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오브 뉴욕>(1990)은 아벨 페라라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아벨 페라라는 이 작품으로 누아르와 갱스터 장르의 대가로 인정을 받았고, 이후 또 다른 누아르 영화인 <악질 경찰>(Bad Lieutenant, 1992)로 더 높은 정점에 올라섰다. 힙합 음악을 사운드트랙을 쓰는 것을 포함해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촬영 등, 여러 가지 선구적 시도로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던 <킹 오브 뉴욕>이 개봉 32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게 된다.
<킹 오브 뉴욕>은 한때 뉴욕을 군림하던 마약왕, '프랭크 화이트'(크리스토퍼 월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오랜 수감 생활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 자신의 사업에 방해되는 갱단 두목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총격 살인 사건을 벌인 부하들이 경찰에 체포되자 뉴욕에서 가장 막강한 변호사들을 통해 보석금을 내고 그들을 석방시킨다. 그는 또한 유년 시절을 보낸 동네의 병원을 현대화하기 위해 마약 사업으로 번 돈을 기부하며 정치계와 손을 잡는 등 점점 거물이 되어간다. 뉴욕의 마약 담당 수사반장인 비숍을 비롯한 그의 팀원들은 살인과 마약 매매를 일삼으면서도 매번 무죄 판결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프랭크에게 이를 갈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결국 법의 심판을 기다리지 못하고 프랭크와 전면 대결을 선포한다.
누아르 혹은 갱스터 장르의 도식에서 가장 중심축에 놓이는 요소는 역시 ‘두목’ 캐릭터 일 것이다. 'King of New York', 즉 ‘뉴욕의 왕’을 자처하는 조직의 리더, 프랭크 화이트는 팀원을 목숨처럼 아끼는 인정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정신착란적인 면모와 극악무도함을 동시에 보유한 다중적 인물이다. 예컨대 그는 늘 힙합 음악에 춤을 추고, 사랑하는 변호사 연인과 지하철에서 키스를 나누는 낭만적인 청년임과 동시에 자신을 적대시하는 경찰의 얼굴에 총을 난사하는 잔인함을 보여주는 범죄자인 것이다. 크리스토퍼 월켄은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프랭크 캐릭터에 가장 적확한 배우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아무런 심경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프랭크의 공허한 시선과 거대한 비극을 예고할 때마다 드러나는 그의 역설적인 미소는 아마도 월켄이 아니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 이 작품 전체의 얼굴이다.
<킹 오브 뉴욕>은 엄연한 누아르 장르의 영화지만 ‘뉴욕 영화’ 이기도 하다. <갱 오브 뉴욕>(마틴 스콜세지, 2002), <아메리칸 갱스터>(리들리 스콧, 2007), <언컷 젬스>(새프디 형제, 2019) 등 뉴욕은 수많은 갱스터 영화들 혹은 그 이외의 영화들의 주 무대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킹 오브 뉴욕>에서 역시 뉴욕은 프랭크 일당의 둥지이자, 프랭크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그는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택시를 잡아 맨해튼의 곳곳을 누비는 것으로 자유를 만끽한다.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클로즈업으로 보여지는 프랭크의 공허한 시선이 흥분과 환희로 가득 차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의 네온 사인과 이스트 빌리지의 다이너들, 그리고 거리의 아이들은 그의 심장이자 동맥이다. 따라서 그가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는 ‘병원 기부 사업’은 선행을 하기 위한 의지라기보다는 뉴욕을 향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이자 애착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들 중 하나는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힙합이다. 특히 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플라자 호텔 시퀀스들은 마치 90년대 힙합 뮤직비디오를 연상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개봉이 힙합 음악을 본격적으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했던 <보이즈 앤 후드>(1991)나 <뉴 잭 시티>(1991)의 개봉보다 앞섰다는 점이다. 음악에 헌신하는 아벨 페라라의 실험적인 시도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페라라는 2017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랑스에서>(Alive in France)에서 자신의 밴드 공연을 기록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에서 페라라의 어린 아내 크리스티나(이들은 40살의 나이 차이가 난다)가 탑리스(topless)로 페라라의 무대 위에서 춤을 주는 장면과 <킹 오브 뉴욕>에서 여성 갱 멤버들이 힙합 음악에 춤을 추는 쇼트들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것은, 잠식하지 않는 그의 음악적 이상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영화는 5백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지만 당시 페라라의 필모그래피 상으로는 가장 비싼 프로젝트들 중 하나였다. 안타깝게도 극장 수익으로는 제작비의 반, 즉 2백5십만 달러를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지만 평론가들과 시네필들의 환영을 받았다. 영화는 제작된 해에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에 대해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페라라를 환영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영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킹 오브 뉴욕>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가미해 재생된 <로미오 앤 줄리엣>”이라고 평하며, “도발적인 입술과 세련된 헤어스타일, 그리고 굶주린 눈동자로 가득한 네오 누아르"라고 서술했다. (The movie was "Romeo and Juliet" recycled through "West Side Story" and the TV action series of your choice, but the look was something else - a garish, neo-noir universe of warm lips, sleek hair and desperate eyes.)
로저 이버트의 예언처럼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컬트 팬덤을 이끄는 클래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페라라는 <킹 오브 뉴욕>의 개봉 이후에도 <어딕션>(1995), <퓨너럴>(1996) 등의 아트하우스 수작들을 2000년대 초반까지 쉬지 않고 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독립영화에 가까운 작은 영화들이지만 그는 스콜세지와 리들리 스콧이 속한 갱스터와 누아르 장르의 마스터 범주에서 절대 누락돼서는 안되는 중요한 아티스트다. 특히 1970년대 <죠스>(스티븐 스필버그, 1975)의 탄생 이후로 블록버스터로 잠식된 할리우드 산업에서 아벨 페라라는 그럼에도 할리우드식 작가주의를 이어 나가는 몇 안 되는 감독이기도 했다.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페라라의 탄생을 예고했던 <킹 오브 뉴욕>은 분명 미국의 아트하우스 영화사의 랜드마크이자, 갱스터 장르의 경전으로 앞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