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은 안젤리나 졸리의 생일입니다. 지금은 브란젤리나 커플·입양·자선활동 등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녀는 한때 할리우드의 문제아로 불렸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유년 시절 거친 반항기부터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가 되기까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되짚어보았습니다. 바로 확인해볼까요?


#배우 부모님
존 보이트와 마르셀린 버트란드

그녀의 부모님은 모두 배우입니다. 아버지는 존 보이트, 어머니는 마르셀린 버트란드죠. 하지만 존 보이트의 불륜으로 두 사람은 졸리가 한 살 되던 해 이혼합니다.

마르셀린 버트란드와 어린 시절 안젤리나 졸리

이혼 후 안젤리나 졸리와 그의 오빠 제임스 헤이븐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존 보이트는 아무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졸리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커지게 되었죠. 그리고 2002년 아버지의 성 '보이트'를 법적으로 삭제하게 됩니다.

마르셀린 버트란드, 존 보이트와 함께 있는 안젤리나 졸리

이후 영화 <툼 레이더>에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하며 사이가 좋아지나 했지만, 존 보이트가 "딸의 정신 상태가 이상한 것 같다"고 발언하며 졸리를 정신이상자로 몰았고 둘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6년간 연락을 두절한 채 지내던 두 사람은 마르셀린이 난소암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화해하게 됩니다.

#불우했던 청소년기

어린 시절 겪은 부모님의 이혼과 좋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소외감을 느끼던 그녀는 안경과 교정기를 착용한 외모로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며 우울증을 겪게 됩니다. 이 어두운 시기는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이어졌죠. 또한 항상 칼을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기도 했으며, 자살시도도 여러 번 했다고 하는데요. 최초의 자살시도는 무려 13살 때라고..! 20살이 되면서부터는 마약을 시작했는데 헤로인을 포함한 할 수 있는 모든 마약을 접하려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이로 인해 약물중독까지 겪게 됩니다.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헤이븐

뿐만 아니라 그녀는 친오빠 제임스와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이며 근친상간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요. 당시 그녀는 오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는데.. 네, 그랬습니다.

#원래 꿈은 장의사?

그녀는 12살에 연기 학교에 들어가 배우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년 만에 중퇴했고, 그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본 후 장의사가 되길 꿈꿨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녀는 14살 때 독학으로 시체 방부처리법을 공부해 장의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하지만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연기 학교로 돌아갔고, 16살 때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하게 되죠.

#두 번의 이혼
안젤리나 졸리와 제니 시미즈

안젤리나 졸리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을 하기 전, 일본계 배우이자 모델인 제니 시미즈와 공개연애를 했죠. 그녀의 첫 동성연애 상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제니 시미즈와 결혼했을 것이다. 두 번째 그녀와 만난 뒤 사랑에 빠졌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리 밀러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1996년 영화 <해커스>에서 만난 조니 리 밀러였습니다. 이때도 여러 기행을 일삼았던 안젤리나 졸리는 결혼도 평범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 대신 검정 가죽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이 셔츠에 자신의 피로 밀러의 이름을 썼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피로 맹세한 사랑도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1999년 이혼하게 되죠.

안젤리나 졸리와 빌리 밥 손튼

그리고 2000년에 빌리 밥 손튼과 재혼합니다. 20살의 나이 차이로 당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나이 차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두 사람이 서로의 피가 담긴 목걸이를 나눠 가졌다는 사실..! 또한 서로의 이름을 몸에 문신으로 새기기도 했는데요. 이 사랑 또한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2003년에 이혼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여담으로 빌리 밥 손튼의 이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여섯 아이들(매덕스, 팍스, 자하라, 샤일로, 비비엔, 녹스)의 이름과 브래드 피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액션 배우
<툼 레이더>

어린 시절부터 연기 활동을 해온 그녀였지만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바로 2001년 영화 <툼 레이더>에서 라라 크로프트 역할을 맡으면서 시작됐죠. 영화 자체의 평은 좋지 않았지만, 원작 게임 속 주인공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며 그녀는 일약 여성 액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원티드> <솔트> <투어리스트> 등 액션 영화를 통해 확실하게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하죠!

#매덕스
안젤리나 졸리와 매덕스

<툼 레이더>는 그녀에게 있어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먼저 위에서 언급했듯 라라 크로프트를 연기하며 액션배우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툼 레이더> 촬영으로 간 캄보디아에서 매덕스를 만났기 때문인데요. 매덕스를 만나며 그녀의 인생은 180도 달라집니다.

안젤리나 졸리와 매덕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매덕스가 자신의 가족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졸리는 캄보디아의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거쳐 입양에 성공하게 됩니다. 악동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안젤리나 졸리의 입양에 언론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당시 남편이었던 빌리 밥 손튼 또한 입양에 크게 반대했다고 하죠. 둘이 이혼하게 된 이유 또한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싱글맘이 된 졸리는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매덕스를 입양한 이후 인권과 세계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죠.

#브란젤리나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2004년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만난 브래드 피트와 사랑에 빠진 졸리. (당시 제니퍼 애니스톤과 부부였던 브래드 피트 때문에 말이 많았지만.. 어쨌든!) 피트는 졸리에게 계속해서 청혼해왔지만, 졸리는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기 전까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그러던 지난 2013년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며 두 사람은 2014년 아이들이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졸리가 피트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자선활동

익히 알려져 있듯 졸리는 왕성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글로벌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국제적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UN국제시민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으며, 수많은 국제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또한 현재까지 유니세프에 개인이 낸 가장 큰 금액을 기부했고, 10여 년간 자비로 캄보디아, 시에라리온, 탄자니아, 파키스탄 등 30여 개국의 난민 캠프를 방문해 국제적 원조를 받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그녀의 선행활동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 마무리-!


할리우드의 악동에서 선행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그녀의 굴곡진 인생사 잘 보셨나요? 그녀는 지난 2014년 돌연 연기 은퇴 선언을 한 적 있는데요. 실제로 은퇴 선언 이후 브래드 피트와 함께 작업한 <바이 더 씨>를 제외한 다른 작품에서는 모두 목소리 출연·연출·제작으로만 참여했죠. 하지만 영화 <말레피센트 2>로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스크린에서 자주 볼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안녕~


씨네플레이 에디터 박지민
 
재밌으셨나요? 아래 배너를 눌러 네이버영화를 설정하면 영화 이야기, 시사회 이벤트 등이 가득한 손바닥 영화 매거진을 구독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