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이 <곡성> 리메이크에 관심이 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사실 <올드보이>, <장화, 홍련> 등의 걸작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적이 있지만, 원작의 매력을 뛰어넘지 못했었지요. 다른 문화권에서 독특한 소재의 작품을 제대로 ‘현지화’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오늘은 같은 아시아권에서 진행된 한국영화 리메이크 작품들을 돌아보겠습니다.
조용한 가족(1998)
/ 카타쿠리가의 행복(2001), 일본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은 산장을 운영하게 된 평범한 가족이 본의 아니게 살인과 시체유기의 전문가가 돼간다는 설정의 블랙코미디였습니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착신아리>, <이치, 더 킬러>의 미이케 다카시가 원작을 만들었어도 이상할 게 없을 스토리죠. <카타쿠리가의 행복>(2001)은 미이케 다카시가 <조용한 가족>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더 어둡고 더 잔인한 영화를 기대했는데, 의외로 흥겨운 뮤지컬 영화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원작의 포스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괴이한 분위기는 여전했습니다. 도쿄국제영화제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고 미이케 다카시의 고정팬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를 통해 팬들을 즐겁게 했었지요.
분신사바(2004)
/ 필선(2012), 중국
<가위>, <폰> 등으로 한국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를 중국에서 리메이크한 작품 <필선>입니다. 안병기 감독이 그대로 연출을 맡았습니다. 감독은 중국 공포영화의 특징을 공부하고 중국의 까다로운 심의 규정들을 파악하는 등 현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같은 문화권 안에서 같은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이어서 그런지 <필선>은 6,000만 위안(약 108억 원)을 벌어들이며, 역대 중국 공포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지요. 이후로도 ‘필선’ 시리즈는 계속되고 있어서 ‘분신사바’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포영화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았습니다.
블라인드(2011)
/ 나는 증인이다(2015), 중국
김하늘의 <블라인드>를 중국에서 리메이크한 <나는 증인이다>도 성공 사례입니다. 가뜩이나 해외영화들의 진입장벽이 높은 중국입니다만, 특히 범죄 스릴러 장르가 성공하기 힘든 환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증인이다>는 중국 개봉 첫 주에 1억 2,000만 위안을 시작으로 흥행을 이어갔지요. 일단 스타파워가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경찰생도 루샤오싱 역은 인기 절정의 배우 양미가 맡았으며, 목격자 린총 역은 엑소 출신의 루한이 맡았습니다. 또한 <분신사바>의 경우처럼 원작의 안상훈 감독이 그대로 리메이크작을 연출한 전략도 맞아들었습니다. 양국의 제작사가 최상의 제작 환경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저씨(2010)
/ 록키 핸썸(2016), 인도
다소 부담스러운 제목을 달고 리메이크된 <아저씨>의 인도산 리메이크 <록키 핸썸>입니다. 원빈이 맡았던 아저씨 ‘태식’ 역할은 인도의 액션배우 ‘존 아브라함’이 맡았습니다.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같고, <아저씨>의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대부분 그대로 재현됩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고증된 실전 무술 장면은 <록키 핸썸>에서 제대로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느낌을 내려고 노력한 흔적은 있지만, 좀더 ‘영화적인 액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에라 모르겠다’ 같은 심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현지화시켜서, 정말 흥겨운 발리우드로 <아저씨>를 리메이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나름 컬트 팬을 거느린 근사한 괴작이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수상한 그녀(2013)
/ 내가 니할매다(2015), 베트남
/ 20세여 다시 한번(2014), 중국
/ 수상한 그녀(2016), 일본
<수상한 그녀>는 가장 성공적인 해외 리메이크 사례입니다. 무려 중국, 베트남, 일본에서 3차례나 리메이크되었지요. 베트남에서는 <내가 니 할매다(Emlàbànoicuaanh)>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어 역대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코미디를 좋아하는 베트남 관객의 입맛을 맞춘 전략이 주효했지요. 중국에서는 <20세여 다시 한번(重返20歲)>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는데요. 이번엔 중국 관객들의 취향에 맞게 멜로적인 요소를 많이 넣었고 중국의 국민가수 ‘등려군’의 명곡들을 사용했습니다. 엑소의 멤버 출신인 루한이 출연해 다시 한번 인기를 검증하기도 했지요. 일본에서 개봉한 <수상한 그녀(あやしい彼女)>는 고부갈등보다는 모녀간의 갈등을 추가했습니다. 전체적인 마케팅은 ‘리메이크’가 아니라 ‘동등하게 계획된 기획 작품’이라는 이미지를 밀고 나갔습니다.
이상, 아시아권에서 리메이크된 한국영화들을 돌아봤는데요. 최근 이어지는 한국 드라마의 리메이크나 한국판과 중국판을 동시에 제작하는 강풀 원작의 <미녀>처럼, 기획부터 이미 현지화를 고민하는 방법이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곡성>처럼 한국의 무속신앙과 지역색이 짙은 작품이 다른 나라에서 리메이크되는 과정은 아주 조심스러운데요. 다행히, 리들리 스콧은 나홍진 감독만이 리메이크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는군요. 모쪼록 멋진 작품이 탄생하길 기다려봅니다.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오욕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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