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은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배우
故 이은주의 12번째 기일이다.

스물여섯의 나이,
9편의 영화, 4편의 드라마만을 남긴 채
갑작스럽게 떠난 배우이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많은 대중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 하고 있다.

이은주가 이곳에 남긴 모습들로
그녀를 기억해보고자 한다.

백야 3.98

<백야 3.98>은 이은주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다. <모래시계> 이후 김종학 프로덕션이 내놓는 첫 작품이라 최민수, 심은하, 이병헌, 이정재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다. 이은주는 심은하의 아역을 맡았다. 철책을 사이에 두고 택형과 이별하는 아나스타샤의 처연함은 이은주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카이스트

<카이스트>는 이은주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확연히 알린 작품이다. 함께 출연한 수많은 청춘스타들 가운데 이은주가 단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지원은 불행했던 가정사로 인해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여는 지원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웃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송어

이은주의 스크린 데뷔작. 비교적 덜 알려진 <송어>는, 산골로 여행온 무리들이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파국에 몰리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다. 설경구, 강수연 등 뛰어난 배우들 사이에서도 공포에 질린 이은주의 얼굴은 확연히 남았다.

오! 수정

(여자)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에 붙이길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 그는 이은주가 출연한 영화 <오! 수정>에서 처음으로 인물의 이름을 내걸었다. 수정은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재훈(정보석)과 영수(문성근)의 호감을 독차지하며 애욕이 뒤엉키는 '홍상수 월드'의 공기를 불어넣었다.

번지점프를 하다

청초한 얼굴에 묻어나는 연약한 기운은 이은주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이런 느낌은 <번지점프를 하다> 인우(이병헌)의 첫사랑인 태희를 보다 생생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로맨스 <번지점프를 하다>는 이병헌뿐만 아니라 이은주의 팬들이 유독 깊은 사랑을 바치는 작품이다.

연애소설

차태현, 손예진과 함께 출연한 <연애소설>. 미묘한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 속에서 수인(손예진)이 음이라면, 경희(이은주)는 양이었다. 손대면 픽 쓰러질 거 같은 수인과 달리, 경희는 늘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씩씩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전작과 달리 유독 밝은 이은주를 만날 수 있었던 <연애소설>은 이은주라는 배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얀 방

이은주 특유의 창백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출연한 스릴러는 시장에서 고배를 맛봤다. 인터넷 사이트를 둘러싼 기이한 죽음을 따라가는 영화는 특별한 공포조차 어필하지 못했고, 이은주의 팬들조차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 영화로 남아 있다. 다만 그녀의 표정에 드리운 음울함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하늘 정원

<하늘 정원>은 이은주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밋밋한 영화다. 영주는 시한부를 선고 받은 여자다. 감동을 보장할 수 있는 캐릭터였지만, 2003년이라고 믿을 수 없는 낡은 이야기로 인해 식상함만 남기고 말았다. 이은주의 입체적인 얼굴조차 안일한 캐릭터 앞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 형제의 뜨거운 우애를 그린 <태극기 휘날리며>. 이은주는 진태가 고향에 남기고 온 애인 영신으로 출연했다. 전쟁통에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지친 표정이 이은주와는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다만 영화는 진태와 영신의 사랑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온전히 형제애에만 집중하고 있어 그녀의 존재는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안녕! 유에프오

<안녕! 유에프오>의 경우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를 잇는, 또 다른 첫사랑 캐릭터다. 버스기사 상현(이범수)은 자기가 만든 라디오 방송을 들려주며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를 멀찌감치서 바라본다. 영화 속 경우를 보면 주인공 상현처럼 그녀에게 푹 빠져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새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느끼한 멘트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이 대사는 <불새>의 정민(에릭)이 지은에게 건네는 말이다. 다시 한번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된 이은주는 세훈(이서진)과 정민의 마음을 뒤흔들며 불꽃 같은 사랑을 이끌어간다. 드라마는 3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크게 히트했고, 현재까지도 이은주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주홍글씨

이은주의 유작. 네 남녀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끝내 파국으로 직진하는 과정을 파격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클라이막스의 트렁크 신을 촬영한 후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는 외면받았지만, 영화 속에서 부른 노래 'Only When I Sleep'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자연스레 그 노래가 떠오르는 게 에디터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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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