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는 잘해야 본전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리메이크한다면 더욱 그렇다. 제아무리 정성껏 만들더라도 원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는 없다. 리메이크가 호평보다는 비판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이러한 비판을 호되게 받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해외 매체 Taste of Cinema가 선정한 ‘2010년대 만들어진 가장 불필요한 리메이크 영화 10편’이다.


10위

<타이탄>(Clash Of The Titan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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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족의 멸망>(Clash Of The Titans, 1981)

1981년 원작 <타이탄 족의 멸망>은 CG가 없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괴수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11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할리우드 특수효과의 대가로 불리던 레이 해리하우젠 덕분이다. 이 작품은 미국 내에서만 제작비의 4배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다. 2010년 만들어진 리메이크작 <타이탄>은 샘 워싱턴, 리암 니슨 등 호화 캐스팅과 할리우드의 최신 기술력을 동원하여 흥행 면에서는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골든 라즈베리 2개 부문에 후보로 오를 만큼 영화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선전포고라도 하듯 원작에 등장했던 올빼미 로봇을 던져버리는 장면은 그저 애처로운 치기였을 따름이다.

9위

<캐리>(Carri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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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Carrie, 1976)

2013년 리메이크작 <캐리>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킴벌리 피어슨 감독의 작품이다. 결말을 바꾼 것 외에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1976년 원작 그대로 옮겨왔고 연출도 나쁘지 않았다. 클로이 모레츠가 캐리 역을 맡기엔 너무 예쁘다는 칭찬 같은 비난을 받았지만, 연기만큼은 줄리안 무어와 더불어 호평을 받았다. 잘해야 본전이라 했다. 졸작으로 비난받지는 않았지만, 브라이언 드 팔마의 1976년 원작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8위

<매그니피센트 7>(The Magnificent Seve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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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 1960)

액션은 흠잡을 데 없다. 감각적인 뮤직비디오와 CF로 유명했던 안톤 후쿠아 감독은 액션 서부극에서도 그의 장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등 주연배우 들의 연기도 좋다. 국내에서는 이병헌이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도록 많은 캐릭터를 다인종으로 구성한 것도 의미 있다. 원작 <황야의 7인>은 화려하고 강해 보이지만 정착할 곳 없는 떠돌이 카우보이와 순응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가족과 땅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는 농민이 대조되어 내용의 깊이를 더하지만, <매그니피센트 7>은 권선징악적인 액션에만 집중한다.

7위

<로보캅>(RoboCop, 2014)
VS
<로보캅>(RoboCop, 1987)

오리지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로보캅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을 것이다. 묵직한 은빛 슈트에서 뿜어나오는 강렬한 카리스마는 간데없고 날렵한 블랙 전투 슈트에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 때문이다. 폴 버호벤 감독을 명장의 반열로 올려놓은 오리지널은 기존 SF물과의 차별을 위해 폭력을 잔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여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과 사회 비판적인 시점도 이 작품을 걸작 SF물로 꼽는 이유가 됐다. 리메이크 작품은 이런 원작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액션보다는 로보캅의 내면에 집중한 연출은 무척이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6위

<포인트 브레이크>(Point Break,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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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으로>(Point Break, 1991)

<폭풍 속으로>는 거대한 파도 속으로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패트릭 스웨이지와 온몸을 매력으로 치장한 키아누 리브스의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다. 액션 연출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캐스린 비글로우는 두 주인공 청춘의 한철을 서핑과 스카이다이빙이라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통해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 영화는 이대로 봉인되었어야 했다. 2015년 리메이크된 <포인트 브레이크>는 범죄자와 FBI요원이 스포츠를 통해 우정을 쌓는다는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서핑이 주요한 소재였던 원작과는 달리 암벽등반, 스카이다이빙, 스노우보딩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이 추가되며 좀 더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액션 장면의 스펙터클에 집중하면서 범죄영화의 성격보다는 스포츠영화에 가까워졌다. 멋진 풍광이 다라는 평가가 틀린 말은 아니다.

5위

<스트로우 독스>(Straw Dog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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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표적>(Straw Dogs, 1971)

샘 페킨파의 1971년작 <어둠의 표적>은 전원생활을 꿈꾸며 영국의 한 마을에 이사온 부부가 마을 사람들의 폭력에 더욱더 무자비한 폭력으로 맞서는 이야기다. 영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인 이 작품은 폭력에 전염되어가는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컨텐더>(2000), <더 트루스: 무언의 제보자>(2008)를 연출한 로드 루리 감독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하지만, 미국 영화사의 이단의 길을 걸었던 ‘폭력의 제왕’ 샘 페킨파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리메이크를 찾는 관객은 없었다.

4위

<데스 앳 어 퓨너럴>(Death At A Funeral,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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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후 아 유>(Death At A Funeral, 2008)

<Mr. 후 아 유>는 장례식에서 일어나는 왁자지껄한 소동을 그렸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가족 친지들을 모처럼 한자리에 모으지만, 이런 자리에선 외려 가족 간에 다른 속내와 비밀들이 드러나는 복잡한 상황이 연출되기 마련이다. 고인이 된 아버지의 애인이 등장하고 환각제에 취해 나체로 지붕에 오르는 예비 신랑이 소란을 떤다. 동성애, 환각제, 장애 같은 민감한 소재들로 가득 차 있지만, 짜임새 있는 구성과 영국 배우들의 열연으로 이야기는 매끈하게 흘러간다. 너무 빠른 리메이크였다. 고작 3년 만에 다시 풀어낸 장례식의 이야기 <데스 앳 어 퓨너럴>은 영국 특유의 블랙코미디를 미국식으로 풀어내겠다는 욕심만 가득할 뿐 다른 미덕을 찾아낼 수 없었다.

3위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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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

제작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뜨거웠다. <나이트메어>는 온전히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의 영화다. 1984년 첫 작품부터 1994년 <나이트메어 7: 뉴 나이트 메어>까지 프레디 크루거를 연기한 이는 로보트 잉글런드였다. 수다쟁이 능글맞은 살인마를 그보다 더 완벽하게 소화해 낼 배우는 없다. 그가 곧 프레디 크루거임에도 리메이크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전세계 호러 팬들의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2010년 동명으로 제작된 리메이크작에는 돈에 눈이 먼 할리우드에 대한 저주로 가득했다. 이야기는 엉성했고, 원작에 대한 경외도 없었다. 하지만 비난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성공하면서 리부트 소식까지 있다. 제발 프레디를 더는 욕보이지 않길 바란다.

2위

<벤허>(Ben-Hur, 2016)
VS
<벤허>(Ben-Hur, 1959)

“1950년대 할리우드 스펙터클 경쟁이 낳은 장중한 대작”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1959년 <벤허>는 그야말로 할리우드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다. 흥행은 물론이고 아카데미 역대 최다인 11개 부문을 석권할 만큼 작품성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1959년 이전에 동명의 무성영화 버전이 있었지만, 그 기억은 이 작품을 통해 완전히 지워져버렸다. 이 위대한 작품이 ‘감히’ 리메이크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박평식 평론가의 평으로 마무리한다. “저열하고 천박한 리메이크.”

1위

<캐빈 피버: 블러디 홀리데이>(Cabin Fever: Reboo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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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피버>(Cabin Fever, 2002)

일라이 로스의 데뷔작 <캐빈 피버>는 외딴 산장에 놀러온 5명의 대학생들이 정체불명의 질병에 감염되면서 벌어지는 잔혹한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형을 캐스팅해 팔다리를 절단하게 만드는 비디오 영화를 찍을 정도로 호러영화 광이었던 일라이 로스는 70∼80년대 호러영화를 오마주한 이 작품으로 단번에 주목받는 호러영화 감독이 됐다. 2016년 리메이크작이 나왔는데 기술 발전 덕을 본 특수효과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게 전부다. 원작은 소재는 신선하지만 이야기는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메이크는 이러한 단점을 굳이 그대로 옮겨왔고, 창조적인 연출도 보이지 않았다. 로튼 토마토 평가지수 0%는 괜한 심술이 아니다.


<오션스 일레븐>(2002), 동명의 1960년 작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리메이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리메이크라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마케팅 없이도 원작이 이미 다져놓은 평판에 쉽게 몸을 얹을 수 있고 전작의 성공 여부를 통해 미리 영화 흥행을 예측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쉬운 길에는 함정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그 함정에 빠져버린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심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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