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혜지 시대라는 말이 있다. 2000년대 초중반 김태희, 송혜교, 전지현으로 대표되는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시트콤 <순풍산부인과>(1998)로 주목받기 시작한 송혜교는 시청률 40%를 웃돈 첫 주연작 <가을동화>(2000)를 시작으로 <호텔리어>(2001), <올 인>(2003), <풀 하우스>(2004)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톱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테크노 댄스를 추며 등장한 CF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전지현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2001)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김태희는 <천국의 계단>(2003)에서 악녀 한유리 역으로 대중의 눈도장을 찍으며 인지도를 넓혔다. 이후 <구미호외전>(2004),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2004)로 최고 스타의 입지를 다졌다.

'태혜지' 시대. 한 방송사는 이들의 이름을 따 시트콤까지 만들 정도로 미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들 세 여배우는 비슷한 시기에 경쟁 구도를 이루면서 인기가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같은 여배우 트로이카 체제는 이게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꾸준히 있어온 연예계 용어다. 그 주인공들이 누구였는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1960년대
문희, 남정임, 윤정희
왼쪽부터 문희, 남정임, 윤정희.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연예 잡지를 통해서다. 각각의 매력과 개성을 가진 문희, 남정임, 윤정희는 1960년대 영화계를 평정했다. <흑맥>(1965)으로 데뷔한 문희는 <초우>(1966)로 스타덤에 오른 뒤 <미워도 다시 한번>(1968) 등 화제작을 연이어 쏟아내며 정상에 올랐다. 남정임은 <유정>(1966)으로 데뷔해 <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 <봄 봄>(1969), <내 생애에 단 한번만>(1969) 등을 히트시켰고, 윤정희는 1200 1의 경쟁을 뚫고 <청춘극장>(1967)으로 데뷔한 이후 <무녀도>(1972), <궁녀>(1972) 등에 출연하며 각종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결혼 교실>(1970). 왼쪽부터 윤정희, 신성일, 문희, 남정임. '여배우 어벤져스'란 이런 것.

당대의 최고의 여배우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세 배우가 무려 한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으니 그 작품이 바로 <결혼 교실>(1970)이다. 이 작품에서 누구 이름을 먼저 올리는가를 두고 데뷔순, 나이순 등 격론이 있었는데, 결국은 가나다순으로 정했다고 한다.


1970년대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왼쪽부터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1970년대는 TV 보급이 시작되던 때다. 이때부터 배우들의 활동 영역은 스크린을 넘어 안방까지 넓어지게 된다. 이 시기를 대표하던 여배우들이 바로 신 트로이카로 불리던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다. 유지인은 <그대의 찬손>(1975)으로 영화에 데뷔, 드라마 <서울 야곡>(1977), 영화 <마지막 겨울>(1978) 등을 통해 흥행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유지인은 문희의 시원한 이목구비를 꼭 빼닮아 미녀 배우의 계보를 이었다. 정윤희는 <꽃순이를 아시나요>(1978)의 흥행 성공으로 당대를 아우르는 미녀 스타로 자리잡았다. 특히 정윤희의 미모는 단군 이래 최고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유명했다.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미희는 <성춘향전>(1976)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고고하고 우아한 이미지의 배우로 지금도 활약 중이다.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아름다운 밤이에요 1992년 장미희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남긴 수상소감이다.


1980년대
이미숙, 원미경, 이보희
왼쪽부터 이미숙, 원미경, 이보희.

이미숙은 1978년 미스 롯데로 연예계에 데뷔하여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고래사냥>(1984), <뽕>(1986), <겨울 나그네>(1986) 등을 통해 톱스타에 오른다. 원미경은 이미숙과 같은 해 미스 롯데 1위에 입상하며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첫 주연작인 <청춘의 덫>(1979)으로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받고 그 이후로도 주요 신인상을 독차지할 만큼 연기력이 탁월했다. 이보희는 이장호 감독의 <바보 선언>(1984)으로 데뷔해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등으로 최고의 섹시 배우로 등극한다. 3세대 트로이카의 완성이다.   


1990년대
심은하, 고소영, 전도연
왼쪽부터 심은하, 고소영, 전도연.

90년대야말로 여배우들의 춘추전국시대다. 애써 트로이카를 규정하려는 시도가 무색할 만큼 매력적인 배우들의 전성시대였다. <씨네21> 1999년 여배우 트로이카로 심은하, 고소영, 전도연을 선정한 바 있다. 심은하는 청순가련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을 통해 배우로서 도약을 인정받기 시작할 때이고, 전도연은 <접속>(1997), <약속>(1998)을 연속으로 흥행시키며 관객을 흡입할 수 있는 연기력을 증명했다. 고소영은 영화 <비트>(1997),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 등에서 여신 같은 미모뿐 아니라 배역을 온전히 담는 배우로 거듭났다. 

최진실, 채시라, 김희애
왼쪽부터 최진실, 채시라, 김희애.

또 하나의 트로이카로 불리는 세 배우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CF 한 편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최진실과 초콜릿 광고를 비롯해 <여명의 눈동자>(1991), <서울의 달>(1994) 등으로 스타덤에 오른 채시라. 그리고 MC, DJ, 가수 등 연기 외에도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며 90년대를 풍미했던 김희애다.

그리고, 김희선

90년대 중후반 역대 최고의 미모로 각인된 김희선은 너무나 압도적인 인기 때문에 트로이카 파트너를 찾기 어려웠을까?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웨딩드레스>, <프로포즈>, <세상 끝까지>, <미스터 큐>, <안녕 내 사랑> 등 시청률 30%를 넘긴 작품이 무려 8편이나 됐다. 그 당시 김희선은 입거나 걸치기만 하면 모조리 불티나게 팔려나간 완판녀의 원조였다. 


2000년대 후반
손예진, 임수정, 이나영
왼쪽부터 손예진, 임수정, 이나영.

태혜지세 배우가 연기력 논란과 출연작의 흥행 부진으로 잠시 흔들릴 무렵 영화 제작자, 평론가, 마케터 등이 선택한 새로운 트로이카가 등장했다. 바로 손예진, 임수정, 이나영이다. 청순미의 대명사 격인 손예진은 <클래식>(2003),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뒤 <아내가 결혼했다>(2008)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배우로 등극한다. 임수정은 <장화, 홍련>(2003)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를 통해 흥행성도 인정받게 된다. 이후 임수정은 <각설탕>(2006),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행복>(2007) 등을 통해 연기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국적인 마스크의 신비한 이미지를 가진 이나영은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평가를 받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2002)에서부터 진가를 발휘한다. 이후 <아는 여자>(20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비몽>(2008)을 통해 상업성과 작품성을 아우르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2010년대
'태혜지'의 시대의 부활
부진을 털고 부활한 '태희혜교지현' 트로이카

잠시 뜸하던 ‘태혜지 시대가 부활하기 시작한다. 전지현은 <도둑들>(2012)를 통해 부진을 말끔히 털어낸 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 영화 <베를린>(2013), <암살>(2015)의 연속 성공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송혜교 역시 노희경 작가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로 연기력을 입증했고, 최근 <태양의 후예>(2016)의 대성공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김태희 또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2011),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 <용팔이>(2015)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 탄생할 트로이카는 누구?
왼쪽부터 천우희, 한예리, 김태리.

천우희, 한예리, 김태리가 있다. 주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영화 <써니>(2011)에서 본드를 흡입하고 유리 조각으로 위협을 가하는 상미 역을 맡으며 존재감을 각인시킨 천우희는 2014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20대 여배우 기근 현상을 해소한 비중 있는 배우가 되었다. 독립영화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한예리는 <코리아>(2012), <스파이>(2013), <해무>(2014) 등으로 점차 얼굴을 알리더니 <최악의 하루>(2016), <춘몽>(2016), 드라마 <청춘시대>(2016)로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뛰어난 연기 실력에 맑은 목소리까지 갖춰 더욱 매력적이다. 박찬욱 감독이 발굴한 김태리는 데뷔작 <아가씨>(2016)로 칸 레드카펫까지 밟은 행운아다. 하지만 단지 운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2016년 신인여우상들을 휩쓸며 단숨에 촉망받는 여배우로 등극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심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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