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정말 살벌하게 잘하는군." 최근 개봉한 <엘르>를 본다면 자연히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생에 한번 겪을까 말까 한 고통들을 한꺼번에 겪는 중년여성 미셸로 분한 이자벨 위페르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욕망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난처한 상황을 견디는 과정을 보여주며 쉴새없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엘르>를 거듭 본 후 이자벨 위페르, 이자벨 위페르 노래를 부르다가 그녀의 오랜 커리어를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엘르

감독 폴 버호벤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랑 라피트, 앤 콘시니

개봉 2016 프랑스, 독일,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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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의 데뷔작
<프로이센>

이자벨 위페르는 영어 교사였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릴 적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예술학교인 베르사유 음악원과 프랑스 국립 고등 연극학교를 다녔다. 1971년 TV영화 <프로이센>의 조연으로 데뷔해 여러 작품을 거쳐 1974년 베트르랑 블리에의 섹스코미디 <고환>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1976년작 <레이스 짜는 여인>으로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고환>
<레이스 짜는 여인>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비올렛 노지에>와 1978년의 위페르
<피아니스트>와 2001년의 위페르

클로드 샤브롤의 1978년작 <비올렛 노지에>로 스물다섯 나이에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독신녀 에리카>의 질 클레이버그와 공동) 수상했다. 부모를 살해해 1930년대 프랑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존인물 비올렛 노지에로 분했다. 샤브롤이 위페르에게 노지에를 연기해달라고 부탁하려던 차, 위페르가 먼저 노지에에 대한 책이 출간됐다고 얘기를 꺼내 운명적으로 캐스팅이 성사됐다고 한다.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된 위페르는, 2001년 미카엘 하네케가 내놓은 <피아니스트>에서 어린 제자를 사랑해 파멸에 이르는 피아노 교사 에리카 역으로 23년 만에 다시 '칸의 여왕'이 되었다.

<여자 이야기>
<의식>

위페르와 샤브롤의 협업은 두 번의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성취해냈다. 나치 점령기에 불법낙태 시술로 생계를 잇다가 사형 당한 실존인물 마리 루이스 지로로 분한 <여자 이야기>(1988)와 노동자 계급의 두 여자가 이성적인 척하지만 차별적인 태도를 거두지 않는 부르주아 가정을 몰살하는 스릴러 <의식>(1995)이 바로 그것. 이 두 작품은 수상 여부를 떠나 샤브롤에게나 위페르에게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걸작이다.


거장들의 꾸준한 러브콜
이자벨 위페르와 클로드 샤브롤
<마담 보바리>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인 만큼 자국의 수많은 거장들이 위페르와의 협업을 원했다. 그 가운데 최고는 (앞서 언급한) 클로드 샤브롤. 1978년 <비올렛 노지에>부터 2006년 <코미디 오브 파워>까지 스릴러, 코미디 등 총 7편을 함께했다. 브루노 자코와는 1981년 <비둘기의 날개>부터 올해 중 개봉예정인 <에바>까지 6편을, 첫 협업 <피아니스트>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미카엘 하네케는 지난 칸 영화제에서 공개된 <해피 엔드>까지 4편을 작업했다. 근 60년간 새로운 영화언어로 충격을 안겨주는 장 뤽 고다르는 정치 실험영화에 매진하던 1970년대를 지나 위페르를 기용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1980)와 <열정>(1982)을 통해 극영화로 복귀했다.  

이자벨 위페르와 장 뤽 고다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아카데미와는 연이 없다
<천국의 문>

위페르는 그간 수많은 영화제들을 석권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과는 별다른 연이 없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이유는 영화 속에서 영어를 구사한 빈도가 적다는 사실일 터. 1975년 오토 프레민저의 <로즈버드>, 1981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 등 활동 초기부터 영어 영화에 참여하긴 했지만 편수는 현재까지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다.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긴 <엘르>는 최초로 위페르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은 작품이었다. 결과는 알다시피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에게 돌아갔다. 에디터는 응당 위페르가 오스카를 가져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의 위페르

'가수' 이자벨 위페르

<판사와 살인자>(1976), <대청소>(1981) 등의 OST에 노래를 보탰던 위페르는 2001년 <Madame Deshoulières>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여자의 복수>(1990)에 함께 출연한 바 있는 뮤지션 장 루이 무라의 프로듀싱 아래 제작된 앨범이다. 17세기 프랑스 시인 데슐리에르가 남긴 문장에 무라의 가사와 곡조를 보탠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이후 <8명의 여인들>(2002), <성난 자매들>(2004)에서도 위페르의 노래를 만날 수 있다.

Isabelle Huppert - Contre l'amour

가족과의 작업
<진정한 샬롯>

막간을 이용한 퀴즈. 1985년작 <진정한 샬롯>과 1987년작 <솔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 이 영화를 아냐고 먼저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 정답은 위페르가 가족과 함께 작업한 영화다. 흡사 로커 같은 외모가 인상적인 <진정한 샬롯>은 언니 캐롤린 위페르가 연출한 영화였고, <솔개>는 배우이자 감독인 남편 호날 샤마의 연출작이었다. 네이버 영화 DB에도 등재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낯선 작품일 것이다. 2011년 한국에서도 개봉한 <코파카바나>는 아는 이가 더러 있을 것 같다. 오늘에 충실하자는 자유분방한 엄마와 미래를 대비하며 안정된 삶을 꿈꾸는 딸의 화해를 그린 <코파카바나>에는 위페르와 딸 롤리타 샤마가 모녀 역할을 맡았다. 실제 모녀지간이기에 가능했던 현실적인 관계가 뜨거운 눈물을 끌어내는 작품이었다.

<솔개> 현장의 위페르와 샤마
<코파카바나>

홍상수와 함께
<다른나라에서>

홍상수 감독은 일찍이 프랑스에서 열띤 지지를 끌어내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열세 번째 영화 <다른나라에서>(2011)에 위페르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신기하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홍상수의 열혈팬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감독 클레르 드니의 <백인의 것>(2009)에 위페르가 출연했던 때도 그 즈음인 걸 보면 드니가 캐스팅에 다리를 놓아준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쪼록 위페르가 분한 안느는 전북 부안의 해변을 거닐며 <다른나라에서>에 산뜻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다른나라에서>로부터 5년 후, 홍상수와 위페르의 두 번째 협업 <클레어의 카메라>는 칸 영화제가 개최되던 2016년 5월 촬영을 진행해 지난 칸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다. 김민희와 위페르가 칸의 어둑한 거리에서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는 무엇일까.

<클레어의 카메라>

무대 위의 위페르
2016년 연극 <페드르>

위페르의 작품 세계는 스크린과 TV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데뷔 전부터 연극 무대에 올랐던 그녀는 활동 초기에 해당하는 70년대에 8편의 작품을 상연했다. 80년대에는 한동안 영화 작업에 매진한 후 12년 만에 투르게네프 희곡 <시골에서의 한 달>의 나탈리아 페트로브나 역으로 무대에 돌아왔고, 현재까지 큰 공백 없이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증명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모리스 블랑쇼, 프랑수아 사강, 패티 스미스, 얀 파브르, 사드 등이 쓴 글을 낭독하는 무대도 선보이고 있다. 최근 6월 중순에는 마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낭독하는 중국 투어를 소화했다.

2015년 사드의 텍스트를 낭독하는 위페르

데뷔 이래 한해도 쉬지 않았다
<올란도>

위페르의 커리어는 그 양으로만 따져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1972년 데뷔한 이래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새 작품을 발표했다. 극장/TV용 영화 리스트에 1993년이 비어 있어서 찾아봤더니 명장 로버트 윌슨이 연출한 연극 <올란도>를 3년에 걸쳐 공연하고 있던 때였다. 작품들을 채우고 있는 캐릭터의 면면을 따지고 든다면 이자벨 위페르에 대한 경탄은 한없이 불어난다. 다음, 그리고 그 다음의... 위페르에 대한 기대를 놓을 틈이 없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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