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빌리러 가는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면 그건 어떤 영화가 될까? <킴스 비디오>는 말 그대로 비디오 가게 가는 여정을 담는다. “혹시 킴스 비디오 아세요?” 감독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본다. “킴스 비디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그걸 알아보려고 하거든요.”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 영화는 보편적 인터뷰로 이뤄진 다큐멘터리, 미스터리한 인물을 탐구하는 추리물, 뜬금없는 유머를 구사하는 코미디, “사람을 살해하는 장소”인 다리 아래로 향하는 누아르, 강탈의 쾌감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범죄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정신없이 오간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영화와 비디오에 대한 못 말리는 애정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동네에 하나씩 있던 비디오 대여점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놀이터이자 학교였다. 각종 블록버스터와 감독 이름 외우기 어려운 예술 영화, 구석에서 은밀하게 손짓하던 19금 비디오까지, 온갖 작품이 한데 모인 그곳에서 영화 꿈나무의 세계는 무럭무럭 자랐다. 한편에선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불법 복제물, 그러니까 해적판 비디오가 유통됐다. 제목만 들어본 희귀한 영화들은 해적선을 통해 상륙했다. 20세기의 발명품인 비디오는 이처럼 누군가 영화 별자리를 그릴 때 빈칸을 채워줄 수 있는 가깝고 편리한 매체였다.
1980년대 중반에 문을 연 킴스 비디오는 2008년에 사업을 접을 때까지 뉴욕의 영화광들에게 성지 같은 역할을 했던 비디오 대여점이다. 시골 동네를 떠나 갓 뉴욕에 발 디딘 청년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어디서 영화를 볼 수 있냐고 물을 때, 당연하다는 듯 들려오는 말이 바로 킴스 비디오였다고 감독은 회고한다. 지점 11개, 직원 300명, 멤버십 회원 25만 명에 비디오 컬렉션은 30만 편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니, 단순한 대여점을 넘어 일종의 문화 거점이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닌 셈이다. 킴스 비디오를 거쳐 간 이들 중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코엔 형제, 짐 자무쉬, 마틴 스콜세지 같은 대단한 감독들도 있다. 물론 <킴스 비디오>의 공동 연출자인 데이비드 레드먼과 애슐리 사빈에게도 킴스 비디오는 각별한 장소다. 이처럼 창작자들에게 영화의 세례를 내린 이 특별한 가게는 나름의 큐레이션으로 더 유명했다. 거장들의 알려지지 않은 초기작, 국제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미개봉 신작, 뉴욕 뒷골목 풍경이 담긴 언더그라운드 영화, 학생들이 만든 영화 등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희귀한 작품들이 킴스 비디오 선반에 자리를 잡았다. 계산대 근처에는 간혹 FBI의 습격을 받곤 하는 해적판 매대도 있었다. 그곳을 누군가는 금광으로, 누군가는 비밀 본부로, 그리고 누군가는 집으로 회상한다.
디지털 매체와 온라인 유통의 시대에 킴스 비디오의 역사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영화사의 한 줄기를 다루는 근사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괴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두 감독은 그 길을 가지 않는다. <폴터가이스트>(토브 후퍼, 1991)의 아이처럼 TV 화면을 만지며 영화와 접촉했다는 레드먼은 2008년 킴스 비디오가 폐업한 이후 종종 그 자리에 가서 가게가 돌아오길 기다렸다는 절절하고 유난스러운 애정의 소유자다. 그가 파트너인 사빈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건 ‘몬도 킴’ 지점의 55,000개 소장품의 행방을 찾으면서부터다. 컬렉션은 디지털화 및 대중 개방을 약속한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소도시 살레미로 보내졌으나, 제대로 보관되거나 적절히 사용되지 못한 채 창고에 방치됐다. “안토니오니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것을 방치한 책임자를 찾고 소장품이 버려진 경위를 추적하는 임무를 스스로 부과한 레드먼은 카메라를 든 채 살레미, 서울, 뉴욕을 종횡무진 오간다. 그 과정에서 마피아를 뒤쫓는 수사관을 만나 소도시 정치 스캔들의 실체를 마주하기도 하고, 그토록 궁금해했던 킴스 비디오의 대표 용만 킴과 조우하기도 한다.
<킴스 비디오>의 한 축은 의뭉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인물들의 면면으로 지탱된다. <파리, 텍사스>(빔 벤더스, 1984), <블루 벨벳>(데이비드 린치, 1986), <거울>(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75),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압바스 키아로스타미, 1987) 등 영화를 인용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내용을 전개할 수 없다는 듯 온갖 장면들을 가져다 화면을 뒤덮는가 하면, 카메라를 들고 하도 요란하게 뛰어서 현기증까지도 유발하는 감독 데이비드 레드먼이 단연 첫 번째 인물이다. 진지함과 호들갑을 오가며 “영화를 사랑해!” 하고 외치는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 붉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런가 하면 미스터리의 사나이 용만 킴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주요한 등장인물. 큰 키에 무뚝뚝한 표정이 흡사 마피아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직원들의 회상만으로도 이미 범상치 않다. 군 복무를 마치고 뉴욕에 정착한 20대 초반의 한국계 이민자 청년은 “과일 좌판에서 일하다 세탁소를 사고 결국 뉴욕에 비디오 왕국을 세웠다.” 그는 직원들을 국제 영화제에 파견해 미개봉 신작을 입수할 정도로 킴스 비디오 운영에 열의를 보였으면서도, 살레미와의 계약에 관해서는 권한 밖의 일이라며 소장품을 되찾을 생각이 없다고 못 박는다. 정말이지 속내를 밝히지 않는 어느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감독이 꽤 수다스럽긴 하지만 <킴스 비디오>는 다른 한편으로 과묵한 영화다. 영화는 킴에게 많은 걸 묻지 않는다. 왜 그렇게까지 열성적으로 킴스 비디오의 선반을 채웠는지, 어떤 마음으로 소장품을 살레미에 보냈는지, 그 모든 시간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카메라 너머로 질문하는 법이 없다. 대신 영화는 용만 킴이 지난 세월 보여준 행동의 의미를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기로 다짐한 듯하다. 레드먼은 그 어떤 영화라도 보관될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는 요지의 질문을 던진다. 꼭 주류영화만이 아니라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무명의 영화들 역시 관객을 만날 가능성을 품어야 한다. <킴스 비디오>는 점잖은 문화 연구도 첨예한 실험 에세이도 아니다. 온갖 영화의 장면들을 이어 붙이고 시도 때도 없이 킬킬대는 B급 정서로 중무장한 좀 독특한 다큐멘터리다. 게다가 후반부에 숨 가쁘게 전개되는 ‘영화 구출 작전’은 반쯤은 영화 애호가의 허풍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첫머리에 문득 스쳐 가는 ‘허구적 인물’이란 아마 감독 자신을 이르는 건지도 모른다. <킴스 비디오>가 이해하는 ‘영화’는 성스럽지 않다. 온갖 불순한 요소가 엉겨 붙은 것, 여기저기에서 훔친 것들로 만든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화가 아니겠느냐고 이 활기 넘치는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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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