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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 예고편

1월31일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중화권 여자 배우 왕조현의 생일이다. 1967년생. 올해 50번째 생일을 맞았다. 왕조현은 추억 속의 배우다. 2004년 영화 <미려상해>를 마지막으로 연예계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의 끝판왕', '추억의 여신'으로 회자되고 있다. 워낙 <천녀유혼>의 존재감이 강하다보니 이외의 정보는 상대적으로 적게 알려져 있다. 왕조현에 대한 시시콜콜한 사실들을 (느슨한 시간 순으로) 정리해보았다.


1. 대만 출신이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한국에서 인기 많았던 중화권 스타들은 흔히 '홍콩인'으로 뭉뚱그려 불리곤 했다. 왕조현 역시 홍콩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는 홍콩도 중국도 아닌 대만 타이페이에서 나고 자랐다. 



2. 학창 시절 농구선수였다.

왕조현은 173cm의 장신이다. 대만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중학교 때 잠깐 농구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어딜 가도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로 길거리 캐스팅됐다. 스포츠브랜드 아디다스 화보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것 역시 그녀의 건강한 이미지 때문이었을 터. 1986년 작 <심동>에 혼자 농구 하는 장면이 있는데, 드리블이나 슛 쏘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아디다스 모델 시절

3. 17살에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데뷔작부터 주연을 꿰찼다. 1984년 영화 <금년호반회흔랭>이 첫 작품이다. 금마장 영화제에서 최우수촬영상을 받았다고. 국내엔 1990년 <왕조현의 사랑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비디오 출시된 바 있다.

<금년호반회흔랭>


4. 홍콩에서도 예뻤다.

데뷔 초기 대만에서 영화를 찍다가 홍콩으로 건너가 커리어를 단단히 다진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주연을 도맡았고 그 가운데 주윤발, 장국영 등과 함께 출연한 작품도 있다. 타국에 진출하고 나서도 계속 주연에 캐스팅된 걸 보면 꽤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재견칠일정>(1985)
<위슬리전기>(1985)
<의개운천>(1986)
<공처 2인방>(1986)
<심동>(1986)

5. <천녀유혼>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다.

1987년작 <천녀유혼>에서 귀신 섭소천 역을 맡았다. 왕조현 특유의 창백한 외모에 힘입어 가장 아름다운 귀신 캐릭터가 탄생했다. 이 작품이 그야말로 대박나면서 왕조현 역시 하루아침에 톱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홍콩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도 그 인기가 퍼져 각국에서 왕조현 신드롬이 불었다. <천녀유혼> 이후 왕조현의 이전 출연작들이 한국에 속속 개봉되기도 했다. 각각 1990년, 1991년 제작된 2편, 3편에도 출연했다.


6. <천녀유혼> 이후에도 여전히 예뻤다.

이후에도 왕조현은 '홍콩 4대 여신'답게 영화계를 종횡무진하며 필모그래피를 부지런히 쌓아나갔다. 다만 <천녀유혼>의 히트가 두드러지는 탓에 한국인들에게 다른 작품들은 영 낯선 게 사실. 시간이 지나도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점차 입지는 좁아졌다.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긴 하지만.

<장단각지연>(1988)
<대행동>(1988)
<화중선>(1988)
<반금련>(1989)
<자유인>(1990)
<시티 헌터>(1992)
<동방불패 2: 풍운재기>(1993)

7. 한국도 방문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홍콩 영화 붐으로 한국에선 홍콩의 배우들을 데려와 CF를 찍는 유행이 일기도 했다. 장국영, 주윤발, 유덕화 등이 '밀키스', '투유 초콜릿' 광고 모델이 됐다. 왕조현은 1989년 '크리미' CF를 촬영해 한국에서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1993년엔 한국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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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TV 인터뷰
1993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출연 당시. 11시 방향에 이경규도 보인다.


8. 왕가위의 <동사서독>을 촬영했다.

1994년 장국영, 양조위, 임청하, 장만옥, 장학우, 양가휘 등과 함께 왕가위의 무협영화 <동사서독>을 촬영했다. 중화권배우 올스타가 모인 자리라 적잖은 화제를 모았지만, 완성본에서 왕조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왕가위의 제작 시스템이 워낙 즉흥적이고 시간 지체가 심하며, 촬영 분량을 고스란히 들어내기로 유명한 걸로 부재를 미뤄봄직하다.

(왼쪽부터) 왕조현, 임청하, 유가령

9.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왕조현은 스캔들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데뷔 초기부터 여러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설에 시달렸다. 공개 연인이었던 가수 겸 배우 제진과의 관계도 들쑥날쑥했다. 하지만 치명적이었던 건 중화권 연예계의 큰손인 임건악과의 스캔들. 중년 유부남과의 관계로 인해 고향인 대만의 대중들은 그녀를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27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제진과의 사진


10.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했다.

1992년 <천녀유혼 3: 도도도>의 일본 개봉에 맞춰 (일본판 엔딩에만 흐르는) 주제곡 '永遠に抱しめて'이 담긴 싱글을 냈다. 1994년 은퇴 후 3년 만에 출연한 일본 영화 <북경원인>의 주제곡 'Who Are You?'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듬해 10곡이 담긴 정규 앨범 <與世隔絶>(세상과 단절하다)을 냈는데, 타이틀곡 '小'에서는 <천녀유혼>의 섭소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고 알려졌다.


11. 2004년 이후 연기 활동이 멈춰 있다.

일본에서 짤막하게 가수로 활동한 뒤, 2001년 <유원경몽>에 출연했다. 중국의 전통극 배우로 살아가는 두 여인의 우정과 사랑을 탐미적인 영상에 담은 작품이라고. 90년대 초반 즈음. 일본과 홍콩에서 화려한 인기를 누리던 미야자와 리에와 왕조현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다. 3년 후엔 중국영화 <미려상해>에 출연했다. 현재로서 마지막 작품으로 남아 있다. 이 두 작품은 늘 왕조현을 따라다니던 연기력 논란을 단칼에 날려버린 영화라 아쉬움이 더 크다.

<유원경몽>(2001)
<미려상해>(2004)

12. 간간이 셀카를 찍어 근황을 알리고 있다.

두문불출한 이후 그녀의 소식은 비구니가 되었다는 소문이나 한껏 살이 오른 모습 등으로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현재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드문드문 셀피를 찍어 근황을 알리고 있다. 1월28일엔 2017년 신년 안부를 전했다. 

2016년
2017년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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