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영화는 완성되기까지 참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흥행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고, 한 작품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작 소식을 툭 던지고 개발과정이 긴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는데요,
온다 온다 소식만 들리고 제작은 멀어진 영화들을 모아봤습니다.
할리우드의 일본 애니 사랑, 너무 먼 당신
얼마 전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이 개봉했습니다. 혹시 이 영화가 언제부터 기획됐는지 아시나요? 자그마치 2005년부터였습니다.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후 10년 만에 영화화 소식을 알리곤 실제 개봉까지 12년이나 걸린 셈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오래, 앞으로도 더 오래 걸릴 작품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전혀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1995년 TV 방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파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니까요.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오타쿠' 열풍을 일으킨 이 애니메이션은 2003년 원 제작사인 가이낙스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한다고 전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모았습니다. 어떻게 됐는지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ADV필름스가 판권을 구입해 '적어도 2015년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2013년경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판권을 구매했다는 뉴스가 나왔죠. 2014년에는 마이클 베이 감독이 실사화를 담당한다는 최악의 루머가 돌기도 했고요. 하지만 현재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제작사인 스튜디오 카라가 완결편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하니 설령 실사화가 돼도 훨씬 후에 가능성이 있겠네요.
확실히 할리우드는 일본의 SF 애니메이션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아키라>도 진작 실사화에 낙점됐거든요. 하지만 역시 결과는 지금까지도 윤곽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2008년부터 실사화 논의가 되던 중 2015년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3부작으로 기획 중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등의 루머 속에서 "각본 작업 중"이라고 못박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겟 아웃>의 조던 필레 감독이 물망에 올랐다고 하니, 조금만 더 참아봐야겠죠?
데즈카 오사무의 전무후무 캐릭터 '아톰'도 실사화를 준비 중입니다. 사실 2015년에 실사화가 결정됐으니 이 목록에 올리기에 성급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할리우드 전적을 보면 쉽게 제작될 것 같진 않죠. 2016년에 안드레 파브리지오와 제레메 패스모어 콤비에게 각본 작업을 맡겼다고 보도됐는데요, <샌 안드레아스> 각본 콤비라니 어쩐지 실사화 아톰도 평범한 블록버스터가 되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도 하게 되네요.
돌아오지 못한 속편의 강
이번엔 팬들의 기다림에도 답하지 못하게 된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제일 먼저 아쉬운 건 <헬보이 3>입니다. 에디터가 이 기사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은 다음날, 불행인지 다행인지 리부트가 발표됐습니다. 하지만 팬들이라면 2편에서 던진 '떡밥'의 수거도 없이 리부트로 돌아오는 건 내심 찜찜할 수밖에요.
2008년 2편 이후 길예르모 델 토로는 제작비 대비 흥행이 되지 않아 속편 제작이 어려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헬보이 3'라는 문장과 'YES' 'Hell, yes'라는 항목으로 투표를 실시 10만 표 이상 모이면 원작자인 마이크 미뇰라와 논의해보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13만 2938표를 모았죠. 그러나 결국 제작이 어렵다는 소식을 트위터로 알려 팬들의 눈물을 쏙 빼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아쉬운 속편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입니다. 3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연출력 끝내주는 감독, 빵빵한 출연진이 있으니 당연히 속편이 나올 것이라 팬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이 역시 2015년 속편이 나오지만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될 거라고 선언했습니다.
속편은 3부작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아닌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집필한 4부 ‘거미줄에 걸린 여자’를 각색할 예정이고, 감독도, 출연진도 모두 바뀐다고 합니다. 돌아와요, 루리 마라의 리스베트. 그나마 다행이라면 <맨 인 더 다크>로 스릴러 연출의 끝을 보여준 페데 알바레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라는군요.
후속편이 흐지부지되면서 드라마로 돌아온 경우도 있습니다. 2005년 개봉했던 <콘스탄틴>은 특유의 쿨한 감성으로 팬들을 모았는데요, 2007년에 속편 제작이 확정된 바 있습니다. 당시 1편의 감독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도 다시 메가폰을 잡고 주연인 키아누 리브스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 했지만 이후 소식이 거의 없었죠.
그러다 2014년 NBC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후속편 제작은 무산된 셈입니다. 이렇게 제작된 드라마도 시즌 1 이후 후속 시즌 제작 예정이 없다고 발표했다가 제작한다고 변경했지만 지금까지 제작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참 운이 없는 시리즈인 거 같네요.
<이블 데드 4>의 경우는 아예 방향을 드라마로 전환한 경우입니다. 3부작의 감독인 샘 레이미가 2008년 4편을 제작한다고 밝혔는데요, 2013년에는 <이블 데드 4>가 각본 작업 중이고 오히려 리메이크(라고 페이크 친 리부트) <이블 데드>만 공개됐습니다.
이후 Starz에서 드라마 '애쉬 vs 이블 데드'를 제작 방영했고 샘 레이미도 시즌 1에서 1편 연출과 총괄 제작으로 이름을 올렸으니 드라마로 명맥을 이었다고 봐야겠습니다. 샘 레이미가 2013년 원더콘에서 밝히길 자신이 만든 4편과 페데 알바레즈의 <이블 데드> 2편을 제작하고 두 시리즈의 주인공이 만나는 7편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는데 팬들에게는 아쉬움 반, 기쁨 반일 겁니다.
기대작이라 못 돌아오나, 리메이크와 영화화
원작이 있으면 팬이 있고, 그러니 흥행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몇몇 명작들은 리메이크, 영화화 소식 이후 흐지부지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공동경비구역 JSA>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인 이 영화는 2005년에 데이비드 프란조니가 리메이크 판권을 사 갔습니다. 개봉 이후 전 세계 순익의 5%도 계약 조건에 있었다는데요, 정작 개봉은커녕 리메이크 진행 소식도 들려오지 않아 어느새 묻히고 말았습니다. 첫 기획안으로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배경이었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장벽을 세운다면 혹시….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저스틴 린, <28주 후>의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 <헌츠맨: 윈터스 워>의 세딕 니콜라스 트로얀. 그리고 라이언 레이놀즈까지. 이들이 거쳐간 리메이크 프로젝트, 짐작이 가시나요? 바로 <하이랜더>입니다. 1986년 1편 이후 영화로도 5편(흑역사도 있지만요), 스핀 오프 애니메이션, TV 드라마로도 6시즌, 심지어 일본에서 만든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 나온 이 시리즈는 2009년부터 꾸준히 리메이크 소식을 전했는데요, 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더뎌 점차 잊혀졌지요. 하지만 2016년 11월에 '존 윅' 시리즈의 공동 연출 중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연출로 결정돼 다시 불씨를 피우고 있네요.
SF 작가라면 빠질 수 없는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그의 작품이라면 또 빠질 수 없는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2008년에 영화화 소식을 알린 적 있습니다. SF 소설 팬들은 영화화에 환호했다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는 말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었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재난극에는 일인자이지만 '파운데이션'은 보다 심리와 역사 요소가 더 많았으니까요. 당시엔 3부작 제작에 3D 촬영이란 초강수를 내렸지만 이후 2011년에 각본 재수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죠. 2014년에는 HBO가 <인터스텔라> 각본가인 조나단 놀란(그분 동생 맞습니다)을 필두로 드라마 제작을 발표해 영화화가 무산되는 모양새였는데요, 정작 이 드라마도 소개 사이트가 없어지고 조나단 놀란이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을 맡은 걸로 보아 연기된 느낌입니다.
많은 '게임 영화화' 소식에서도 유독 '밀당' 중인 '바이오쇼크'입니다. 2007년 발매돼 호평을 받았던 이 게임은 2008년부터 영화화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성공한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수장이었는데요, 하지만 수중 도시라는 배경부터 신체 개조 같은 다소 자극적인 요소, PG-13(13세 미만 부적합 등급)을 원한 제작사와 R등급(17세 미만 제한 등급)을 원한 감독 간의 의견차 등의 문제로 영화화가 취소됐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라면 이번 기획에 실지 않았겠죠? 2014년 소니 픽쳐스가 '바이오쇼크' 관련 도메인을 구입했고, <더 큐어> 개봉 직후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레딧'에서 아직 개발 중이며 R등급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변을 남겨 한줄기 희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말하길 <데드풀>의 흥행이 R등급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네요.
한국의 '감감무소식' 프로젝트들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들이 있는데요, 애니메이션 <개미>가 가장 적합해 보이네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데뷔작 '개미'를 <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이 영화화한다고 2009년에 발표했습니다. 초창기엔 한불 합작으로 진행되다 이후 한국에서 영화화 판권을 사서 진행했습니다.
2012년에는 포스터와 컨셉아트도 공개하며 '2014년 개봉'을 못 박았지만 지금은 개봉은 둘째치고 제작 소식까지 뚝 끊기고 말았네요. 공개했던 정보대로면 여타 애니메이션과 달리 개미를 의인화하지도 않고 더듬이로 소통하는 모습을 묘사하겠다 했는데, 새삼 궁금하긴 하네요.
웹툰계의 슈퍼스타 하일권 작가의 작품들도 영화화 소식을 전하곤 했습니다. 2012년에는 '목욕의 신'이 영화화될 것이고 주연은 김영광으로 낙점됐는데요. 2015년 개봉 예정이지만 지금도 소식이 없는 걸 보면…. 결국엔 제작사 측에서 주연 자리도, 연출 자리도 모두 공석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나온다고 해도 목욕탕의 모습을 그린 영화니 여러 논란을 피하기도 쉽지 않을 거 같네요. '3단합체 김창남'은 2009년에 영국 페브러리 필름즈에서 판권을 구매해갔는데요, 역시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 않네요.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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