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에게 끌려간 딸 현서(고아성)를 찾기 위해 한강 둔치를 헤매다 잠시 매점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강두(송강호)는, 피로가 몰려왔는지 앉은 채로 잠이 든다. 이 절박한 순간조차 잠을 쫓지 못하는 형이 한심했던 남일(박해일)은 동생 남주(배두나)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진짜 신기하지 않냐, 어? 이 상황에서?”

“빨리 깨워. 시간 없어.”

아버지 희봉(변희봉)은 맏이인 강두를 무시하는 남일과 남주가 영 못마땅하다. 얘는 이렇게 짬짬이 잠을 자줘야 한다고 말하는데도, 애들은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데 그냥 두고 가자” 같은 이야기나 하고 있다. 아버지로서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한 희봉은, 남일과 남주를 앉혀두고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강두 얘가 어릴 적엔 무지 똑똑했다고. 다 이 아버지가 밖으로만 나도느라 제대로 챙겨 먹이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한참 성장기에 단백질 섭취량이 부족해서 그런지 이렇게 병든 닭처럼 맨날 졸기만 하고 머리도 좀 안 좋아진 게 아닌가 싶다고.

한두 번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지 남일과 남주는 벌써부터 지루해서 졸고 있다. 강두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 우리가 알게 뭐람. 하긴, 남주는 매사에 시큰둥한 편이고, 남일은 세상 모든 일에 시니컬한 사람이다. 그랬으니 희봉이 현서를 찾겠다고 평생 모은 전 재산을 털어 방역트럭을 구해와도 “전 재산으로 구해온 게 고작 이거냐”고 투덜거리기나 했겠지. 희봉도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담배 한 대를 당겨 물고는 혼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자식들이야 졸든 말든 애들에게 딸을 잃은 강두에게 최대한 잘해줘야 한다는 말은 계속 해야겠으니까. 그게 희봉의 마지막 훈계인 줄 알았다면, 남일과 남주도 그렇게 졸지는 않았을 텐데.

물론 희봉도 마냥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 말처럼, 가뜩이나 엄마 없이 자라는 강두를 혼자 두고 어딜 그렇게 밖으로 갔단 말인가. 강두가 엄마 없이 자라게 된 까닭이 뭔지는 모르지만, 남일과 남주의 엄마도 없는 걸 보면 그게 희봉의 탓은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강 매점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 전에는 상계동 판자촌에 살았을 확률이 높은데, 매점 안에 걸려 있는 멧돼지 박제를 보면 엽사 취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집안 형편이 그 모양인데도 엽사로 활동했던 걸 보면 희봉도 철이 늦게 든 편이었으리라.

어쩌면 철이 늦게 들었기에 더 절박했을 것이다. 희봉은 컵라면을 팔고 오징어를 구워가며 최선을 다해 남일과 남주를 키웠다. 남일을 4년제 대학교에 보낸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 남일이 ‘꽃병’(화염병 은어)을 말고 ‘도바리 치는’(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일) 솜씨를 보면 90년대 운동권 중에서도 강성이었을 테니, 아마 장학금을 타 와서 아버지의 등록금 지출을 줄여주는 일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남주의 양궁 뒷바라지도 결코 간단하지는 않았을 테다. 활과 화살은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던가. 애가 자랄 때마다 라이저(활의 중간 부분)도 새로 사줘야 하는데.

그런 세월을 다 겪고 난 희봉은,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강두가 손님한테 나가는 오징어의 다리 하나를 떼어먹은 탓에 4번 돗자리에서 항의가 들어와도, 현서가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잡혀가서 합동분향소에서 밤을 새게 되어도, 한밤 중에 걸려온 현서의 전화 덕분에 희망을 안고 병원을 탈출하게 되어도, 병원 탈출을 도와준 흥신소 직원들에게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조리 털려도, 희봉은 크게 분노하거나 크게 흥분하지 않는다. (영화 내내 희봉이 흥분한 건 강두와 남일이 남주를 챙기지 않고 자기들만 봉고에 올라탔을 때 한번 뿐이다.) 심지어, 자식들에게 어여 도망가라고 손짓을 하던 마지막 순간조차도 희봉은 동요하지 않는다.

변희봉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아 네 편의 영화(〈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에 출연시킨 봉준호는, 변희봉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모든 영화 속 배역 이름을 ‘희봉’으로 통일했다. 그리고 변희봉은 그런 감독의 사랑에 화답하듯 혼신의 힘을 다 해 인물을 연기했다. 개중 가장 비중이 높았던 〈괴물〉(2006)에서, 희봉의 죽음은 서사를 나누는 분기점 역할을 한다. 그만큼 영화 전반부 희봉의 존재감은 압도적인데, 변희봉은 소소한 디테일들로 매점 주인 희봉을 완성한다. 이를테면 오징어 다리를 하나 떼어먹은 강두에게 그 사실을 추궁할 때 희봉은 말한다. “4번 돗자리에서 항의가 들어왔샤. 오징어 다리가, 9개라고.” 변희봉이 대본에 적혀있는 ‘9개’를 ‘아홉 개’가 아니라 ‘구개’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희봉에 대한 많은 것들을 그 뉘앙스로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아, 이 사람이 대단히 학식이 높은 사람은 아니겠구나. 하지만 백원 이백원을 이문으로 남기는 매점 장사를 하면서, 수에 대단히 민감해졌겠구나.

얼핏 뻔하디 뻔한 아버지 상처럼 보여도, 희봉은 제법 입체적인 캐릭터다. 손녀딸의 영정 앞에서 한숨을 쉬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옛 어른들 말씀에도 사람 해친 짐승은 반드시 사지를 절단해서 끝장을 보는 게 그게 사람 된 도리라고 그랬는데, 그 짐승 놈 배를 쫙 갈라서라도 현서 시신이라도 찾든지 그래야 내가 제명에 눈을 감지” 같은 무시무시한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는 사람. 일평생 힘센 사람들에게는 수그리고 살아온 게 습관이 된 터라, 현서가 살아있다는 말을 안 믿어주는 순경에게 “우리 점잖은 사람들끼리 얘기합시다”라며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 주려던 사람. 나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다들 멀쩡한데 대체 바이러스가 어디 있냐는 남일의 말에 “위에서 있다면 있는가 보다 해야지, 어쩔 거이냐”라고 말하는 사람. 변희봉은 그런 희봉의 입체적인 면모를 잘 가다듬어 모나지 않게 매끈하게 빚어냈다.

영화 초반 현서의 영정 앞에 남주와 남일이 차례로 도착하자 희봉은 말한다. “현서야, 네 덕에 우리가 다 모였다, 네 덕에.” 그리고 지난 9월 18일 변희봉이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빈소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차례로 빈소를 찾았고, 송강호와 박해일, 배두나의 이름이 적힌 화환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변희봉 덕분에, 17년 전 한강 둔치를 헤매던 가족들이 비로소 한 자리에 모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