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패니메이션의 마스터피스’를 영접하라. <아키라>가 8월31일 국내에 정식 개봉한다. 30년 만이다. 일본 문화 개방 이전인 1991년 <아키라>가 <폭풍소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적이 있다. 80여분으로 편집된 당시 <아키라>는 홍콩 애니메이션으로 둔갑해서 수입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이 드러나고 개봉은 취소됐다.

1991년 <아키라>는 <폭풍소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적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극장에서 정식으로 볼 수 있게 된 <아키라>는 시대를 앞선 걸작으로 손꼽힌다. 2017년에도 여전히 <아키라>는 위대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을 작품 <아키라>를 소개한다.


원작 만화가 오토모 카츠히로가 연출까지 맡았다

<아키라>는 근미래인 2019년을 배경으로 한다. 1988년 제3차 세계대전으로 도쿄는 붕괴된다. 이후 네오도쿄라는 이름으로 재건했으나 그곳은 혼돈의 도시다. 오토바이 폭주족 소년 테츠오는 사고를 당하고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의 실험체가 된다. 테츠오의 친구 카네다와 반정부 세력의 조직원인 케이는 테츠오를 구하려 한다.

사이버펑크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아키라>는 대개의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그렇듯 원작 만화가 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연재한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원작 만화는 2013년 국내에 정식 출간됐다. 원작자인 만화가 오토모 카츠히로가 애니메이션의 감독까지 맡았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국내 출간된 만화 <아키라> 1권.
원작 만화 <아키라>는 세밀한 작화로 유명하다.

오토모 카츠히로는 일본 만화계에 충격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의 그림, 그의 연출력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경지였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아키라>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본 만화계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마저 오토모 카츠히로의 그림을 보고 “나의 뎃상이 서툴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말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만큼 오토모 카츠히로의 그림은 뛰어났다는 점이다. <아키라> 이후 등장한 만화가들은 <아키라>의 작화 수준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아키라> 이후 전체적인 작화 수준이 높게 요구되면서 일본 만화가들이 어시스턴트를 많이 쓰게 되고 결국 저임금 구조로 이어진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오토바이 테일램프의 잔상 연출은 <아키라>의 상징과도 같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이 엄청난 작화 수준은 유지됐다. <아키라>는 제작비를 아끼지 않았다. 11억 엔(현재 환율로 약 113억 원)이 투입됐다.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은 혼자서 78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콘티를 그렸다. 모든 컷은 70mm 필름에 맞게 그렸고 327가지 색을 사용했다. 성우들이 대사를 먼저 녹음하고 거기에 맞춰 완벽한 입모양을 그리는 프레스코 방식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완성된 <아키라>의 영상은 당시는 물론 요즘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다이내믹한 액션을 위해서 약 15만 장의 셀화로 초당 20프레임의 영상을 만들어냈다. 보통의 영화가 초당 24프레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키라>의 영상은 독보적이었다.

<아키라>의 오토바이 연출과 비슷한 구도를 보여주는 작품들.

<아키라>의 치밀한 작화도 이에 걸맞는 연출력이 없었다면 무용지물이다. 오토모 카츠히로는 <아키라>의 원작 만화에서도 이미 영화 같은 연출을 선보였다. 직접 감독을 맡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감 없이 발휘됐다. 거리를 폭주하는 오토바이의 속도를 묘사한 연출에 입이 딱 벌어진다. 특히 오토바이 테일램프의 잔상을 길게 보여주는 장면은 <아키라>의 상징과도 같다. 래퍼 카니에 웨스트가 이 장면을 <Stronger> 뮤직비디오에서 오마주했지만 원작만 못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아키라>의 팬이다. 그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에 등장하는 핵폭발 장면이 <아키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아키라> 오마주인 카니에 웨스트의 <Stonger> 뮤직비디오.

사이버펑크의 상상력을 완성하다

작화, 연출 그 다음은 상상력이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사이버펑크 장르로서 <아키라>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고 보긴 힘들다. <아키라> 이전에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1979),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스캐너스>(1981),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 스티븐 리스버거 감독의 <트론>(1982),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1985) 등이 있었다. 초능력을 각성한 소년, 정부의 음모, 이에 반하는 세력 등 <아키라>를 구성하는 요소는 결코 새롭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키라>가 보여준 상상력은 기존 영화와 달랐다. 사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아키라>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지금과 같은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있을 리 없다. 특수효과의 장인들이 있다고는 해도 분명 한계는 있다. <아키라>에게 한계는 없었다. 네오도쿄의 거대한 빌딩을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 실험체로 초능력을 각성한 테츠오의 환각이 만들어낸 기묘한 이미지들과 그가 각성하면서 저지르는 거대한 폭력을 묘사하는 것도 기존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아키라>는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것보다는 상상의 구현에 제약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1980년대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미권의 사이버펑크 장르의 영화가 결코 보여주지 못한 비주얼을 <아키라>는 보여줬다.

“유튜브 시대의 <아키라>”라는 평가를 받은 영화 <크로니클>.

<아키라>의 비주얼은 지금도 비슷한 수준으로 구현하기 힘들다. 10대 청소년이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되는 설정부터 <아키라>를 대놓고 오마주한 영화 <크로니클>은 2012년 영화지만 <아키라>만큼의 비주얼을 보여주지 못한다. 물론 <크로니클>이 저예산영화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액션의 스케일만 따지자면 <아키라>의 발끝에도 못 따라온다.

일본 고도 성장과 불안감

<아키라>는 일본의 시대상을 적절히 녹여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아키라>의 주요 배경은 2019년 공사가 한창인 올림픽 주경기장이다. 실제로 2020년 일본은 도쿄에서 두 번째 올림픽을 개최한다.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이 고도 성장하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이때 개최됐다. 고도 성장 시기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은 과학과 미래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 이는 <아키라>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했다. 빼놓지 말아야 하는 지점이 또 있다. 무정부 상태의 네오도쿄가 ‘전공투’라고 불린 1960년대 말 일본의 학생운동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과 과학으로 인한 미래는 한편으로는 장밋빛이었지만 그 안에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키라>가 그린 디스토피아의 풍경은 많은 후예들을 만들어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등 재패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품들 역시 <아키라>의 영향력 아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제임스 카메론과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자매가 <아키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그밖에도 조시 트랭크의 <크로니클>, 제프 니콜스의 <미드나잇 스페셜> 등에서 <아키라>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실사화가 가능할까

<아키라> 컨셉아트.

<아키라>는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가 실사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워너브러더스가 <아키라>의 영화화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10년 넘게 끌어온 <아키라> 실사화는 지난해 조셉 고든 레빗과 크리스 에반스를 모델로 한 컨셉아트 이미지가 나오면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자의 이름으로 거론된 적도 있다. 최근에는 <겟 아웃>의 조던 필 감독이 “원작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이유로 연출직을 사양했다. <아키라> 실사화 프로젝트 책임자 자리는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쉽사리 이 도전을 받아들일 사람이 나타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스칼렛 요한슨을 내세운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실패도 큰 교훈이 됐을 거다.

작품 자체에 대한 부담 이외에도 <아키라>의 실사화가 더딘 이유가 있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앞서 <크로니클>의 예에서 봤듯이 <아키라>의 스케일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자본이 필요하다. 실제로 워너브러더스에 앞서 소니픽쳐스가 1990년대에 한 차례 <아키라> 실사화 프로젝트를 가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 예산이 3억 달러(약 3300억) 정도 책정됐다. 제작비 문제로 결국 프로젝트는 좌초되고 말았다.

재패니메이션의 걸작으로 남다

‘재패니메이션’은 일본(Japan)과 애니메이션(animation)의 합성어다. ‘아니메’( アニメ )라는 말도 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해외에서는 재패니메이션과 동의어로 사용한다. 누군가는 재패니메이션, 아니메라는 단어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분명 그의 머릿속에선 <아키라> 속 카네다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아키라

감독 오토모 가츠히로

출연 이와타 미츠오, 사사키 노조무

개봉 1988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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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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