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현재 SF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영화는 바로, 인간과 고도화된 AI가 함께 하는 세상을 그릴 가렛 에드워즈의 <크리에이터>다. <몬스터즈>(2010), <고질라>(2014),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 등을 만든 가렛 에드워즈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로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인 각본가 크리스 웨이츠가 그려낼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영화는 고도화된 AI들에 의한 핵 공격이 시작된 이후 깊어진 갈등과 대립, 그리고 거대한 전쟁을 그린다. 가렛 에드워즈는 “분명 AI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몇 년 안으로 인간과 비슷한 AI가 나올 것”이라며, 인간과 고도화된 AI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곧 다가올 현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앞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이전부터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었던 <고질라>와 <몬스터즈>를 들여다본다.


<고질라>

인간의 과학적 오만이 잉태한 두려운 미래. 1999년 필리핀 쓰나미, 1999년 일본 대지진, 모두 자연재난이 아니었다. 모두 인간들이 깨운 존재로 인해 재난들이 시작됐다. 1954년 비키니 섬에서 행해진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의 기억으로 시작하는, 그러니까 그 실험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음모론으로 시작하는 <고질라>는 원작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고질라를 재창조했다. 그처럼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는 그냥 <고질라>였다. 일본의 <고지라>가 할리우드에서 롤랜드 에머리히의 거대 블록버스터 <고질라>(1998)로 재등장했으니, 가렛 에드워즈는 그를 의식하여 <고질라 리턴즈>같은 제목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질라의 팬들에게 1998년작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고질라가 좋게 말해 ‘날렵하게’, 하지만 사실상 ‘방정맞게’ 뛰어다녔던 기억은 말끔하게 지우고 싶었던 것. 그러니까 고질라가 (1998년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처럼) 육중한 발로 사람과 자동차를 밟아 뭉개듯 전혀 새롭게 시작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이른바 영화 사상 최고의 ‘거대 괴수’, 그 이름값에 걸맞은 과묵한 무게감을 가져주길 원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는 그런 기대에 충분히 부합했다.

<고질라>에 이어 <크리에이터>에도 출연하는 와타나베 켄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와 좀 더 비교하자면,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가 신선한 것은 역시 ‘일본’이라는 고질라의 고향을 끌어안았다는 점이다. 포드(애런 존슨)는 부모와 함께 일본에서 살던 시절, 원자력 발전소에서 벌어진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인해 어머니(줄리엣 비노쉬)를 잃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아버지 조(브라이언 크랜스톤)는 계속 일본에 남아 연구를 계속했다. 발전소 사고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다. 이후 장성한 포드는 해군 장교가 됐고, 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 엘르(엘리자베스 올슨)와 어린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다시 일본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나지만,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사는 아버지가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아버지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고질라가 나타난 것이다.

<고질라>의 세리자와 박사(왼쪽)

고질라의 팬이라면 무척 반가울 만한 일이, 일본이라는 배경을 끌어안음과 동시에 혼다 이시로의 오리지널 작품(1954년 영화)에 등장했던 세리자와 박사(와타나베 켄)도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오리지널에서 검은색 애꾸눈 안대를 쓴 독특한 외모의 세리자와 박사는 과학자로서의 윤리를 고민하던 끝에, 결국 자신이 개발한 무기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를 이용해 고질라를 죽여 버렸다. 하지만 그 무기가 이후 악용될 것을 두려워해 사용 직전 모든 연구 자료를 파기했다. 어쩌면 자신이 개발한 무기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탄식했던 오펜하이머 박사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고질라>의 세리자와 박사는 60년 전의 그에 비해 무기력한 존재다.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공포의 대상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라 할 수 있는 고질라에 대해 자신만의 이론을 갖고 있지만, 옥시전 디스트로이어 같은 해결책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바로 그것이 <고질라> 시리즈의 지난 60년의 변화를 압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거만해요. 사람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죠”라는 그의 대사는 통제할 수 없는 거대 생명체에 대한 ‘체념’과 ‘인정’ 그 모두를 담고 있다.


<몬스터즈>

가렛 에드워즈의 그러한 태도는 장편 데뷔작 <몬스터즈>(2010)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가 불과 그 단 한 편의 포트폴리오만으로 새로운 <고질라> 시리즈에 전격 승선한 이유이기도 하다. 2009년이 배경인 <몬스터즈>는 태양계에서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한 우주탐사선이 외계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귀화하던 중 멕시코에 추락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괴물들로 인해 나라의 절반이 감염 구역으로 지정되어 격리되는데, 그로부터 6년 후 사진작가 앤드류(스쿳 맥네이리)가 멕시코 인근으로 여행을 떠난 출판사 사장의 딸 샘(휘트니 에이블)을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오라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여권도 도둑맞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무방비 상태로 감염 구역의 중심을 통과해 미국으로 가야 하는 위기를 맞는다.

여기서 괴물들은 거대한 다리로 도시의 전기를 빨아들이고, 숲의 나무들까지 전염시키며 번식해 나간다. 중요한 것은 그 괴물들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냥 어쩌다 지구에 떨어졌고 그냥 여태껏 살던 대로 지구에서 살아간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그들을 지구에 오도록 만든 인간이다. 몸에서 예쁜(?) 빛을 내며 밤에 주유소에 나타나 산책하듯 거니는 괴물들을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두 주인공의 표정이 압권이다. 그렇게 <몬스터즈>는 괴물과의 묘한 ‘공존’을 얘기하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샘이 운전기사에게 “여기 사는 게 불안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었다. “어디 뭐 갈 데가 있나요, 그냥 사는 거죠. 일도 가족도 여기 있는데, 그냥 운명에 맡기는 거지 뭐.”

<몬스터즈>

<몬스터즈>도 그랬지만 <고질라>에서도 사람들은 그저 넋 놓고 지켜보면 된다. 고질라는 생태계의 균형을 잃어버린 지구로 신이 보낸 자연의 조정자다. 거대한 파괴의 신이기도 하면서 허리케인처럼 인간이 자연을 남용한 것에 대한 응당한 결과의 상징물이다. 그러기에 일어섰을 때 100미터가 넘는 초대형 괴물, 그러니까 역대 괴수영화 중 가장 몸집이 크다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중요하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가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방정맞다는 지적은 바로 그 무게감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퍼시픽 림>(2013)이 신선했던 것은 괴수/메카닉 장르 그 특유의 둔탁한 매력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그 매력에는 과거 무려 12편의 <고질라> 시리즈에서 고질라 탈을 뒤집어쓰고 연기했던 나카지마 하루오의 연기도 한몫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그렇게 <고질라> 시리즈가 인기를 끌던 당대의 일본은 파란 눈의 레슬러들을 당수로 제압하던 역도산의 프로레슬링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때였다. 그래서 고질라와 싸우는 또 다른 괴물 무토가 고질라를 향해 마치 종합격투기의 플라잉 니킥을 보는 것처럼 달려들고, 고질라 또한 백스핀 엘보를 구사하듯 거대한 꼬리로 무토를 후려칠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그러니까 이 시리즈는 말 그대로 ‘덩치’들의 격전장이었다. 더불어 ‘화염 공격’이라는 고질라의 필살기도 잊지 않는다. 원래 <고질라>는 인간이 고질라와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끼리의 싸움이나 파괴를 그저 넋 놓고 지켜보는 데 있었다. 영화 속 인간들도 우리처럼 관중이어야 했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는 바로 그 괴수들을 향한 ‘렛잇비’ 정신을 멋지게 살려냈다. 이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로 검증됐던 것처럼 가렛 에드워즈는 할리우드의 최근 실망스러운 SF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현재 기대를 가져볼 만한 거의 유일한 ‘크리에이터’가 된 셈이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