들어주는 편이라 그런 적이 별로 없고요.

김아현 작업 때문에 싸운 건 없었던 거 같아요. 오해로 다툰 적은 있어요. 작년에 권하정 언니 생일에 삼척에 갔거든요. 거기서 새벽 3시까지 편집을 하고 있는데, 언니가 자꾸 빨리 가라는 거예요. 그게 사실 배려하는 말이었어요. 잠 오면 빨리 가서 쉬라고요. 그런데 저도 몸이 피곤하니 ‘언니는 왜 이렇게 세게 이야기해?’하면서 목소리가 좀 커졌죠(웃음). 그래도 의견 차이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다 논의하면서 끝내는 편이라 큰 다툼은 없었던 거 같아요.

권하정 사실 저도 의견을 잘 굽히지 않는 편이에요. 어쩌면 그런 부분들이 잘 조합이 되어서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제가 진지하게만 이런 방향으로 해보자고 할 때, 아현이가 ‘아니야, 언니. 이런 걸 넣어야 재미있어’라고 받아줬거든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2020년에 이승윤 가수에게 USB로 뮤직비디오를 전달했어요. 그해 9월에 ‘영웅수집가’ 뮤직비디오를 찍었고요. 다큐멘터리는 이듬해 10월에 편집을 마쳤어요. 개봉은 2년이 더 걸렸는데, 혹시 처음 편집본이랑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권하정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했던 다큐멘터리에는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부분이 전혀 없었어요. 현장 메이킹도 안 들어가고, 영화가 바로 끝나요. 이번 개봉버전에서는 ‘영웅수집가’ 현장 메이킹과 노래도 함께 넣었어요. 그런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썼어요. 덜어낼 부분들은 덜어냈고요.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아주아주’ 좋은 생각은 어느 시점에 떠올린 건가요?

김아현 첫 시작은 ‘숏폼’이라는 정부지원금을 받으면서였죠. 뮤직비디오 제작비를 지원받으려고 신청했는데, 운 좋게 된 거예요. 그래서 15분짜리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어, 우리 이야기를 담아도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든 거죠. 그렇게 계속 촬영을 한 겁니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다큐멘터리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집중을 잘 하진 못했어요. 워낙 뮤직비디오 제작에 몰입했으니까요. 거치식 카메라를 쓰긴 했지만, 촬영 소스도 많이 부족했어요. 그렇게 찍어둔 것을 편집하다 보니 하나의 이야기가 된 거죠.

권하정 저는 부산에서 상경해서 뮤직비디오를 찍는 상황이었어요. 아현이랑 은하는 서울에 있었지만요. 영화를 안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뮤직비디오를 찍는다고 서울을 간다고 하니, 가족들은 이 상황이 뜬금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핑계거리라고 해야 할까요, 뮤직비디오 찍고,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도 만들기 위해 상경한다고, 그렇게 시작한 거 같아요..

숏폼에서 지원은 얼마나 받은 건가요?

권하정 990만 원 정도였어요.

나머지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했어요?

권하정 제가 열심히 모았던 걸 썼죠. 총 제작비가 꽤 많이 들었는데, 집에서도 음, 여기까지만요(웃음)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알겠습니다. 영화에서 보니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작업을 하던데요.

권하정 아무래도 이승윤 가수를 비롯해 뮤지션들이 서울에 있으니까요. 아현이도 서울에서 일을 하는 상황이라서 아현이 집을 서울 아지트로 썼어요.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었죠. 뮤직비디오 촬영은 부산 세트장에서 했어요. 스태프를 꾸려야 하는데, 학과 선배나 지인들을 편하게 데려올 수 있으니까요. 저희에게는 ‘꿈의 스튜디오’ 같은 곳이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죠. 호기롭게 시작은 했는데, 이승윤 가수도 OK했는데 계속해서 현실적인 벽에 부딪힙니다. 스튜디오 대관도 어렵고, 촬영감독 스케줄도 안 나와요. 제작비는 자꾸 올라가죠. 다들 안 된다고 하는데 오기가 생겨서 밀어붙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웃음). 그렇게 영화가 결국 엎어지는 단계까지 경험하죠. 보통 장편 데뷔 감독들이 겪는 과정을 겪은 거예요. 그런데 ‘늘 그랬듯이 우리답게 나아가기로 했다’라고 담담히 넘어가요. 그 시간은 어떻게 보내면서 극복했나요?

김아현 그때 찍었던 다큐멘터리 소스를 지금도 보고 있어요. 홍보에 쓰려고요. 보면 저희가 벙찐 채로 소파에 누워서 ‘뭐 하지, 우리 어떡하지’라는 대화를 하는데요. 웃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좀 실수를 했으니, 다시 해보자. 그래서, 뭐 먹을래? 이렇게 말하면서요. 정말 유쾌하고 행복하게 즐겼던 거 같아요. 그 순간도요. 영화에서는 오래 쉰 거 같지만, 그날 하루였어요. 쉴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행복했죠. 촉박하지만, 이 시간이라도 다시 생각해서 잘 해보자라는 말을 하면서 보냈어요.

권하정 감독의 경우 연출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불안감이 나머지 두 분보다 더 컸을 거 같은데요?

권하정 아예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트장에서 확답을 끝까지 안 주셔서 불안함이 컸죠. 그런데 세트장 일정이 컨펌되니까, 또 세트 작업하러 오는 분들 스케줄이 안 되고…. 이런 상황들을 조율하는 게 엄청 힘들었어요. 그런데 방금 아현이도 말했지만, 그날 하루는 정말 행복했어요. 미뤄졌다. 쉬자. 그런데 소품은 어떻게 만들지? 이러면서요(웃음). 물론 그 타이밍에 불안하긴 했지만, 시간을 벌었던 마음으로 더 디테일하게 작업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영화에서처럼 정말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네요. 그렇게 다시 작업에 복귀했는데, 영화에서 보면 한계에 계속 부딪히죠. 영화 초반을 가득 채웠던 웃음소리도 점점 사라지고요. 혹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

권하정 포기할 수가 없었던 이유가 있어요. 이승윤 가수가요, 그때는 프로그램이 [싱어게인]인 걸 우리가 몰랐지만, 곧 촬영에 들어가는 건 알고 있었죠. 스케줄을 조절할 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뮤직비디오가 선약이니 무조건 스케줄을 지키겠다’라고요. 못한다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처음부터 포기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저 혼자만의 작업물이라면 포기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작업물이잖아요. 이승윤 가수, 아현이, 은하. 그래서 중도 포기는 정말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김아현 저도 똑같아요. 부산에서 작업할 때도, 저는 서울에서 고정된 일이 있어서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이틀을 비워야 하잖아요. 제가 빠지면 세 사람이 할 일을 두 사람이 해야 하는데 타격이 얼마나 커요. 그래서 더 포기 생각은 아예 안 한 거 같아요.

아참, 한국영화인데 자막이 있더라고요. ‘배리어프리’ 차원에서 넣으신 건가요?

권하정 저희만의 상영회가 있었어요. 저랑 아현이가 15분씩 만들어서 이승윤 가수에게 보여줬죠. 엄청 웃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절반을 못 알아들었다고 해서요. 저희는 부산 사투리를 쓰니까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벽이 된 거죠. 그래서 자막을 넣었습니다. 배리어프리라는 숭고한 뜻을 처음부터 실천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웃음).

처음 시작은 이승윤의 노래였지만

진행될수록 이승윤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

욕심내고 싶었던 것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데

저와 노래가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승윤 가수가 뮤직비디오 제작 후 보낸 편지에서 발췌

영화 후반부에 이승윤 가수의 손 편지 글귀가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주제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편지 받고 어떠셨어요?

권하정 저희는 저희를 객관화해서 보지 못하잖아요. 이승윤 가수 편지를 보고 ‘우리가 정말 열심히 했구나’ 하는 걸 느꼈죠. 제3자가 이야기해주니까요. 이승윤 가수의 편지에 감동했다기보다는, 우리가 정말 그렇게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게 타자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다는 점에서 우리 자신에게 감동한 거 같아요. 역시 내가 좋아한 이승윤 가수는 통찰력 있는 사람이구나, 사람 잘 보네 하면서요(웃음). 사실 스마트폰을 찍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이승윤 가수가 쓴 메일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어요. 이런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건 참 잘한 일인 거 같아요.

김아현 조금 다른 에피소드지만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이승윤 가수랑 알라리깡숑(이승윤이 활동했던 밴드) 멤버들과 뒤풀이를 했거든요. 다 울었어요. 아니, 사실은 저희 세 명만 울었어요. 언니를 더 알게 되어서 기쁘고, 은하를 만나서 기쁘다며 이승윤 가수는 안중에도 없이 셋이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이승윤 가수와 노래가 하정 언니를 위로해줬지만, 제게는 이승윤 가수의 만족보다 언니의 만족이 더 컸거든요(웃음).

가수 이승윤. 사진 제공=마름모

이승윤 배우가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권하정 영화제 상영에서 봤을 때는 ”고생했다“라고 했는데, 이번 시사회에서 보고는 ”영화 정말 재밌는데, 너희 정말 멋있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김아현 뮤직비디오 찍을 때 사실 제가 좀 자의식 과잉이었던 거 같아요. 우리가 뮤직비디오 잘 찍으면 이승윤 가수가 무명가수에서 확 뜰 거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웃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하면서 찍은 기억이 나네요.

영화를 보면 그냥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세 분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고, 또 짠하게 보일 때는 응원도 하게 되고요. 영화제나 시사회에서 관객들도 비슷한 반응인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권하정 다들 한 번씩 겪어봤던 순간이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한 번은 겪을 일이라고 공감하니 좀 더 많이 와닿았던 거 같아요. 영화 이야기가 저희만의 특별한 건 아니잖아요? 모든 이들이 경험했던 일이니까 더 와닿았던 거 같습니다.

김아현 마음이 꿈틀꿈틀하게 다들 공감해주신 거는 언니가 말했던 거랑 똑같아요. 겪어왔고, 겪을 일이고, 그래서 그런 감정, 경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보시면 마음이 꿈틀꿈틀할 거 같아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그런 보편적인 감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건드릴 거 같아요. 차기작을 바로 질문하기는 좀 그렇다면, 감독님들은 이번 영화 다음으로는 어떤 경험을 하고 싶어요?

김아현 뚜렷한 목표는 없어요. 저는 그때그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자는 주의에요. 아마도 계속해서 창작은 할 거 같아요. 입버릇처럼 제가 마음 깊숙이 꼭 하고 싶은 건 글쓰기에요. 그게 꼭 시나리오라든가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짧은 소설이라도 제가 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제 꿈이고, 목표예요.

권하정 또 한 번의 이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 일단 해야만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살 거 같아요. 그중에서 1% 정도는 제 마음에 끌리는 일을 할 테고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를 만들면서 힘들었지만, 제가 이렇게 영화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잘 하고 싶어요. 영화, 영상이라는 매체 옆에 계속 있으면서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두 번째 생존신고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 분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영화를 만든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해요.

권하정 솔직히 다큐멘터리에 뭔가 거대한 메시지를 담자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본 지인들한테 연락이 와요. ‘너무 좋은 기운을 받았어’, ‘나도 뭔가 하고 싶어’라고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아, 영화가 이런 거구나. 우리 이야기를 담는다고 해도, 관객은 메시지를 찾아내는구나 하는 걸 알았죠. 진심을 담아 진정성 있게 만들면, 그 안에 숨은 메시지들은 관객이 다 해주는구나 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아현 영화학과를 4년 다녔지만, 아직도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저를 ‘감독님’이라고 부르는데, 너무 부끄러워요. 자신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 거 같은데요(웃음). 왜 아닌 거 같지 하고 생각해 보니,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물론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일이라기보다는 정말 이 시간을 즐겼다는 느낌이 먼저더라고요. 영화를 만들어야지 하는 것보다 우리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야지 라고 한 것이 다른 분들에게는 영화로 보이게 되고, 저는 감독이 된 거 같아요. 영화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고요, 그냥 감사하다는 생각입니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스틸컷. 사진 제공=(주)시네마 달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권하정 개봉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처음에는 아현이랑 은하랑 굉장히 패기 있게 도전했어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를 보고 사람들이 ‘저 아이들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하겠어?’라는 말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영화로 나온 결과물을 보니, 화면 속에 있는 저희가 참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어떻게 했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한때의 좋은 타이밍에 얻어걸린 것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걸 다 이뤘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메시지라기보다는 영화를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인생 살면서 한 번씩 생각날 수 있는 영화로, 이따금씩 이 영화를 떠올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아현 처음 이 영화 완성됐을 때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희망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만의 이기적인 생각이고 바람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냥 관객들이 1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아무 근심 없이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시면 좋겠어요. 극장 밖으로 나가면 다시 현실적인 걱정에 휩싸일 텐데, 이 영화 보는 시간만큼은 그런 생각 없이 온전히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