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화' 하면 자연스럽게 '블록버스터' 혹은 '액션'이 따라붙어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실제로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스펙터클 액션 장면이 꼭 하나쯤은 들어간다.
-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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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톰 하디, 킬리언 머피, 케네스 브래너, 마크 라이런스, 해리 스타일스, 핀 화이트헤드
개봉 2017 영국, 프랑스, 미국
하지만 가끔은 '진짜 전쟁 영화'도 등장한다. 최근 <덩케르크>가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전쟁이란 '생존과 관련된 행위'를 차분하게 풀어놓은 것처럼.
그래서 모아봤다. 전쟁 영화지만, 일반적인 전쟁 영화에서 벗어난 영화들. 스펙터클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들로 전쟁을 다시 읽어보자.
반전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 전쟁 영화들
전쟁이란 커다란 그림에서, 그 안의 전투나 병사의 단위로 집중된 건 베트남 전쟁 전후이다. 명분 없이 시작된 전쟁에서 미국은 패배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도 허황된 수단으로의 전쟁을 비판하는 양상이 생겼다.
대표적인 예는 역시 <지옥의 묵시록>이다.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각색한 이 영화는 베트남전뿐 아니라 어떤 전쟁에서든 통용되는 '광기의 확산'을 풀어냈다. CG 없이 특수효과만으로도 베트남전의 일면을 재현한 것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진 셈이다.
베트남전은 <풀 메탈 자켓>, <햄버거 힐>, <플래툰> 등 지금도 언급되는 반전(反戰) 영화들의 배경이 됐음은 물론, <택시 드라이버>, <야곱의 사다리> 등에 영향을 미치며 전쟁이 얼마나 백해무익한지 되새기게 했다.
거론한 영화 중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햄버거 힐>은 전쟁 영화 중에서도 과격한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햄버거 힐'이란 고지를 점령하려는 작전 중 사지로 내몰린 병사들의 심리와 전투의 결과가 반드시 환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전쟁의 허무함을 담아냈다.
어디선가 본 영화 같다면? 아마 장훈 감독의 <고지전> 때문일 것이다. 이미 전쟁의 전개와 상관이 없는데도 목숨을 내놔야만 하는 병사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에서도 '전쟁'이란 비인간적인 행위 아래서 반복된다.
전장의 군인을 다루지 않은 전쟁 영화들
보통 전쟁 영화는 군인, 전장에서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하지만 전쟁은 전장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포로나 난민, 민간인 학살 등이 그렇다.
유독 이런 전쟁 영화에 익숙한 배우가 있다. 크리스찬 베일은 <태양의 제국>에서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 영국 소년 제이미로 첫 주연을 맡았다. 친일적인 묘사 때문에 논란도 있었으나 전쟁이 미치는 영향을 소년의 시선에서 잘 그려냈다.

- 레스큐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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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출연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잔, 제레미 데이비스
개봉 2006 미국
베일은 이후 <레스큐 던>에서 베트남전 당시 포로로 잡혔다 유일하게 탈출한 디에터 뎅글러 역을 맡았다. 이 작품도 베트남의 정글과 전쟁 포로가 겪는 온갖 상황들이 전쟁의 삭막한 이면을 전한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난징 대학살 사건을 다룬 <진링의 13소녀>에서 크리스찬 베일은 장의사인 존을 맡아 다시 한 번 반전 영화에 얼굴을 비춘다. 크리스찬 베일이 중국 인권운동가인 천광청과 만나는 등 인권에 관심이 많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장예모 감독에게 그를 추천했다고 한다.

- 진링의 13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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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이머우
출연 크리스찬 베일, 니니
개봉 2011 중국, 홍콩
<사울의 아들>은 유태인 수용소에서 시체 치우는 '존더코만도'로 일하던 남자가 아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장례를 치뤄주려는 과정을 담았다.

- 사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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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라즐로 네메스
출연 게자 뢰리히
개봉 2015 헝가리
전쟁에서 가장 안전한 이는 누구일까. 정치인이나 지휘부일 것이다. 그럼 가장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이들은? 어린아이들일 것이다. 대개의 전쟁 영화는 그런 사실을 회피하려 하지만, 정반대로 덤벼든 영화들도 있다.
최근 개봉했던 <랜드 오브 마인>은 덴마크군이 독일 소년병 포로들에게 지뢰 제거 작업을 떠넘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소년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제거 작업은 제아무리 승전국의 '권리'라 해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 랜드 오브 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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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틴 잔드블리엣
출연 로랜드 몰러, 미켈 폴스라르, 루이스 호프만
개봉 2015 덴마크, 독일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작품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전쟁에 남겨진 아이들을 그린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과 <거북이도 난다>는 더 이상 안전한 보금자리 하나 없는 청소년, 유아들이 전쟁의 여파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을 담는다.

- 거북이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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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바흐만 고바디
출연 소란 에브라힘, 아바즈 라티프, 아브돌 라흐만 카림, 사담 후세인 페이살, 히레쉬 페이살 라흐만, 아질 지바리 쉬르크
개봉 2004 이란, 이라크
국내 영화로는 <작은 연못>이 있다. 한국 전쟁의 노근리 사건을 다루며 민간인 학살을 전면으로 다뤘다. 연극 연출가로 유명한 이상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제작비가 넉넉치 못하단 소식을 들은 문성근, 강신일, 이대연, 박광정 등 연극 배우 출신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적막한 현대전의 양상을 그린 전쟁 영화들
영화에서 전쟁은 빗발치는 총알과 적군의 진격으로 생사의 갈림길을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물량전에서 기술전으로 변모한 최근 전쟁에서 이런 전면전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허트 로커>는 그 지점에서 '현대전'을 정확히 그렸다. 영화에서 총성이라곤 두 어번 정도 나오는데, 그렇기에 전쟁 영화에서 손쉽게 소비되던 '총성'의 파괴력을 새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결말이 남기는 묘한 잔상은 전쟁의 폭력성 외에도 개인의 좌절감까지 함축적으로 전한다.

- 허트 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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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캐스린 비글로우
출연 제레미 레너, 안소니 마키, 브라이언 게라그티, 크리스찬 카마고
개봉 2008 미국
<자헤드> 역시 그렇다. 샘 멘데스 감독에 제이크 질렌할, 피터 사스가드, 크리스 쿠퍼, 제이미 폭스가 출연하지만 국내에선 DVD로만 소개됐다. 영화를 보면 그 이유는 명확하다. 전쟁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공허한 전장과 군인들의 군기 문란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명분 없는 전쟁에 투입된 신입 군인이 이미 전쟁의 막바지에서 대기만을 거듭한다. 새로운 인생을 생각하며 전장으로 투입됐는데 반복되는 일상과 '동료'여야 할 군인들 간의 군기 싸움만이 있다. <자헤드>는 불필요한 전쟁에 소모되는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한다. 군인들의 젊음까지도.

- 자헤드 - 그들만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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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샘 멘데스
출연 제이크 질렌할, 피터 사스가드, 루카스 블랙, 브라이언 게라그티, 제이콥 바가스, 라즈 알론소, 에반 존스, 이반 펜요, 크리스 쿠퍼, 데니스 헤이스버트, 스콧 맥도널드, 제이미 폭스
개봉 2005 독일, 미국
현대전이 도입되면서 전장은 좁아지고 고도의 작전이 전개되는 양상이 정착됐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그런 현대전에서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짐을 고찰한다. 약 10년간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255명을 사살한 크리스 카일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한편에선 그저 '살인마'일 수밖에 없었던 병사 개인에 초점을 뒀다. 실제 크리스 카일이 그정도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진 않았다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군인이더라도 심리적인 외상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시선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 아메리칸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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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브래들리 쿠퍼, 시에나 밀러, 제이크 맥더맨, 루크 그림즈, 카일 갈너
개봉 2014 미국
전쟁을 다른 장르로 소화한 전쟁 영화들
국내 전쟁 영화 하면 <태극기 휘날리며>를 떠올리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이는 훌륭한 전쟁 영화다. 한국 영화사에 남을 스펙터클은 물론, 남북을 형제에 은유한 스토리도 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선 <알 포인트>를 소개하고 싶다. '공포'에 주력하고 있지만 <알 포인트>는 낯선 땅에서 위험에 노출된 공포와 전쟁에 참가한 이들의 죄책감을 배합시켜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다소 급조된 결말에도 <알 포인트>가 여전히 훌륭한 공포영화인 건 심리적 요소를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쟁을 희화화해 비인간성을 부각한 영화도 있다. 찰리 채플린의 걸작인 <위대한 독재자>가 대표적이다. 야망에 빠져 덤벙대는 독재자와 소박한 소시민을 대치한 이 영화는 마지막 독백 장면으로 지금까지 걸작으로 길이 남아 있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은 <쓰리 킹즈>는 걸프전으로 이라크에 주둔하던 세 군인이 '후세인의 금괴'를 찾아 나서는 내용의 영화다. 평화의 상징이던 미국 군인이 금괴를 찾는다는 아이러니한 블랙코미디와 이라크 난민을 마주한 후반부의 휴머니즘이 절묘하게 결합돼 전쟁의 이면을 포착한다.
마지막으로 두 편의 영화를 더 소개하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연작을 만들었다. '이오지마 전투'에 참여했던 미군과 일본군의 이야기를 두 편의 영화로 제작했다.

- 아버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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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라이언 필립, 제시 브래포드
개봉 2006 미국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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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와타나베 켄, 니노미야 카즈나리
개봉 2006 미국
한 전장을 배경으로 적군으로 대치한 두 진영의 군인들의 시점을 각각 다루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승전국'과 '패전국'으로만 치환되는, 그래서 외면하게 되는 이들의 심리를 촘촘하게 그려냈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이 두 편의 연작으로 결국 '큰 그림'을 완성했다. 그 큰 그림은 두 편의 영화를 모두 봐야 알 수 있다.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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