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렛 에드워즈 감독. (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고질라>(2014)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의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돌아왔다. 그의 신작 <크리에이터>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AI 소재의 SF 액션 스릴러 영화다. 인간과 AI와의 전쟁을 다룬 이 영화에는 <테넷>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 <이터널스>의 젬마 찬, <고질라>를 함께 했던 와타나베 켄이 출연한다. <크리에이터>는 기존 시리즈의 속편이나 만화 원작이 아니라 가렛 에드워즈 감독 본인이 직접 창조한 오리지널 각본이라는 점을 주목하자. 최근엔 한국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도 장르 영화를 개발할 때 원작이 있는 작품 기획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마블천하 시대를 거친 이후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SF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크리에이터>를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난 9월 18일, 국내 기자들과 화상으로 간담회를 가진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이야기를 토대로 <크리에이터>가 지닌 매력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화상 기자간담회 중인 가렛 에드워즈 감독. (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한국은 내가 첫 장편 영화를 들고 찾았던 곳입니다.”

가렛 에드워즈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시각효과 디자이너 출신인 그는 단 6명의 제작진을 데리고 2주 동안 5개국을 돌며 사실상 무단으로 촬영을 강행해가며 첫 번째 저예산 독립 장편 <몬스터즈>(2010)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 상영된 적 있는데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자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몬스터즈>에는 가렛 에드워즈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과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가 이 영화를 발판 삼아서 거대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로 진출했을 때에도 그 색깔을 잘 유지해 나갔다. 과거 시리즈의 리부트를 멋지게 성공시킨 <고질라>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세계를 새롭게 확장시킨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증명해낸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예산 독립 영화를 만들 때 창작자로서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던 경험과 블록버스터 영화 현장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는 제가 만든 <크리에이터>는 제가 가진 크리에이티브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상 기자간담회 중인 가렛 에드워즈 감독. (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시아의 풍경을 보면서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가렛 에드워즈

<크리에이터>가 보여주는 근 미래의 갈등 양상은 비교적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인류와 AI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AI를 전면 금지하는 상황에 이른다. 물론 AI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세력들도 있지만 그들은 게릴라처럼 숨어서 기술 개발을 이어 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세력의 거점은 아시아에 있다는 설정이다. 주인공 조슈아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으로, 신비로운 힘을 간직한 AI 세력 쪽의 ‘크리에이터’라는 존재를 죽여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어린 시절에 매주 새로운 오리지널 SF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의 극장가 풍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그 때가 정말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나한테 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바로 그 시절의 영화 같은 작품을 극장에 걸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런 마음을 담은 영화가 <크리에이터>죠. 또 언젠가 동남아 지역을 여행할 때였는데 그 때 봤던 자연 경관, 사찰의 승려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이 로봇이라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고 그런 비주얼은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울 거라 여겼습니다. 누군가 이 아이디어를 영화로 옮기게 된다면 질투가 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만들었습니다.”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

감독이 얘기하는 감상 포인트 1.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전쟁 서사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데뷔작을 만들 때부터 즐겨 사용했던 프로덕션 디자인의 스타일은 이제 감독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나사의 탐사선이 멕시코에 추락한 이후 나타난 촉수 괴물로 인해 ‘감염지역’이 되어버린 정글을 배경으로 하는 <몬스터즈>는 멕시코,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에서 촬영을 하며 독특한 비주얼을 선사했다. ‘스타워즈’ 세계관 안에서 펼쳐지는 데스스타 탈취 작전을 그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는 정글과 해변에서 해상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때는 몰디브가 배경이었다. 물론 몰디브 촬영을 소스로 활용하면서 실제 전투 장면을 찍을 수가 없으니 비행장에다가 1만평에 해당하는 몰디브 세트를 지어서 찍었던 촬영 비하인드가 당시에도 화제가 됐었다. 이번 영화 <크리에이터>에도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베트남, 캄보디아,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장소 헌팅을 했을 정도로 신선한 촬영지를 선택하기 위해 고심했다. 거대한 상상 속 기계들과 본 적 없는 전투 장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인간과 AI가 싸우는 후반부 클라이맥스 장면은 <크리에이터>의 하이라이트다.


<크리에이터>

감독이 얘기하는 감상 포인트 2.

<듄>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 한스 짐머 음악감독과의 협업

<크리에이터>의 독창적인 비주얼 스타일과 이야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도와주는 요소로 촬영감독이 포착한 카메라 워크와 귀를 때리는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만든 영화의 고유한 작품 스타일에 대해서는 앞서도 계속 해서 이야기했지만 그는 언제나 비주얼적으로 핸드헬드 촬영 기법을 활용한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을 추구한다. SF 영화가 잘 시도하지 않는 방법 중 하나다. 왜냐하면 거대 예산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에는 넓고 풍부한 앵글을 통해서 거대한 메카닉이나 풍경을 보여주게 마련인데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연출 전략을 그와 반대다. <고질라>의 경우에는 거대한 사이즈의 고질라를 멀리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줌으로써, 즉 거대한 고질라의 전체 크기를 거의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 괴생명체가 얼마나 인간에게 위협적인지를 역으로 체감하게끔 만든다.

<크리에이터>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맷 리브스 감독의 <배트맨>을 촬영한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은 가렛 에드워즈 감독과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를 함께 촬영하면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그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추구하지 않았던 핸드헬드 촬영방식을 도입해서 전투의 긴박감을 포착해낸 바 있다. 그와의 협업은 이번 영화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한스 짐머의 음악을 가지고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많은 감독들이 종종 영화를 편집할 때 한스 짐머의 음악을 틀어 놓고 편집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스 짐머가 참여하지 않은 영화인데도 그의 음악적 스타일이 묻어나는 영화를 볼 때가 종종 있죠. 나는 애초에 그의 음악을 가지고 카피나 커버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에게 함께 작업할 것을 요청하면서 ‘이전의 영화와는 다른, 한스 짐머 전매특허의 음악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감을 얻었던 아시아의 여러 영적인 음악, 종교 음악, 바흐나 모차르트 같은 클래식도 많이 들으면서 레퍼런스로 활용해달라고 했습니다.”


<크리에이터>

감독이 얘기하는 감상 포인트 3.

놀라운 신인 아역 배우 매들린 유나 보일스의 발견

<크리에이터>의 포스터에도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캐릭터인 알피 역의 매들린 유나 보일스는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는 신인배우다. 아마도 영화가 공개되면 이 어린 소녀의 연기가 널리 회자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알피라는 AI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고 이야기하면서 주인공 조슈아가 알피와 대척점에 놓이게 되면서 친구가 되어야 할지 적이 되어야 할지 갈등하게 되는 상황을 영화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의 연출력이 뛰어나서 매들린 유나 보일스의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는 배우입니다. 알피가 처한 상황을 대략적으로만 이야기해도 알아서 연기해냈죠. 촬영장의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크리에이터>


“내가 SF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크리에이터>에 등장하는 인간과 AI와의 갈등 양상은 사실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일을 우회해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고도로 발달된 AI 기술은 없지만 이미 2023년 현재에도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로, 이를테면 종교, 민족, 인종과 같은 문제로 서로 반목하고 심지어 전쟁까지 불사하는 상황을 맞는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바로 그러한 현실의 갈등을 영화에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SF 영화는 굉장히 유니크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비유와 은유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이나 우주선 등은 다른 장르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세계의 진실, 숨겨진 진실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실존하는 기술보다 과장해서 표현하기도 하죠. 관객에게 AI로부터 위협받는 상황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던져주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내가 믿어왔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저의 영화는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를 보는 많은 관객들은 저마다 AI와 인간의 공존 같은 철학적이면서도 실존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될 것 같다. 당장 할리우드에서는 현재 시나리오 작가들이나 배우들이 AI로 인해 위협받게 될 일자리에 대해 인간적인 권리를 주장하면서 파업 중이고 이런 갈등은 쉽게 타협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크리에이터>가 던지는 질문도 결국 기술발전이 인류의 역사와 번영에 얼마나 이로운 것을 가져다 줄 것인지, 그로 인한 부작용은 무엇이 있을 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아온 SF 영화의 화려한 볼거리 뒤에 숨겨진 진실은 10월 3일,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현수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