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먼저 검증받은 영화 <거미집>이 추석 개봉을 앞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완성을 앞두고 결말을 바꿔야 한다는 결단을 내린 김감독이 영화 '거미집'을 재촬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거미집>. 올 5월 칸영화제에 초청된 후 9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는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장영남, 박정수 등이 출연했다. 70년대 영화계를 배경으로 좌충우돌 촬영기를 담은 <거미집>, 언론시사에서 만난 첫인상과 주역들의 말말말을 전한다.
컬러와 흑백을 가로지르는 자아실현기
'거미집' 촬영을 마친 김 감독(송강호)은 촬영 종료 이후 거듭 꿈을 꾼다.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을 꿈에서 발견한 김 감독은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것이란 예감을 느끼고 백 회장(장영남)의 반대에도 우격다짐으로 재촬영을 진행한다. 제작사를 물려받을 신미도(전여빈)를 설득한 김 감독은 배우 이민자(임수정), 강호세(오정세), 한유림(정수정), 오 여사(박정수)를 다시 스튜디오로 불러 촬영을 시작한다.
영화 제작과 예술가의 강박, 이름 하나하나가 존재감 묵직한 출연진 라인업, 그리고 김지운이란 이름. 이렇게만 놓고 보면 <거미집>은 꽤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 같지만, 내용이나 스타일이나 예상을 빗나간다. 이 상황에 던져진 건 김 감독의 고집만이 아니기 때문. 갑작스러운 재촬영, 마구 뒤바뀐 시나리오, 심의도 거치지 않고 하는 촬영 등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각각의 사정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 그 가운데에서 70년대 문화와 말맛을 살린 대사들이 관객들의 웃음을 자극한다.
그리고 김지운 감독은 이것을 특유의 미장센으로 담아낸다. 70년대 영화 세트장의 미학은 눈을 즐겁게 하고, 고전영화 스타일을 재현하는 1.66:1 화면비와 흑백 장면들은 현실(촬영)과 환상(영화)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거미집>으로 완성한다. 배우들의 다양한 착장과 메이크업은 해당 배우의 팬들까지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운 감독이 '앙상블 코미디'를 꿈꾸며 연출한 영화답게,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 원로 배우 박정수,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인 송강호를 비롯해 임수정, 오정세, 정수정, 전여빈, 장영남은 열연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극중 연기자로 출연한 임수정, 오정세, 정수정의 능청스러운 70년대 스타일의 연기도 놓치기 아깝다. 그 외에 깜짝 출연한 특급 배우도 인상적이다.
극중극 형식이라면 반복되는 장면에서의 지루함이 걱정스러울 수 있는데, <거미집>은 그런 장면이 없다. 다만 극중 김 감독이 열망에 사로잡히듯, <거미집>도 막판에 다소 욕심을 냈는지 결말에서 호불호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 결말을 앙상블 코미디를 빙자한 한 예술가의 결실로 볼지, 아니면 훌륭한 코미디의 마지막 헛발질로 여길지는 관객들에게 달렸을 듯하다.
어렵게 찍은 영화, 화면에 에너지 남는다고 생각
김지운
극중 김 감독은 영화와 촬영에 대한 여러 말을 남긴다. 그러다보니 김 감독의 입을 빌려 김지운 감독이 하고픈 말을 전한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김지운 감독은 몇몇 발언은 인용한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김 감독의 말 중 '어럽게 찍어야 화면에 에너지가 담겨 영화에 박력이 생긴다'는 대사는 본인이 영화를 하며 느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놈놈놈> 때까지는 정말 가혹하다 할 정도로 혹독한 고생을 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했다며, "경험상 힘들고 어렵게 찍었을 때의 에너지가 화면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제는 그당시처럼 하지는 않는다고 말을 이었으며 "<장화, 홍련> <반칙왕>을 리마스터링하면서 다시 봤는데 내가 정말 집요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혹독한 시절의 감독님 만나지 않아 다행
박정수
영화 속 70년대를 실제로 경험한 박정수는 "당시엔 영화 작업을 안 했다. 드라마를 주로 했는데, 당시엔 안기부에서 드라마 현장도 검열했다"고 70년대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김지운 감독의 말을 듣고 "혹독한 시절의 감독님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영화는 거의 처음"이라며 "함께 한 후배들이 선배나 다름없다. 영화 찍으며 너무 재밌었다"고 촬영장을 떠올렸다. 이에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도 느긋하게 찍은 건 아니다. 배우들이 정말 알아서 잘 해주셨다. 영화를 만드는 데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영화로) 알았다"고 배우들의 공을 언급했다.
표현만 과장됐지, 마음은 진심
오정세
이번 영화에서 임수정, 오정세, 정수정은 70년대 스타일의 연기를 보여줘야 했다. 이 경험을 묻자 먼저 정수정은 "70년대 말투로 연기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처음엔 많이 당황했다"면서도 "감독님의 시범을 보고 감을 잡았다. 현장에서 모두가 그렇게 연기하니까 자연스럽게 됐다"고 말했다. 오정세는 "요즘 우리가 잘 쓰지 않는 어이쿠, 이런 말들을 많이 쓰고 템포도 서로 물리는 호흡이라 신기했다"며 "표현만 과장됐지 진심인 (70년대 연기 스타일) 부분들을 발견하면서 신기했다"고 떠올렸다. 임수정은 "그 연기톤에 익숙해질 때 즈음엔 누가 먼저다 할 것 없이 마구마구 표현했다. 연기를 주고받으며 고조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우리도 정말 신나고 희열을 느꼈다"고 기억했다. 그는 또 "이민자 역을 하면서 그 시대 연기를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흑백 영화에 담기던 것을 담을 수 있어서 배우로서 운이 좋았다"고 당시 기쁜 마음을 전했다.
정우성-이병헌, 이제 제가 신세를 갚아야겠다고 생각
송강호
<거미집>은 주연 배우들 외에도 얼굴이 익숙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그중 시사회에서 가장 격한 반응을 빚은 건 정우성의 특별출연. 정우성이 모 인물로 열연을 펼친 것에 대해 송강호는 "(정우성처럼) 어떤 순간에도 연기를 열정적으로 임하는 배우도 드물 것"이라며 "당시 다른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한달음에 달려와주셨다. 개인적으로도 고맙지만, 그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송강호는 또 "<밀정> 때는 이병헌씨가 그런 역할을 해줬고. 이제 제가 신세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두 사람과의 인연을 언급했다.
스태프 미도, 현장을 거시적으로 보는 눈 길렀다
전여빈
제작사의 후계자이자 김 감독의 시나리오에 감명받은 신미도 역은 전여빈이 연기했다. 극중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진 전여빈은 "스태프를 연기하면서 다른 배우들의 70년대 모습들을 볼 수 있어 관객으로서 기뻐하면서 현장에 있었다"며 "현장을 거시적으로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과 미도는 분명하게 "상이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거미집' 현장 텐션을 업시킬 수 있는 촉매제 같은 인물이라 김 감독님(송강호)과 열정유림(정수정)의 열정, 선배님들의 열정을 이어받아 업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려고 했다"며 현장에서의 즐거움을 전했다.
<거미집> 캐스팅, 아들 이후로 가장 큰 선물
장영남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를 "배우들의 위대함을 느낀 영화"라고 말했다. 특히 랩처럼 말을 쏟아내는 장영남을 보고는 "배우 칭찬을 정말 안 하는데 감독 단체채팅방에 '장영남은 천재인 것 같다'고 보냈다"고 감탄했다. 이에 장영남도 "(김지운 감독은) 만나 뵙고 싶은 감독님"이었다며 작품에 캐스팅됐을 때 "아들 다음으로 가장 큰 선물을 받았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