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보러 간 <박열>에서 그보다 더 눈에 띄는 한 배우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 배우죠. 최희서!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에서 동주만큼 몽규의 존재가 빛났듯, <박열>에서도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인 후미코가 빛났는데요. 데뷔한 지는 꽤 되었지만, 차근차근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얼굴을 알리고 있는 그녀! 오늘은 그녀의 필모와 매력을 두두두 파헤쳐보았습니다. 몰랐으면 팬이 되고, 알았으면 더 좋아지게 될 영화인 시간! 그럼 바로 시-작!


우선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볼까요? 은행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외국 주재원으로 자주 나간 덕분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외국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유년기에는 일본 오사카에서 한인 초등학교를 다녔죠. 그곳에서 연극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을 연기하며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한 설렘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명문 대학에 들어가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부모님의 바람에 그녀는 잠시 그 꿈을 접어두기로 합니다. 이후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연극 동아리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죠. 그때부터 연극·단편영화를 꾸준히 하며 연기에 대한 끈을 놓지 않다가, UC 버클리에 교환학생으로 가 1년 동안 4편의 출연작과 한편의 연출작을 연극 무대에 올리게 됩니다.

이 시기에 제2외국어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한국인 최초로 공연예술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또한 언젠가 중국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에 중국어도 공부해, 무려 5개국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킹콩을 들다>

연극 <데스데모나는 오지 않아> <의자는 잘못없다> 등으로 연기력을 다지고,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와 드라마 <히트>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탄탄히 기본기를 가져온 그녀! 원래는 영국 드라마 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떨어지고 난 후 우연히 영화 오디션을 통해 <킹콩을 들다>로 본격 데뷔를 하게 되죠!

영화 속에서 역도부원들 중 한 명인 서여순을 연기하며 짧게 자른 머리와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에 화장기 없는 민낯까지 보여주었는데요. 이에 대해 그녀는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다. 배우는 주어진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작품이 좋다면 남자 역할이든, 노인 역할이든 뭐든 하고 싶다. 외모는 중요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뼛속까지 완전 배우인 것!

<오늘만 같아라>

그리고 2년 후 일일드라마 <오늘만 같아라>에서 필리핀 새댁 크리스티나를 연기하며 브라운관 데뷔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 역할을 위해 다문화가정에 있는 친구들도 사귀고, 필리핀식 영어도 준비해 연습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는데요. 노력이 빛을 발했던 것일까요. 당시 식당에 가면 그녀가 진짜 필리핀 사람인 줄 알았다며 아주머니들이 밥도 많이 주셨다는 후문ㅋㅋㅋ 

이후 하정우와 공효진이 함께한 영화 <577 프로젝트>에서 열정충만 신인배우 16인 중 한 명으로 출연했구요. 영화 <완전 소중한 사랑> <사랑이 이긴다>에서 잠깐 얼굴을 내밀었고, 이어서 <야누스> <동心> 등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배우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찾아오죠.

<동주>

많은 관객들이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되었을 바로 이 영화 <동주>! 캐스팅 비하인드도 흥미롭습니다. <동주>의 시나리오를 쓴 신연식 감독과 최희서는 지하철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요. 당시 그녀는 연극 때문에 혼자 대본을 중얼거리며 외우고 있었고, 맞은편에서 신연식 감독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또 '미친여자' 같았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신연식 감독은 그녀에게 명함을 건네죠. 그리고 몇달 후 신연식 감독은 <동주>의 일본인 여자 역할에 최희서를 추천했고, 그렇게 윤동주의 시집을 발간하는 쿠미 역할을 맡게 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그저 배우로서 연기만 한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녀의 일본어 능력을 십분 살려, 이준익 감독, 배우 김인우와 함께 윤동주의 시·영화에 나오는 신문·서적들을 모두 하나하나 번역했다는 사실!

<어떻게 헤어질까>의 최희서(왼쪽)와 박규리

<동주>가 끝난 이후 영화 <시선 사이>와 <어떻게 헤어질까>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비추던 그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이준익 감독과 함께 작품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녀의 첫 장편 주연작 <박열>을 말이죠!

<박열>

<박열>에서 후미코 역할을 맡으며 또 한 번 관객들의 뇌리에 콱! 그녀가 가네코 후미코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건 <동주> 후시녹음 때부터였습니다. 녹음 자리에서 이준익 감독이 그녀에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죠. 그녀는 그날 당장 책방에 가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 <나는 나>를 사서 읽었고, 이후 시나리오 회의를 함께 하며 후미코 역에 캐스팅 탕탕!

<동주>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박열>에서도 연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료조사를 함께 하고, 일본인 역할에 적합한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신주쿠 양산박 극단(1987년 극단 대표 김수진을 비롯해 재일동포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극단)에 연락을 취하고, 박열·후미코의 재판 기록과 자서전 원문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등 영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합니다.

이렇듯 영화 초기부터 함께했기 때문일까요. 실존 인물인 후미코에 대한 그녀의 이해와 애정은 특히나 남다르고, 이를 바탕으로 그녀가 스크린에 불러낸 후미코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정도로 대단했죠. 다시 생각해도 찡..!

그녀는 <박열>과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옥자>에도 통역사 역할로 출연합니다. 영화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것뿐이지만 역시나 존재감이 굉장하죠! 앞으로 그녀는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여성 혹은 의지대로 살 수 없어서 투쟁하는 여성 역할을 맡고 싶다고 하는데요. 벌써부터 다른 얼굴로 관객들을 찾아올 그녀의 차기작이 궁금해집니다.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양파 같은 그녀! 앞으로 왕성한 활동해주시길 바라며 그럼 우린 다음에 또 만나요. 안녕!


씨네플레이 에디터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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