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봅니다. 에디터도 돈이 아주 많으면 이런 포스팅 쓰지 않고 집에 드러누워 씨네플레이가 추천해주는 뒹굴뒹굴VOD 목록 돌려보며 종일 뒹굴뒹굴하고 있었을까요? 괜스레 목에 힘도 들어가고, 의자 등받이에 점점 더 몸을 기대게 됩니다만, 현실에선 서둘러 의자를 당기며 데스크 눈치까지 살짝 보게 됩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직 더 많은가 봅니다. 여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배경보다는 열정과 실력으로 영화계 최고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도 실력"이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아니니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재미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레아 세이두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레아 세이두.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4)에서 코발트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등장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에디터도 예쁜 파란 머리에 반해 따라하고 싶었지만, 저렇게 예쁜 색을 만들려면 탈색과 염색을 반복해야 한다는 말에 탈모가 이미 진행 중인 에디터는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라붐>(1980), <레옹>(1994)을 제작한 곳이 바로 '고몽'입니다.

마리옹 꼬띠아르와 더불어 프랑스 대표 배우로 손꼽히는 레아 세이두는 그녀의 집안도 프랑스 안에서 꽤 손꼽힙니다.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로고에 익숙하실 텐데요. 바로 영화사 ‘고몽’입니다. ‘고몽’은 1895년 레옹 고몽이 창업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사입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로 제작한 세계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상영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1975년 이 영화사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운영 중인 니콜라스 세이두가 바로 레아 세이두의 증조할아버지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제롬 세이두는 프랑스 거대 미디어 그룹 ‘파테’의 회장이고, 아버지인 앙리 세이두는 드론과 블루투스 장비로 유명한 ‘패럿’의 대표라고 하네요.

레아 세이두의 아버지는 이런 것들을 만든다고 합니다.

틸다 스윈튼
<올란도>의 틸다 스윈튼.

<올란도>(1993)에서 늙지도 죽지도 않는 귀족 올란도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은 실제로도 귀족 출신이라고 합니다. 꼭 떨어지는 옷처럼 역할이 어쩜 그렇게 잘 맞나 싶었는데 기품 있는 모습은 몸에 배어있는 습관 같은 것이었군요.

스윈튼 가문의 문장 (대학교 로고 아닙니다).

틸다 스윈튼은 스코틀랜드의 가장 오래된 가문 중 하나인 스윈튼 가문의 일원입니다. 가문의 시작이 무려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 깊죠. 스코틀랜드 귀족 중에서 지금까지 굳건히 자신의 영지를 지켜낸 것은 아덴, 버클리, 스윈튼 가문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앤런 아치볼드 캠벨 스윈튼, 어떤 기술인지 설명해 드릴 수 없지만 TV드라마를 시청하게 해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스윈튼 가문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는데요. 현대 텔레비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아치볼드 캠벨 스윈튼은 브라운관을 통해 TV 이미지 신호를 뽑아내는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어니스트 던롭 스윈튼은 무한궤도를 사용한 장갑 전차(탱크) 개발을 제안한 인물이라고 하네요. 사실 여기까지는 전주 이씨인 제 친구가 "나한테 전하라고 해, 우리 집안 왕족이야~"라고 너스레떠는 것과 별다를 게 없다 느끼실 수 있겠습니다만, 틸다 스윈튼의 아버지 존 스윈튼은 육군 소장을 역임하고 왕실 작위까지 수여받은 장교이자 베릭셔 카운티 부지사를 맡은 전직 관료 출신이고, 증조부 조지 스윈튼은 스코틀랜드의 유력한 정치가였다고 하니 힘있는 집안이란 말은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루니 마라
<캐롤>의 루니 마라.

에디터는 <캐롤>(2015)을 보는 내내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미들 네임 어디엔가 그레이스 아니면 고져스라고 적혀있을 것 같고 엑스레이 사진마저 우아할 것 같은 케이트 블란쳇의 모습 때문이었죠. 하지만 <캐롤>을 보고 또 보다보니 관람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루니 마라인데요. 사랑이란 감정을 얼굴 표정의 미세한 반동과 공허한 눈빛으로 보여주는 기막힌 연기에 점점 더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사이드 이펙트> 스틸컷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의 주연으로 데이빗 핀처 감독에게 낙점되어 아카데미 후보까지 오른 이후, <사이드 이펙트>(2013), <그녀>(2013) 등을 거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더니, 결국 인생작 <캐롤>(2015)에 이르러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최근에도 <라이언>(2016), <로즈>(2017) 등 꾸준하게 스크린을 통해 그녀를 볼 수 있으니 대세 배우임은 증명된 셈이네요.

피츠버그 스틸러스(좌), 뉴욕 자이언츠(우), 각각 아메리칸 풋볼 리그와 내셔널 풋볼 리그의 명문팀입니다.

이런 그녀에게 또 하나 깜짝 놀랄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이름 앞뒤에 미식축구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루니 마라라는 이름은 각각 외가와 친가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외가 루니 집안은 슈퍼볼 최다 우승기록을 가진 아메리칸 풋볼 리그의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을 창립한 가문이고, 친가 마라 집안은 내셔널 풋볼 리그의 명문 뉴욕 자이언츠 구단주 가문입니다. 루니 마라의 외할아버지 아트 루니는 스틸러스 창립 당시 구단주고, 친할아버지 팀 마라는 자이언트 창립 당시 구단주입니다. 아버지 크리스 마라 또한 현재 자이언트 구단의 수석 부사장이니 가히 미식축구 가문이라 불릴 만하네요. 루니 마라는 인터뷰에서 "친가와 외가의 팀이 붙으면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는 질문에 "친가 쪽 자이언트를 응원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역대 슈퍼볼 우승 횟수가 3번인 자이언츠가 6번인 스틸러스에 비해 뒤져 있어 격려 차원이 아닐까요?

스틸러스 VS 자이언츠, 이 대결은 어쩌면 부부싸움 같은 것이다.

헬레나 본햄 카터
<전망 좋은 방>에 출연한 '최고동안' 헬레나 본햄 카터.

헬레나 본햄 카터가 세계적인 배우로 떠오른 것은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 ‘Oh! Mio Babbino Caro(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영화의 배경으로 흐르는 <전망 좋은 방>(1989)에서였습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이 신인 배우에게 주인공을 선뜻 맡겼고, 헬레나는 귀족 아가씨 특유의 오만함과 밉지 않은 투정들을 마치 도도하게 늘어뜨린 드레스 자락처럼 아름답게 연기했습니다. ‘영국의 장미’, ‘코르셋 퀸’으로 불릴 만큼 시대극 전문 배우로도 명성이 높았죠.    

푸치니의 오페라 한 곡 듣고 가시죠

하지만 그녀는 팀 버튼을 만나 <혹성탈출>(2001)에 출연하며 과감한 변신을 시도합니다. 이후 <빅 피쉬>(200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등 과감하고 파격적인 분장이 인상적인 강렬한 캐릭터들을 소화하며 청순함을 넘어 퇴폐의 극단까지도 보여줍니다.

<혹성탈출>, <빅 피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왼쪽부터)의 헬레나 본햄 카터. 최고동안은 어디로...

연기 변신만큼 놀랄만한 사실은 그녀의 화려한 집안 배경입니다. 아버지인 레이먼드 본햄 카터는 영국중앙은행과 IMF에서 일했던 금융가였고, 친할아버지인 모리스 본햄 카터 경은 자유당의 정치인이었으며, 친할머니 바이올렛 본햄 카터은 상원의원을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외가 쪽은 스페인 귀족 출신으로 외교관이던 외할아버지 에두아르도 프로퍼 드 카예혼은 2차 세계대전 때 수천명의 유대인을 구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자손들은 유대계 대부호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이라니 대단합니다.


메건 엘리슨
오라클의 창업주 래리 엘리슨, 딸 생일 용돈은 2억 달러쯤?

오라클이란 회사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실 IT업계에 종사하는 분이 아니면 낯선 회사일 수 있습니다. 이 회사가 어떤 곳인가 하면, 개인용 PC 소프트웨어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다면 오라클은 바로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거대한 회사입니다. 2016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부자 리스트에서 5위를 차지한 래리 엘리슨이 바로 이 회사의 창업자죠. 뜬금없이 왜 IT기업 이야기냐고요? 지금 소개하려는 영화제작자 메건 엘리슨이 바로 오라클 창업자의 딸이기 때문이죠.

메건 엘리슨.

메건 엘리슨은 1986년생으로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영화제작자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설립한 안나푸르나 픽처스가 제작한 영화들는 실로 엄청납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2012),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의<제로 다크 서티>(2012),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2013), 데이비드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2013), 베넷 밀러 감독의 <폭스캐처>(2014) 등이 그녀가 제작한 영화들인데요. 미국 영화의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작품들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네요. 그녀 덕분에 미국 독립영화의 기반은 더욱 넓고 견고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거침없는 투자의 힘은 25살 생일 선물로 아버지께 받은 2억 달러라는 든든한 밑천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의 키다리아가씨(?) 메건 앨리스의 영화들.

지금까지 대단한 집안 배경을 가진 할리우드 영화인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들이 멋진 배우나 제작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교육 환경과 넉넉한 부모의 지원 덕분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한 그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이들 말고도 명문가 출신 배우나 영화인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그럼 전 이만 퇴근하며 집에 가는 길에 로또 한 장 살까 합니다. 물론 역시나겠지만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심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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