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한 남자」를 각색한 <한 남자>(이시카와 케이, 2023)는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신작이다. 그의 전작,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은 2016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번 작품, <한 남자>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한국의 관객들을 처음 만났다.

영화는 문구점에서 일하는 ‘리에’(안도 사쿠라)라는 한 여자의 하루로부터 시작한다. 한적한 문구점을 정리하고 있는 중, 유난히 수줍음이 많은 남자, ‘다이스케’(쿠보타 마사타카)가 들어와 스케치북을 사간다. 그의 방문이 잦아지면서 서로 대화도 늘어나고, 결국 자신의 그림을 보여줘도 되느냐는 다이스케의 제안으로 이들의 데이트가 시작된다.

결국 시간이 흘러 다이스케와 리에는 결혼해서 딸도 낳고,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다이스케가 벌목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죽게 되면서 리에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알고 있던 다이스케가 다이스케가 아니었던 것이다. 리에는 그녀의 이혼을 담당했던 변호사, ‘키도’(츠마부키 사토시)에게 다이스케의 신원조사를 해달라는 의뢰를 한다. 키도는 신원을 바꿔주는 범죄로 형을 살고 있는 ‘오미우라’를 통해 ‘다이스케’의 거짓된, 그러나 처절했던 인생을 발견하게 된다.

신분세탁 전문가, 오미우라

[아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한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츠마부키 사토시가 맡은 ‘키도’의 캐릭터는 놀랍게도 자이니치, 즉 재일한국인이다. 그의 ‘자이니치’ 정체성은 ‘더블’ 혹은 ‘도플갱어’라는 영화의 중추적인 상징성을 띈다. 두 개의 신분을 가지고 살았던 ‘한 남자’를 파헤치는 자의 정체성 역시 두 개의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가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인물들도 역시 두 개의 신분으로 (엄밀히 말하면 원래의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살아가기를 택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러한 도플갱어들은 모두 ‘전생’에서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이다. 어떤 예기치 못한 이유로 인해 불행한 일을 당했거나 피해야 할 상황이 생겼거나. 영화는 이들의 이러한 필연적인 선택이 이들 본인이 아닌 부모나 사회에 의해 형성된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예컨대 다이스케를 사칭했던 ‘X’의 불행은 아버지로 인해 연유된 것이고, 키도의 정체성은 탄생으로 주어진 것이다.

불가피하든 당연한 것이든, 영화는 일본 사회에서 두 개의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것, 혹은 일본의 다수와 일치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죄악시되는지 몇몇 인물들의 입을 통해 공표한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은 신분 세탁 전문가이자 범죄자인 ‘오미우라’다. 오미우라는 키도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자이니치가 아니냐?"는 물음으로 키도를 열등한 존재로 매김한다. 그는 키도가 “자이니치답지 않은 자이니치”이고 이는 가장 자이니치스러운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접견실을 떠나버린다. 그는 키도가 한국인답지 않은, 즉 일본인인 척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는 경멸을 표현한 것이다. 이 밖에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악인이 아닌) 평범한 인물들, 예를 들어 키도의 장인, 다이스케의 친형은 일상의 대화에서 순혈 일본인이 아니거나, 범죄자의 아들이라는 것 등에 대한 증오와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진짜 다이스케를 찾아가는 키도의 여정은 어쩌면 일본 사회 곳곳에, 그리고 구성원들의 일상에 정박해 있는 차별주의와 순혈주의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료칸(일본식 전통 여관)을 물려받은 다이스케의 친형


오시마 나기사의 <교사형> (1968)

오시마 나기사의 1968년작, <교사형>은 <한 남자>와 매우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작품이다. 영화는 사형수인 재일한국인 소년 R의 교사형이 실패한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정상적인 집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R은 죽지 않고,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R의 맥박은 정상으로 뛰고 있다. 검찰 사무관, 소장을 시작으로 교육부장 구치소 직원은 이 비상사태에 한 번 더 형을 집행하려 하지만, 심신상실 상태인 자에게 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법률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어서 사망 확인이 임무인 의무관의 처방으로 R은 정신을 차린다. 목사는 R의 영혼은 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재집행은 부당한 것이고, 다시 살아난 R은 이전의 R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소장과 관료들은 지금의 R이 범인과 동일인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R의 범행과 가정환경을 재현하려고 시도한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며 버둥거릴수록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보가 드러나고 그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국가의 태도가 그려진다.

오시마 나기사는 <교사형> 이전의 작품들에서도 일본의 제국주의와 차별주의에 대해 꾸준히 비판을 해왔다. 그의 전작, <일본 춘가고>, <청춘 잔혹 이야기> 등에서 등장하는 재일조선인 캐릭터들은 일본 사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지만 아무도 언급하려 하지 않는 인종 차별과 일본 우월주의를 환기하는 인물들이다. <교사형>이 만들어지고 50여 년이 지난 지금, <한 남자>에서 정확히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교사형>

다른 점이라면 <한 남자>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인종 차별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의 또 다른 중심 캐릭터인 ‘X’(다이스케로 신분을 바꾼)는 본인이 아닌 아버지의 죄로 인한 세속의 단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상속’받은 단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죽음을 맞는다. 따라서 영화는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출신, 즉 도플갱어들은 도피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암울하게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한 남자>는 분명 스릴러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장르영화임이 분명하지만 영화의 본질적인 ‘정체성’은 사회 풍자극이다. 예컨대 정체성에 갇힌 예는 키도와 X뿐만 아니라 진짜 다이스케의 배경을 통해 암시되기도 하다. 그는 3대째 운영 중인 유명 온천의 둘째 아들이고, 장남은 온천을 본인이 물려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다. 무언가를 ‘물려받는다’는 행위는 그것이 영광이든, 불명예든 당위적인 것이며 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화는 정체성에 관련한 많은 아이콘들을 전시한다. 거울, 그림, 생긴 것이 비슷한 두 개의 다른 물고기 등. 특히 키도가 응시하는 두 남자의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영화 속에서 몇 차례 등장하는데 궁극적으로는 키도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으로 사용된다.

키도가 응시하는 두 남자의 뒷모습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영화를 다 보고 관객들이 “영화관 밖으로 나갔을 때 무언가 마음속에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영화를 보고 나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무언가가 남아있고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과연 하나의 정체성을 품고 사는 인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우리는, 그들은 차별의 근거를 과연 무엇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 마음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질문들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