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은 니콜 키드먼의 50번째 생일이다. 그녀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쉴새없이 작품을 내놓은 바지런함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캐릭터로 누구보다 건강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가고 있다. 키드먼의 생일을 축하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왕성한 작업량을 자랑하는 그녀의 지난 34년간의 활약상을 정리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천상의 별'
니콜 키드먼은 호주, 미국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호주인인 부모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지낼 당시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와이 이름은 '호쿨라니'(Hōkūlani), '천상의 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녀가 4살 때 가족은 다시 호주로 돌아와 훗날 할리우드에 진출할 때까지 거기서 쭉 자랐다.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웠던 키드먼은 일찌감치 연기에 대한 재능을 드러냈고, 시드니의 극단 필립 스트리트 씨어터에서 연기 공부를 시작했다.
열여섯, 세상에 등장하다
<부시 크리스마스>, <BMX 밴디츠>
1983년 16살에 데뷔해 영화 <부시 크리스마스>와 <BMX밴디츠> 등에 출연해 10대 배우 특유의 귀여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이후 액션, 로맨틱코미디, 전쟁물 등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면서 커리어를 단단히 했다. 배우로서 전환점이 된 작품은 샘 닐, 빌리 제인과 함께한 <죽음의 항해>(1989). 아들을 잃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남편과 함께 요트 여행을 떠났다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위협 당하는 레이 역을 맡아 로맨스, 공포, 에로스가 공존하는 영화의 분위기를 능란하게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죽음의 항해>
할리우드 진출
<죽음의 항해>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키드먼은 1990년 레이싱 영화 <폭풍의 질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탑건>, <레인맨>, <7월 4일생>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이미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톰 크루즈가 키드먼의 캐스팅을 적극적으로 도모했다고 한다. <폭풍의 질주>는 <탑건>에 이어 주연 톰 크루즈, 제작 제리 브룩하이머, 연출 토니 스콧 3인방이 다시 뭉친 야심작이었는데, 흥행이나 비평면에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었다. 키드먼은 주인공 콜의 연인인 의사 클레어 역을 맡았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한 게 사실. 키드먼과 크루즈가 처음 만난 작품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
20세기 최고의 로맨스
1990년 6월 <폭풍의 질주>가 개봉했고, 키드먼과 크루즈는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자벨라와 코너를 입양한 두 사람은 영국 식민 지배 시기의 아일랜드 배경으로 한 영화 <파 앤 어웨이>(1992)에서 다시 커플을 연기하며 대중과 평단을 고른 지지를 받으면서 1990년대 최고의 할리우드 커플로 군림했다. 1999년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권태기를 맞은 부부를 연기해 화제를 모았고, 2년 후 이혼을 발표했다.
<파 앤 어웨이>, <아이즈 와이드 셧>
1995년, 첫 번째 전성기
<투 다이 포>
준수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키드먼에게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은 낯설게만 들렸다. 하지만 90년대 초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파멜라 스마트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투 다이 포>(1995)에서 키드먼은, 성공에 대한 야심으로 가득찬 뉴스앵커 수잔으로 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연기를 실감나게 선보였다.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플롯에 기대지 않는 독특한 연출을 선보이는 영화였지만 키드먼의 캐릭터 표현만으로도 수많은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5년엔 현재까지 키드먼의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 있는 <배트맨 포에버>에서 히로인 닥터 체이스 메레디안 역으로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첫 번째 전성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배트맨 포에버>
노래까지 잘하는 Ms. Kidman
데뷔 이래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키드먼은 1999년 <아이즈 와이드 셧> 이후 잠시 휴지기를 갖고, 2001년 <물랑루즈>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공포/스릴러에도 두각을 보이던 키드먼은 <물랑루즈>에서 뮤지컬과 로맨스 모두 뛰어난 재능을 선보이면서 영화와 자신의 커리어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영화 곳곳에서 키드먼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해 말엔 로비 윌리엄스와 듀엣곡 'Somethin' Stupid'를 발표해 영국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다.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2006)와 롭 마셜의 뮤지컬 <나인>(2009)에서도 그녀의 노래 솜씨를 만날 수 있다.
Robbie Williams and Nicole Kidman - Somethin' Stupid
데뷔 20년 만에 오스카를 차지하다
뮤지컬 <물랑루즈>와 호러 <디 아더스>(2001), 스릴러 <버스데이 걸>(2001)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키드먼은 세 시대에 걸쳐 여성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 <디 아워스>(2002)에서 저명한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했다. 언뜻 보면 전혀 그녀라고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뚜렷한 분장을 더해 울프의 마지막 순간을 구현한 키드먼의 호연은 메릴 스트립과 줄리안 무어라는 대배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났다. <물랑루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키드먼은 바로 다음해 <디 아워스>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200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니콜 키드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종횡무진
<도그빌>
오스카 수상 이후 키드먼의 필모그래피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덴마크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2003)에 출연해 감독의 연극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프레임을 활보한 게 그 시작. 이후 안소니 밍겔라의 전쟁 드라마 <콜드 마운틴>(2003), 자신을 죽은 남편이라고 말하는 10살짜리 꼬마를 만나는 미망인으로 분한 <탄생>(2004), 시드니 폴락의 정치 스릴러 <인터프리터>(2005),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로 분한 <퍼>(2006), <물랑루즈>의 바즈 루어만과 다시 뭉친 시대극 <오스트레일리아>(2008), 대니얼 데이 루이스, 마리옹 꼬띠아르, 페넬로페 크루즈와 협연한 뮤지컬 <나인>(2009) 등 여러 장르, 감독의 작품을 거치며 키드먼만의 인장을 짙게 새겼다.
<콜드 마운틴>
<탄생>
<퍼>
<나인>
프로듀서와 배우의 이중생활
<래빗 홀>
제인 캠피온 감독, 멕 라이언 주연의 <인 더 컷>(2003)으로 처음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키드먼은 2010년 '블러썸 필름'을 설립해 프로듀서로서 본격적인 출사표를 내밀었다. 첫 작품은 <헤드윅>(2001)으로 주목받은 존 카메론 미첼이 연출한 <래빗 홀>(2010). 극작가 데이빗 린제이 에이베이어의 연극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직접 출연까지 맡아 아론 에크하트와 함께 아들을 잃은 부부가 상처를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그렸다. 셀레나 고메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몬테 카를로>(2010)와 제이슨 베이트먼이 연출하고 연기도 맡은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2015)을 제작하는 사이, 키드먼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준 <페이퍼보이: 사형수의 편지>(2012), HBO 드라마 <헤밍웨이 & 겔혼>(2012),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3) 등에 출연해 이전보다는 규모가 작은 영화들이지만 유의미한 작품들을 꾸준히 작업했다.
<페이퍼보이>
<스토커>
4편의 신작이 칸 영화제에 동시 초청되다
<매혹당한 사람들>
올해 칸 영화제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니콜 키드먼의 신작 4편이 모두 영화제에 초청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과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킬링 오브 세이크리드 디어> 두 작품이 경쟁부문에 진출해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예상이 쏟아졌다. <래빗 홀>에 이어 다시 작업한 존 카메론 미첼의 신작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 <여인의 초상>을 함께한 바 있는 제인 캠피온이 연출한 TV 시리즈 <탑 오브 더 레이크>는 비경쟁부문으로 상영됐다. 아쉽게도 여우주연상은 다이앤 크루거에게 돌아갔지만, 니콜 키드먼의 새로운 전성기가 오고 있음을 모두가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 <탑 오브 더 레이크>
제임스 완과 <아쿠아맨>
왕년의 인기배우들이 히어로물에 조연으로 참여하며 건재함을 증명하는 건 요즘 영화계의 트렌드 중 하나다. 공포, 액션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수려한 연출력을 자랑하는 제임스 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DC의 <아쿠아맨>에는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다. <배트맨 포에버> 이후 오랜만에 DC와 연을 맺게 됐다. 주인공 아쿠아맨의 어머니이자 아틀란티스의 여왕이었던 아틀라나 역을 맡는다.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지만, 화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인간계에 머물러 있던 키드먼의 캐릭터들을 생각해본다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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