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개봉한 <대립군>에서 이정재는 토우 역을 맡았다. 그동안 배우 이정재의 특징이었던 깔끔하고 기품이 느껴지던 외형적 특색은 모두 사라진 채, 오히려 산전수전 다 겪은 모습으로 동료들을 살뜰히 아끼고 심지어 광해(여진구)의 정신까지 성장시키는 천민으로 변신했다.

- 대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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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윤철
출연 이정재, 여진구, 김무열
개봉 2017 대한민국
사실 외모는 배우에게 무기이자 족쇄이다. 쉽게 주목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정된 배역에 매몰되기 쉽다. 출발이 쉬울지언정 한계도 금방 다가올 수 있다. 이 배우도 그랬다. '청춘스타'라는 말이 늘 따라붙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는 현재 '승승장구'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이정재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이정재, 백재희, 그리고 멜로
'이정재의 대표작은?'이라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 1990년대(<모래시계>·<태양은 없다>·<시월애>)나 혹은 2010년대(<신세계>·<도둑들>·<관상>),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멜로의 성격이 강한 작품과 장르적 색채가 진한 작품이 이정재란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속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달라진 작품폭을 알 수 있다.

-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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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종학
출연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 이정재
개봉 1995 대한민국
이정재는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후 1994년 <젊은 남자>와 드라마 <모래시계>로 단번에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모래시계> 백재희 역은 이정재의 연기가 미숙해서 과묵한 캐릭터가 된 것이 역으로 '신의 한수'가 됐다. 반대로 이 일화는 당시 이정재가 연기력이 '열일'하는 배우는 아니었음을 말한다. 하지만 그의 외모와 눈빛은 요즘말로 '서브남 열풍'을 일으켰고, 이정재는 폭발적인 반응을 감당하지 못해 "제 연기가 너무 싫어서 군에 자원입대"하기까지 했다.

- 태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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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이정재
개봉 1998 대한민국
제대한 후에도 스스로 배우가 맞는 길인지 의심하던 차에 '영혼의 파트너'를 만났다. <비트>의 정우성과 <모래시계> 이정재가 만난 <태양은 없다>는 이정재에게 "처음으로 일이 재밌구나 생각했다"는 현장이 됐고, 27살인 그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최연소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하지만 남우주연상이란 수상에도 사람들은 이정재의 가능성을 포착하기보다 '변재희'의 아우라를 찾았다. 2000년대 초까지, 다작에도 멜로 영화가 대다수인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2000년대는 이정재가 '변화'에 초점을 맞췄던 시기로 볼 수 있다. <흑수선>, <오! 브라더스>로 장르물에 도전하며 연기 폭을 넓혀나가려 했다. 하지만 정우성과 함께 패션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고 하필 당시 최대 제작비로 기대를 모은 <태풍>이 '삐끗'하더니 3년 만에 출연한 <1724 기방난동사건>도 실패하고 만다. 여기서 이정재의 커리어가 멈췄다면, 역시 멜로를 계속했어야 했는데, 회상하겠지만 다행히 2010년 <하녀>를 시작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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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곽경택
출연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 김갑수
개봉 2005 대한민국
멜로 1인자에서 다양한 캐릭터 1인자로
적은 분량, 비호감적인 캐릭터, 그래도 임상수 감독이란 이름만 믿고 들어갔던 <하녀>는 이정재의 필모그래피에서 하나의 기점이 됐다. <관상>의 한재림 감독도 "태어날 때부터 기품이 있는 그런 역할이 어울리는 배우로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하녀>를 본 후 이정재를 캐스팅하겠노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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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임상수
출연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서우
개봉 2010 대한민국
<하녀> 이후 그가 출연한 작품은 <도둑들>, <신세계>, <관상>, <빅매치>, <암살>, <인천상륙작전>, <대역전>, <대립군>이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이며(물론 함정도 있다) 그의 연기력을 입증할 만큼 폭넓은 캐릭터 소화력과 남다른 아우라를 선사했다.

-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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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김혜수
개봉 2013 대한민국

-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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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훈정
출연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개봉 2012 대한민국
특히 2010년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과감한 선택이다. 최동훈 감독과 함께한 첫 작품 <도둑들>에서 이정재는 뽀빠이 역을 맡았다. 팀의 리더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에도 이미 배신을 했던 전적이 있는 비열한 캐릭터인데, 이는 <암살>의 염석진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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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동훈
출연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임달화, 김해숙, 오달수, 김수현, 이신제, 증국상
개봉 2012 대한민국
염석진 역시 독립군의 대장이지만 실제로는 스파이인, 이중성을 가진 인물이다. 이처럼 같은 감독의 작품에서 유사한 포지션의 인물을 맡은 건 다소 의아한 선택이었지만 그 유사함을 뛰어넘은 연기로 그의 깊어진 연기력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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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개봉 2015 대한민국
두 번째는 성향이 극과 극인 작품을 연이어 출연한 것이다. <암살>과 <인천상륙작전>이 그것이다. <암살>이 친일세력들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은유적으로 비판했다고 하면, <인천상륙작전>은 6.25 한국전쟁을 그리는 데 있어 과거 '반공영화'의 클리셰로 접근했으며, '블랙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전형적인 '애국심 고취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연급 배우 중 이렇게 성향이 다른 작품에 출연한 다른 배우로는 진구(<26년>, <연평해전>)도 있다.

-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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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재한
출연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 진세연
개봉 2016 대한민국
이정재가 작품 선택을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을 비춰보면 작품 그 자체보다 그가 연기할 캐릭터에 보다 집중했다고 짐작할 만하다. 상업영화의 틀에서도 시대극과 장르물을 넘나들며 수다스러운 인물(<도둑들> '뽀빠이')부터 속으로 고뇌를 삼켜야 하는 인물(<신세계> '이자성')까지 두루 소화했다. 악착같은 다이어트로 자신의 외형을 변형시키고(<암살> '염석진'), 영화의 연출에 힘입어 아우라를 발산할 줄 아는(<관상> '수양대군') 영민한 배우임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배우이자 대표로, '아티스트 컴퍼니'
지금까지도 변화무쌍한 이정재, 여전히 그의 행보를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절친'이자 파트너인 정우성과 함께 설립한 아티스트 컴퍼니로 자리를 옮긴 이정재는 이제 배우이자 대표다. 아티스트 컴퍼니는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이정재),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정우성)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합심으로 탄생했다.
이정재가 이전에 몸담았던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역시 소속 배우 라인업이 탄탄하고 대체로 활동 범위가 넓었던 회사지만, 배우가 직접 대표직을 겸하는 만큼 남다른 매니지먼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설립 1년 만에 하정우, 염정아, 고아라, 김의성, 배성우, 신정근, 정원중 등 베테랑 배우와 이솜, 손민호, 남지현, 민무제, 장우혁, 차래형 등 주목받는 배우 라인업을 모두 갖췄다.
본인이 대표라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진 않겠지만(물론 아닐 수도 있겠다), 적어도 매니지먼트사의 소속원일 때보다는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졌을 것이다. 그가 2010년대 선택했던 작품들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 <신과함께>, <도청(가제)>으로 이어질 연기활동도 당연히 기대할 수밖에 없다. '수양대군'에 이어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줄 염라대왕과 <도청>으로 "오랜만에 생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이정재의 연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도청(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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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동훈
출연 이정재, 김우빈, 김의성, 염정아
개봉 2017 대한민국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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