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은 배우 샤론 스톤이 태어난 날이다. 1958년생개띠이니 59번째 생일을 맞았다. 스톤은 90년대 최고의 섹시 스타였다. 그녀에게 견줄 만한 인기를 누린 배우는 많았을지언정, 뛰어넘은 배우는 결코 없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타덤을 자랑했다. 현재는 간간이 '추억의 스타' 정도로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그녀는 엄연히 현역으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고 있다. 스톤의 탄생부터 2017년까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사실들을 되새겨보았다.


1.어릴 적부터 수재였(다고 한)다.

유년과 10대 시절

샤론 이본 스톤(Sharone Vonne Stone)은 회계사인 어머니와 공장노동자인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났다. 2남2녀 중 둘째로, 펜실베니아 매드빌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두 펜실베니아에서 다녔다. IQ 148이라고 알려진 그녀는 자신이 꾸준히 멘사 회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2001년 거짓임이 들통나긴 했지만.


2.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대학생 시절, 미스 크로포드 카운티로서 미스 펜실베니아에 도전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에서 모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고, 1977년 고향을 떠나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했다. 다만 뚜렷한 성과를 남기진 못했다. 모델을 그만두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다.


3. 우디 앨런의 영화로 데뷔했다. 하지만...

우디 앨런의 1980년 작 <스타더스트 메모리스>가 첫 영화 출연작이다. 대사도 없는 엑스트라로 참여했다. 이듬해 웨스 크레이븐의 <악령의 리사>에서 주연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이후에 뚜렷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거장 클로드 를르슈의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1982)는 불과 2분간 출연해 크레딧에 오르지 못하기도. 무명생활은 1980년대 내내 계속됐다.

<스타더스트 메모리스>(1980)
<악령의 리사>(1981)
<바 시티 블루스>(1983)
1983년 화보
<우리 딸은 못 말려>(1984)
<형사 니코>(1988)

4. <토탈 리콜>로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토탈 리콜>(1990)

<로보캅>(1987)으로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폴 버호벤의 야심작 <토탈 리콜>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직 <터미네이터 2>가 나오지 않은 당시에 최첨단의 CG 기술을 선보여 지금도 SF영화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스톤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주인공 퀘이드의 아내 로리 역을 맡았다. 등장 분량은 아주 짧지만, 섹슈얼한 자태만큼은 제대로 각인시켰다. 대중의 시선은 실질적 히로인이었던 레이첼 티코틴보다 스톤 쪽으로 향했다. 다만 순식간에 화려한 시절이 온 건 아니다. 그녀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에 누드 화보를 찍어야만 했다. 비록 흥행작은 아니지만 이후 출연한 5개 작품 모두 주연으로 활약했다.

<사랑의 선택>(1991)
<지옥의 일요일>(1991)

5. 원.초.적.본.능

주지하다시피 샤론 스톤의 대표작은 1992년 작 <원초적 본능>이다. 폴 버호벤 감독은 <토탈 리콜>에 이어 <원초적 본능>의 히로인 캐서린 트라멜 역에 그녀를 낙점했다. 바이섹슈얼이자 연쇄살인마인 캐서린은 지능적이고 뇌쇄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전세계 대중의 육감을 사로잡았다. 특히 짧은 화이트 원피스를 입고 다리를 꼬는 취조실 신은 수많은 패러디를 재생산시키며 '섹시하다'는 형용사의 사전적인 이미지처럼 각인됐다. 한국에서 서울 관객 9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4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세계 3억5200만 달러 수익을 거둬들였다. 스톤은 34세의 나이에 그야말로 우주적 스타가 됐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샤론 스톤

6. 굳어지는 이미지, '배우'로서의 도약

'섹스심벌'이라는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다. 대중들은 배우에게 섹시함만을 기대하고, 캐스팅의 방향 역시 그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슬리버>(1993), <마지막 연인>(1994), <스페셜리스트>(1994) 모두 그녀의 매혹적인 이미지 하나는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다만 완성도와 흥행 성적 모두 아쉬웠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함께한 <스페셜리스트>를 제외하고는 북미에서 5천만 달러를 넘긴 작품이 없었다. "샤론 스톤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마지막 연인>
<스페셜리스트>

그러나 거장 샘 레이미와 마틴 스콜세지와 작업한 1995년 작 <퀵 앤 데드>와 <카지노>는 스톤에게 '연기 잘하는 배우'의 이미지를 안겨줬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초적 본능> 류의 섹슈얼 스릴러가 아닌, 웨스턴과 범죄드라마를 표방했던 두 작품에서 스톤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비로소 인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녀는 <카지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퀵 앤 데드> / <카지노>

7. 한국 기업의 CF를 촬영했다.

1990년대 중반에도 스톤의 인기는 여전했다. 한화에너지는 휘발유브랜드 '이맥스'에 스톤을 기용해 50만 달러에 전속모델 1년 계약을 맺고 CF를 발표했다. 당시 유공이 박중훈과 이경영, LG정유가 이승연 등 국내 스타 배우를 기용했던 것과 달리 한화에너지는 파격적으로 외국 스타를 캐스팅해 큰 화제를 모았다. 샤론 스톤의 우리말 전담 성우였던 강희선이 목소리를 맡았다. 메인 카피는 "강한 걸로 주세요"였다.


8. 라즈베리 시상식에 8년간 후보로 올랐다.

샤론 스톤은 유독 상복이 없는 배우 중 하나다. 하지만 매해 최악의 영화와 영화인들에게 오명의 영광을 안겨주는 라즈베리 시상식은 1988년 <쿼터메인>부터 2007년 <원초적 본능 2>까지 20년 중 8년간 그녀를 후보자로 지명했다. <원초적 본능>, <스페셜리스트>, <디아볼릭>(1997), <글로리아>(2000), <캣우먼>(2005) 등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나름 돋보이는 작품들이 대부분 호명된 셈이다. 스톤이 가장 최근에 받은 '긍정적인' 상은 2004년 드라마 <프랙티스>로 수상한 에미상 드라마시리즈 부문 여우조연상이다.

<디아볼릭>
<글로리아>
2004년 에미상을 수상한 샤론 스톤

9. 여전히 '왕성한' 현역이다.

스톤은 현역 배우다. 그녀의 행보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영화 혹은 캐릭터가 돋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야심차게 준비한 <캣우먼>, <원초적 본능 2> 같은 작품조차 시리즈물로서의 자충수에 걸리고 말았다. 아무쪼록 스톤은 뇌출혈 재활 중에도 해마다 꾸준히 작품을 활동을 이어가며 필모그래피를 열심히 쌓아가고 있다. 에디터 개인적으로는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2005) 속 돈(빌 머레이)의 전 애인 중 하나인 로라로 분했을 때의 스톤을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다. 최근작은 지난 2월 북미에서 개봉한 <러닝 와일드>다.

<브로큰 플라워>
<캣우먼>
<러닝 와일드>

10.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일원이 된다.

'앤트맨' 시리즈의 두 번째 편 <앤트맨 앤 더 와스프>(2018)에 출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국내 매체에선 이미 확정이라고 기사를 냈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유력 정도로 여기고 있다. 스톤이 <앤트맨 앤 더 와스프>에 출연한다면, 행크 핌 박사(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내이자 1대 와스프인 자넷 반 다인 역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마이클 더글라스와는 <원초적 본능> 이후 근 25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 셈이다. 와스프는 <어벤져스 4>(2019)에 등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스톤의 MCU 참여가 그녀의 커리어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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