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해당 영화에 다시 경고 문구를 표시합니다.
곤란하다, 곤란해. 스포일러 때문이다. 23개의 인격을 지닌 남자가 주인공인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 개봉(2월22일)에 맞춰 다중인격(해리성인격장애)을 다룬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보통 다중인격 소재 영화들은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닐 거야’ 혹은 ‘이 사람이 범인이어야 해’ 했는데 알고 보니 ‘다중인격이네’ 이렇게 반전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다중인격을 소재로 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하면 스포일러를 피해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부터 다중인격을 설정으로 잡고 시작하는 영화라면 괜찮지 않을까? 영화 홍보할 때부터 다중인격 캐릭터가 나온다고 광고하는 영화들부터 소개한다.
<두 얼굴의 여친>(2007) 아니/하니
정려원이 연기하는 이중인격 캐릭터 아니와 하니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아니는 조신하고 귀엽다. 화가 나면? 뽁뽁이를 터뜨리며 화를 다스린다. 하니는 다르다. 발치기, 욕설이 기본이다. 아니를 사랑하는 구창(봉태규)은 하니의 폭력을 참아내려 노력한다.
▶아니와 하니 두 캐릭터를 연기한 정려원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지질한 남자 봉태규도 제 몫을 해낸다. <두 얼굴의 여친>은 소소한 재미의 로맨틱 코미디다.
<미 마이 셀프 앤 아이린>(2000) 찰리/행크
다중인격을 연기하는 배우로 짐 캐리만한 사람이 있을까. <미 마이 셀프 앤 아이린>에서 짐 캐리는 아이린(르네 젤위거)을 사랑하는 경찰관 찰리를 연기했다. 찰리의 아내는 바람이 났다. 그를 떠났다. 남은 건 아내의 아이들이다. 찰리의 아이들은 아니다. 아내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사는 찰리는 해리성인격장애를 앓고 있다. 약효가 떨어지면 행크라는 폭력적인 인격이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찰리와 행크 모두 아이린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다중인격 설정은 스릴러뿐만 아니라 로맨틱코미디에서도 애용하고 있다. <미 마이 셀프 앤 아이린>은 <두 얼굴의 여친>의 남자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다중인격은 국내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소재다. 2015년 MBC에서 방영한 지성, 황정음 주연의 <킬미 힐미>는 7개의 인격을 가진 재벌 3세와 그의 비밀 주치의(황정음)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비슷한 시기에 SBS에서는 현빈이 연기한 두 인격이 한 명의 여자(한지민)와 사랑에 빠지는 <하이드 지킬, 나>가 방영됐다. 같은 해 4월에 방영된 안재현, 구혜선이 출연한 KBS의 메디컬 드라마 <블러드> 또한 뱀파이어와 이중인격을 접목시킨 설정이었다. <블러드>로 두 사람은 시청률 대신 사랑을 얻었다고 한다.
<매드 디텍티브>(2007) 번 형사
두기봉 감독의 <매드 디텍티브>는 여기 소개하는 다른 다중인격 영화와 조금 다른 설정이 추가됐다. 제목처럼 ‘미친 형사’라고 불리는 번(유청운) 형사가 다중인격자의 실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게 그 설정이다. 번 형사는 다중인격을 지닌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다중인격자인 치와이 형사를 쫓는 인물이다.
▶두기봉 감독은 번 형사가 보는 세계와 평범한 인간이 보는 세계를 모두 보여준다. 두 세계가 교차하기도 한다. <매드 디텍티브>는 두기봉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영화들은 제목을 아는 것만으로 스포일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직접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스포일러에 민감한 분들은 주의를 기울여주시길 바란다.
<프라이멀 피어>(1996) 애런/로이
<프라이멀 피어>는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으로 유명하다. 그는 시카고에서 존경받는 대주교를 살해한 용의자 애런을 연기했다. 애런은 무죄를 주장한다. 변호사 마틴(리차드 기어)이 그를 무보수로 변호해주기로 한다.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마틴은 애런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에게 진실을 다그친다. 이때 순둥이 같던 애런에게서 로이라는 폭력적인 성향의 인격이 튀어나온다.
▶<프라이멀 피어>는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이라 게 진짜 반전일지도 모른다. 스토리의 반전보다는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력에 놀라는 영화라는 뜻이다.
<스트레인저>(1995) 사라
사라(레베카 드 모네이)는 다중인격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다. <프라이멀 피어>의 애런과 같은 살인범을 상담하고 정신 감정하는 게 그녀의 일이다. 그녀에게 낯선 남자 토니(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다가온다. 사라는 그녀에게 이끌리고 둘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토니와의 관계 이후 사라는 자신의 집에서 시든 장미꽃을 발견하고, 끔찍한 고양이 시체를 배달받는다. 심지어 신문 부고란에서 자신이 죽음을 알리는 기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를 느낀 사라는 토니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스트레인저>는 다중인격 영화의 클리셰가 가득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반전을 알고 나면 조금은 허탈해지지 않을까. 1990년대 중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한참 잘나갈 때 그의 인기에 기대 만든 영화처럼 느껴진다.
<싸이코>(1960) 노먼 베이츠
강 스포일러!
살인을 둘러싼 다중인격 영화의 시조새쯤 될까. 아, <지킬 앤 하이드>가 있다. 어쨌든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는 충격적인 반전의 영화다. 마리온(쟈넷 리)이 회삿돈을 가지고 도망친다. 밤이 되고 그녀는 허름한 베이츠 모텔에 묵게 된다. 모텔의 주인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는 친절한 사람이다. 모텔 뒤편 언덕에 있는 집에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마리온이 샤워를 할 때 검은 실루엣의 여성이 그녀를 살해한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반전을 공개하겠다. 마리온을 죽인 범인은 노먼 베이츠다. 노먼은 어머니가 죽자 어머니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마리온을 죽일 때도 노먼은 어머니를 연기하고 있었다.
▶<싸이코>를 보지 않았다면 반전과 스포일러에 연연하지 말고 꼭 보기를 추천한다. 이 영화가 왜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파이트 클럽>(1999) 타일러 더든
강 스포일러!
에드워드 노튼은 다중인격 전문 배우인가.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왜냐면 <프라이멀 피어>에서는 혼자 두 가지 인격을 연기했지만 <파이트 클럽>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에드워드 노튼의 다른 인격 타일러 더든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헉, 벌써 반전을 공개해버렸다.
▶<파이트 클럽>은 데이빗 핀처의 역작이니 스포일러를 당했더라도 꼭 보면 좋겠다.
<장화, 홍련>(2003) 수미
중 스포일러!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공포 장르에 다중인격 소재를 혼합한 영화다. 공개된 시놉시스를 먼저 살펴보자. “수연(문근영), 수미(임수정) 자매가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새엄마 은주(염정아)는 눈에 띄게 아이들을 반기지만, 자매는 그녀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신경이 예민한 은주는 그런 두 자매와 번번히 다투게 되고, 아버지 무현(김갑수)은 그들의 불화를 그저 관망한다.” <장화, 홍련>은 전형적인 공포영화처럼 진행되지만 후반에 반전이 공개된다. 임수정이 연기한 수미가 해리성인격장애를 겪고 있었다.
▶<장화, 홍련>은 반전을 알고 다시 보면 처음에 볼 때 모르고 스쳐지났던 장면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미스터 브룩스>(2007) 브룩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브룩스는 성공한 사업가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에게는 다른 자아가 있다. 살인마 마샬(윌리엄 허트)이다. 브룩스는 마샬에 의해 취미로 살인을 저지른다. 완전 범죄에 가까운 살인현장에는 표식처럼 엄지 지문을 남긴다. 살인마 브룩스/마샬이 ‘썸프린트’(thumbprint)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 와중에 브룩스의 이웃 스미스(데인 쿡)가 범죄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스미스는 브룩스에게 자신도 살인에 동참하게 해달라는 요구한다.
▶<미스터 브룩스>는 브룩스/마샬이라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진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살인 충동을 억누르고 싶은 브룩스는 과연 살인을 그만둘 수 있을까.
<아이덴티티>(2003) 말콤 리버스
약 스포일러!
<23 아이덴티티>의 원제는 ‘Split’이다. 국내 제목이 ‘23 아이덴티티’가 된 데는 지금 소개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의 영향이 컸을 걸로 짐작된다. <컨택트>(Arrival)와 <콘택트>(Contact)의 경우처럼 말이다. <아이덴티티>의 스토리는 이렇다. 11명의 사람들이 한 모텔에 모인다. 한명씩 죽어간다. 그때마다 현장에 숫자가 적힌 열쇠가 발견된다. 숫자는 점점 줄어들며 살인을 예고하는 카운트다운처럼 보인다. 도대체 범인은 누굴까.
▶<아이덴티티>는 다중인격 영화의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또 대표적인 반전 영화로 손꼽힌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 있으니 아직 못 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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