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G. 아빌드센 감독이 별세했다는 뉴스를 봤다. 미국 LA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사인은 지병인 췌장암이다. 향년 81세.
솔직히 이 감독의 이름만 듣고는 어떤 영화를 연출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언론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던 터라 관련 기사의 제목은 거의 대부분 “<록키> 아빌드센 감독 별세” 이런 식이었다.
아빌드센 감독은 몰라도 <록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빌드센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록키>가 가장 빛나는 작품이다. <록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을 수상했다. 또 남우주연상(실베스터 스탤론), 여우주연상(탈리아 샤이어), 2명의 남우조연상(버트 영, 버지스 메러디스), 각본상(실베스터 스탤론), 음향상, 주제가상(빌 콘티의 ‘Gonna Fly Now’)의 후보에도 올랐다.
아빌드센 감독의 죽음을 기리며 <록키> 시리즈를 돌아보려 한다. <록키> 1편만 얘기하기는 섭섭한 마음이 있다.
록키 (1976)
<록키>는 인생역전의 드라마다. ‘이탈리안 종마’라는 별명의 가난한 무명 복서 록키 발보아가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칼 웨더스)와 맞서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무명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작품이다.
<록키>의 각본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썼다. (개인적으로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조금 놀라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록키>의 각본을 좋아했다. 문제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과 감독을 모두 하겠다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스튜디오는 무명 배우를 믿지 못했다. 결국 당시 B급 영화를 주로 연출했지만 참신한 아이디어의 소유자였던 아빌드센 감독을 기용했다. 주연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맡았다. 여기엔 대가가 필요했다. 스튜디오는 제작비를 100만 달러로 제한했다.
저예산임에도 영화는 크게 흥행했다. 많은 이들이 <록키>를 “베트남전쟁 패배 등 혼란스러웠던 당시 미국인에게 큰 희망을 준 작품”으로 평가한다. 국내에서도 <록키>는 화제였다. 서울 관객 35만5000명이 이 인간 승리 드라마를 관람했다.
<록키>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록키가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다. 이후 <록키> 시리즈에는 훈련 장면이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빌 콘티의 ‘Gonna Fly Now’는 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무슨 음악인지 모르겠다고?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자마자 알게 될 것이다.
또 ‘Going The Distance’라는 음악도 들으면 바로 ‘아~’하고 알 수 있는 익숙한 명곡이다.
다른 하나는 아폴로와의 치열한 시합을 끝낸 뒤 록키가 연인 애드리안(탈리아 샤이어)을 애타게 부르는 장면이다. 권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록키가 아폴로와의 15라운드 시합을 마치고 리포터들의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팅팅 부은 눈으로 애드리안을 찾는 장면을 보면 뭉클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록키 2(1979)
<록키>의 성공으로 2편이 제작됐다. 2편에서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은 물론 각본과 감독까지 맡았다. 제작비는 7배 오른 700만 달러였다.
2편은 1편에 등장했던 아폴로와 록키의 재대결을 그린다. 아폴로와의 대결 이후 록키는 유명해지지만 금세 다시 가난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폴로는 록키와의 재대결을 통해 챔피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한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어가던 록키는 망설이다가 결국 “이겨달라”는 애드리안의 말을 듣고 시합에 나선다. 눈 때문에 록키는 왼손잡이인 사우스포에서 오른손잡이 오소독스로 스타일을 바꾼다. 2편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둬들였다. 전 세계에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록키 3(1982)
<록키 2>의 성공은 당연히 3편 제작으로 이어졌다. 3편 역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각본·감독 작품이다. 3편에서는 새로운 대결 상대 클러버 랭(미스터 T)이 등장한다. 챔피언 록키는 매너리즘에 빠져 자만하다가 챔피언 벨트를 빼앗기고 만다. 이때 트레이너 미키 골드밀(버지스 메러디스)마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이때 라이벌이었던 아폴로가 록키를 찾아온다. 그는 폐인생활을 하던 록키를 다그쳐 재기를 돕는다.
3편에는 또 하나의 명곡이 등장한다. 서바이버의 ‘Eye of The Tiger’다. 3편에는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이 ‘썬더립스’라는 이름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3편 역시 수익 면에서는 대단했다. 전 세계에서 2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시리즈 최고 수익이었다.
록키 4(1985)
1980년대 중반, <록키 4>는 묘한 분위기의 영화가 됐다. 명성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성조기를 두른 록키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는 록키를 냉전시대,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실베스터 스탤론은 자신의 또 다른 대표작 <람보> 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건 정부 시절이었다.
냉전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결과 <록키 4>에서 록키의 대결 상대는 소련(사라진 구 소비에트 연방, 지금의 러시아)의 복서 이반 드라고(돌프 룬드그렌)로 결정됐다. 아폴로가 먼저 이반 드라고와 맞섰다가 패하고 만다. 이후 그는 경기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친구를 잃은 록키는 소련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록키 4>는 단순 오락영화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혹평을 받았다.
록키 5(1990)
<록키 4>의 비평적 실패는 실베스터 스태론을 변화시켰다. <록키 5>에서는 연출직을 1편의 아빌드센 감독에게 넘겼다. 냉전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하면서 1편에 가까운 분위기의 영화로 제작하려고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흥행에서도 비평에서도 5편은 실패작으로 남았다. 결국 5편 이후 <록키> 시리즈는 명맥이 끊기는 듯했다.
록키 발보아 (2006)
16년이 흘렀다. 록키는 다시 한번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계단에 올랐다. <록키 발보아>가 세상에 나왔다. 실베스터 스탤론 각본·감독·주연의 <록키> 시리즈가 돌아왔다. <록키 발보아>는 늙어버린 록키의 마지막 투혼을 담은 영화다. <록키 발보아>는 록키와 함께 인생역전을 이뤄내고 늙어버린 실베스터 스탤론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록키 발보아>는 1976년부터 40년 간 이어온 시리즈의 은퇴식으로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편 못지 않은 걸작이다.
크리드(2015)
<록키>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록키는 이미 은퇴했지만 그에게 제자가 생겼다. 필라델피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살던 록키를 찾아온 아도니스 존슨 크리드(마이클 B. 조던)다. 아도니스는 록키의 운명적인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아폴로의 숨겨진 아들이다. <크리드>는 완전히 노년이 된 록키가 트레이너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크리드>는 국내 개봉하지 못하고 IPTV 등 부가판권시장으로 직행했다. 그렇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크리드>는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영화다. 로튼토마토 95%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약 1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록키> 시리즈의 팬뿐만 아니라 권투영화 팬, 아니 그냥 영화를 좋아한다면 절대 놓쳐져서 안 될 제대로 된 권투 영화다.
이러한 성공으로 속편이 계획됐다. <크리드>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다시 참여한다. 다만 쿠글러 감독이 마블 영화 <블랙 팬서>의 감독직을 맡으면서 일정이 다소 밀리고 있다고 한다.
아빌드센 감독의 죽음을 기리며 <록키> 시리즈를 대략 훑어봤다. <록키>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미흡한 포스팅일 테고, <록키> 시리즈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뜬금 없는 포스팅일 수도 있다. 분명한 점 한 가지는 있다. 아빌드센 감독과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 1편은 영화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는 점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