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거 뭐 없어요?”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이야기다. 그 당시 홍콩 누아르 영화의 인기는 상당했다. 네 글자 제목의 신작 홍콩영화라면 예약을 걸기도 했다. 물론 극장 앞에도 관객들이 줄을 길게 섰다.
홍콩 누아르의 인기는 아마도 <영웅본색>(1986)에서 시작된 것 같다. 그 당시 우리들의 영웅은 주윤발이었다. 검은 선글라스와 입에 문 성냥개비, 바바리 코트, 쌍권총이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아, 불타는 위조지폐로 담뱃불을 붙이는 모습도 빼먹으면 안 된다. 당시 청소년들은 그를 윤발이 형님, 따거(大哥)로 불렀다.
5월18일 주윤발의 생일을 맞아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1955년생인 그는 이미 환갑이 지났다.
가난한 어린 시절
주윤발은 홍콩 라마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중퇴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친구의 권유로 1972년 연극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에 출연한 <상해탄>이라는 드라마로 입지를 다졌다. 1988년에 가수로도 데뷔했다.
오우삼 감독과 만나다
<영웅본색>을 준비하던 오우삼 감독은 신문에서 소년 소녀 가장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주윤발의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 그를 만나기로 했다. 주윤발을 만난 오우삼 감독은 그를 “따뜻한 마음씨와 의협과 기사도의 풍모가 느껴지는 사람”이라 평하면서 <영웅본색>에 캐스팅했다. 오우삼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영웅본색> 이후 주윤발은 홍콩을 넘어 아시아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일단 출연 계약부터 합시다
<영웅본색> 이후 주윤발은 엄청나게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1986년 11편, 1987년 11편, 1988년에는 무려 16편의 영화에 모습을 보였다. 아침, 점심, 저녁 다른 영화을 촬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홍콩영화계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 주윤발 캐스팅부터 했다.
사랑해요 밀키스
아직도 주윤발의 음료 광고 카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주윤발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로드쇼> 등 영화잡지들은 주윤발을 비롯한 홍콩배우 아니면 할리우드 배우를 표지 모델로 내세웠다. 당시 잡지들은 컬러 지면과 흑백 지면으로 나누기도 했는데, 주윤발이라면 당연히 컬러 지면이었다. <유머 1번지> 같은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다.
할리우드 진출, 성공과 실패
<영웅본색> 3부작, <첩혈쌍웅>, <도신 - 정전자>, <흑사회>, <종횡사해> 등 히트작에 출연한 주윤발은 1998년 할리우드로 발길을 돌렸다. <영웅본색>의 오우삼 감독의 부름을 받고 <리플레이먼스 킬러>에 출연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다음해 출연한 <커럽터>, <애나 앤드 킹>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개봉한 <방탄승> 역시 혹평을 들어야 했다.
<와호장룡>(2000)은 달랐다. 이안 감독의 이 영화에서 주윤발은 무당파의 마지막 무사, 리무바이를 연기했다. 주윤발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2007)가 아닐까 싶다. 그는 싱가포르의 해적 영주 사오펭 선장을 연기했다. <드레곤볼 에볼루션>(2009)에서 주윤발은 무천도사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다시 홍콩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홍콩과 미국을 오가던 주윤발은 2010년 이후 미국행을 줄였다. 최근에는 거의 홍콩, 중국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2010년 <공자춘추전국시대>의 공자, 2012년 <조조: 황제의 반란>의 조조(주윤발은 삼국시대 오나라 군사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를 연기했다. 시대극 이외에도 <주윤발의 도성풍운>이라는 도박 영화가 2014년 국내 개봉했다. ‘도신의 귀환’이라는 카피를 내세웠다. 이 시리즈는 3편까지 이어졌다.
2014년 <몽키킹: 손오공의 탄생>에서는 옥황상제를 연기했다. 1980~90년대 홍콩 누아르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콜드워>의 속편 <코드네임: 콜드워>(2016)에서는 변호사 오스왈드 역을 맡았다.
지하철 타는 따거
최근 ‘주윤발 지하철 사진’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대락 2천여 억원의 재산이 있는 그가 지하철을 타는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자가용도 없다고 한다. 주윤발은 재산의 99%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4년에는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주윤발과 함께 친시위대 발언을 한 유덕화, 양조위 등에게 중국 본토 활동 금지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따거’ 주윤발은 “그럼 돈을 조금 덜 벌면 그만”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