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만든 영화는 없다. 아무리 허접한 영화라도 그렇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부터가 고난이다. 힘들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촬영을 시작하게 되면 진짜 역경이 시작된다. 감독, 제작자의 바람대로만 진행된다면 뭐가 문제겠냐만 그런 현장은 지구상에 없다. 태풍이 불기도 하고 주연 배우가 심장마비에 걸리기도 한다. 감독은 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고 제작자는 한 푼의 제작비와 하루의 제작일정이라도 줄이기를 바란다.
해외 영화 매체 ‘콜라이더’가 힘든 제작 과정으로 유명한 9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영화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아보자.
<에이리언 3> (1992)
<에이리언 3>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왜냐면 <에이리언 3>에서 경험한 고난의 제작 과정 덕분에 다음 영화부터는 제작사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빗 핀처 이전에 <에이리언 3>의 감독이 있었다. <중세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연출한 빈센트 워드였다. 그는 <에이리언 3>의 ‘원안’(story) 제공으로 크레딧에 올라 있다. 워드 감독 버전의 <에이리언 3>는 독특했다.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중세와 비슷한 문명의 행성에 있는 수도원에 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리플리는 그 수도원의 유일한 여자라는 설정이다. 20세기 폭스의 중역들은 이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결국 시나리오는 월터 힐과, 데이빗 길러에 의해 수정되기 시작했다. 감독은 데이빗 핀처로 교체됐다. 워드 감독 버전의 이야기 골격은 유지됐다. 대신 중세 스타일의 목조건물을 정유공장으로 대체했다. 촬영이 시작되고 2주 후 데이빗 핀처의 가까운 동료였던 촬영감독 조던 크로넨웨스가 파킨슨병으로 하차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시나리오는 완성되지 않았다. 꼼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데이빗 핀처 감독은 일종의 쪽대본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중역들은 핀처의 뒤에서 흥행에 성공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에이리언 2>와 비슷하게 찍고 있는지 지켜봤다.
후반작업에서도 데이빗 핀처는 악조건을 이겨내야 했다. 스튜디오는 재촬영을 요구했고, 결말을 두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데이빗 핀처가 편집실을 나간 뒤 스튜디오 중역이 마음대로 결말을 편집해버렸다.
<에이리언 3>는 더 이상 데이빗 핀처의 영화가 아니었다. 데이빗 핀처도 자신의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개된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일부 호평을 받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서 데이빗 핀처는 “<에이리언 3>를 나보다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리언> DVD 박스 세트의 코멘터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 에이리언 3
-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시고니 위버
개봉 1992 미국
<본 아이덴티티> (2002)
<본 아이덴티티>는 제작 과정에서 감독과 제작사 간의 의견 차이가 꼭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본 아이덴티티>의 더그 라이만 감독과 주연 맷 데이먼은 액션 블록버스터에 참여해본 경험이 없었다. 두 사람은 기존의 액션 영화의 틀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더그 라이만 감독은 다큐멘터리처럼 액션 영화에 접근하는 선택을 했다.
촬영이 시작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유니버설 픽쳐스는 액션의 규모가 작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더그 라이만 감독과 각본가 토니 길로이는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개봉 날짜는 2001년에서 2002년으로 늦춰졌다. 시나리오 수정 때문에 촬영장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맷 데이먼은 프로듀서가 연출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왜냐면 감독은 시나리오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감독과 스튜디오의 갈등 지점은 영화의 후반부 프로세서(클라이브 오웬)와 제이슨 본이 대결을 펼치는 시골 농장 장면에서 비롯됐다. 스튜디오는 편집하길 원했고 감독과 각본가는 제이슨 본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편집을 거부했다. 수정을 거듭한 끝에 스튜디오와 감독이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제작 과정의 어려움으로 <본 아이덴티티>는 실패할 걸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본> 시리즈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액션 프랜차이즈의 시작이 됐다. 새로운 액션의 스타일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튜디오와 감독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다. 더그 라이만은 속편 감독이 되지 못했다. <본 아이덴티티>와 유사한 제작 과정을 거치면서 실패가 점쳐졌던 영화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있다. 역시 더그 라이만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 역시 성공했다.

- 본 아이덴티티
-
감독 더그 라이만
출연 맷 데이먼, 프란카 포텐테, 크리스 쿠퍼, 클라이브 오웬, 브라이언 콕스, 아데웰 아킨누오예 아바제
개봉 2002 미국, 체코
<죠스> (1975)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를 빨리 찍는 걸로 유명하다. 빨리 찍는다는 건 ‘제작비가 적게 든다’와 같은 말이다. 젊었을 때도 그랬을까.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20대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죠스>는 400만 달러의 예산이 책정돼 있었지만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900만 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유는 26살의 젊은 스필버그 감독이 실제 바다에서 촬영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제작자들은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다. 또한 특수 제작한 죠스가 얼마나 속을 썩일지 몰랐다.
촬영장에서 브루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죠스는 사실 더 일찍 영화에 등장하기로 돼 있었다. 제작비 조달이 늦어지면서 죠스의 등장은 늦춰졌고 스필버그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상어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촬영을 계속해야 했다. 사실 이게 <죠스>의 흥행을 이끈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
바다에서의 촬영은 연기되고 연기됐다. 마침내 바다로 나간 출연진과 제작진은 멀미에 시달리고 카메라는 고장나고 한번 촬영을 세팅하기까지 몇 시간씩 걸렸다. 55일로 예정됐던 촬영 기간은 159일로 늘어났다. 예산은 자꾸 초과됐다.
스필버그 감독은 다시는 감독 일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또 영화가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틀렸다. <죠스>는 역대 최고의 영화이자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됐다.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후 엄청난 영화들을 더 만들 수 있었다.

- 죠스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로이 샤이더, 로버트 쇼, 리차드 드레이퓨즈
개봉 1975 미국
<월드워 Z> (2013)
영화 결말의 스케일을 줄이기 위해 재촬영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월드워 Z>의 경우는 어땠을까.
<월드워 Z>의 라스트 신은 러시아에서 촬영됐다. 브래드 피트 캐릭터가 이끄는 ‘인간 군대’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좀비와 대결을 펼친다. 이 결말은? 영화에서 빠져버렸다.
촬영이 끝난 뒤 브래드 피트는 <로스트>, <프로메테우스>의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데이먼 린델로프에게 편집본을 보여줬다. 린델로프는 거대한 액션 대신 새로운 엔딩을 제시했다. 좀 더 드라마틱하고 캐릭터를 설명해줄 수 있는 엔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브래드 피트와 감독 마크 포스터, 스튜디오까지 이 의견에 공감하고 러시아 액션 엔딩을 과감하게 버렸다.
린델로프는 <마션>의 각본을 쓴 친구 드류 고다드와 함게 10일 동안 60페이지 분량의 새 엔딩을 썼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을 연출한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이 새 시나리오의 각색을 맡았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입김은 약해졌다.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 B’가 주도적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그 결과, <월드워 Z>는 성공했다. 새 결말부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훌륭한 장면이 됐다. <월드워 Z>는 데이빗 핀처 감독 연출로 속편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속편에서는 이런 재촬영은 없지 않을까.

- 월드워Z
-
감독 마크 포스터
출연 브래드 피트, 미레유 에노스
개봉 2013 미국
<타이타닉> (1997)
촬영 기간 내내 <타이타닉>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다. 예산 초과, 제작 난항,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불같은 성격까지. 모든 게 이 영화를 망작의 길로 이끄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엄청난 예산을 투여한 <타이타닉>은 역대급 망작이 될 줄 알았지만 역대급 흥행작이 됐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세상의 왕”(I'm the King of the world)이 됐다.
<타이타닉>은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주에 있는 거대한 물탱크 세트에서 촬영됐다. 이 촬영은 녹록지 않았다. 케이트 윈슬렛은 팔꿈치를 다쳤다. 또 물에 빠져 익사할까봐 촬영 기간 내내 두려움에 떨었다. 스태프들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한 스태프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다른 스태프들의 음식에 환각 성분 물질을 넣어서 50명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발생했다.
여러 악조건 속에 촬영 기간은 138일에서 160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제작비는 2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미 흥행의 불안 요소가 가득한 상황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3시간짜리 편집본을 20세기 폭스로 가져갔다. 폭스에서는 난리가 났다. 긴 러닝타임은 적은 상영횟수를 의미한다. 즉, 티켓 판매량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당연하게도 폭스에선 재편집을 요구했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거부했다. 폭스는 "당신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자신의 수익 지분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작품상을 비롯한 11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간 <타이타닉>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희생(!?)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 타이타닉
-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개봉 1997 미국
<론 레인저> (2013)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유명한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론 레인저>를 맡게 됐다. <캐리비안의 해적>보다는 아카데미 수상작인 서부극 애니메이션 <랭고> 덕분에 감독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어쨌든 디즈니는 <론 레인저>를 바다가 아닌 ‘사막의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새로운 시리즈로 구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론 레인저>의 촬영을 준비하면서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제작비가 무려 2억 5000만 달러까지 불어났다. 2011년 8월, 결국 디즈니가 제작 중단을 선언해버렸다. 버빈스키 감독은 제작비를 2억 1500만 달러까지 줄여야 했다.
촬영이 시작되고 다시 예산이 2억 5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날씨도 문제였다. 모래바람, 폭설, 돌풍이 몰아치기도 했다. 버빈스키 감독은 또 한 차례 예산 삭감을 위해 시나리오 수정에 들어갔다. 디즈니의 회장이 바뀌면서 윌리엄 피츠너의 캐릭터가 제임스 뱃지 데일 캐릭터의 심장을 먹는 장면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영화에 늑대인간이 출연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늘어나는 예산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던 <론 레인저>는 어떤 기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완성될 수 있었다. 흥행은? 실패했다. 2억 6000만 달러를 벌었다. 엄청 번 건데 그만큼 많이 썼기 때문에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사막 버전의 <캐리비안의 해적>은 모래바람처럼 사라졌다.

- 론 레인저
-
감독 고어 버빈스키
출연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아미 해머
개봉 2013 미국
<지옥의 묵시록> (1979)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은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완성된 영화다.
우선 촬영 기간이 1년이나 됐다. 1976년 5월부터 1977년 5월까지 진행됐다. 촬영 기간이 길면 제작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태풍으로 인해 한 달간 촬영을 진행했던 필리핀의 세트가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새로 세트를 완성하기까지 스태프들은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렇게 예산 초과가 시작됐고 코폴라 감독은 <대부>로 벌어들인 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주연 배우 말론 브란도도 문제였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커츠 대령을 연기한 그는 감독의 예상보다 뚱뚱한 몸으로 촬영장에 도착했다. 준비해놓은 의상이 맞지 않았다. 게다가 원작 소설인 <어둠의 심연>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코폴라 감독은 원작 소설 제목처럼 말론 브란도를 어둠 속에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또 윌라드 대위를 연기한 마틴 쉰은 촬영 도중 심장마비를 겪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실제로 술을 먹고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코폴라 감독은 후반 작업에서도 오디오 문제로 고충을 겪어야 했다. 어렵게 완성된 <지옥의 묵시록>은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에서는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촬영상, 음향효과상을 수상했다.

- 지옥의 묵시록
-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듀발, 마틴 쉰
개봉 1979 미국
<판타스틱 4> (2015)
시리즈 리부트 영화 <판타스틱 4>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캐스팅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인비저블 우먼/수잔 스톰과 남매 관계인 조니 스톰 역에 마이클 B. 조던이 캐스팅된 것이다. 수잔 스톰 역의 케이트 마라는 백인, 마이클 B. 조던은 흑인이다. 남매인데 인종이 다르다.
프로듀서 허치 파커와 각본가 겸 제작자 사이먼 킨버그가 새로운 엔딩을 촬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5개월 후 결국 실제로 재촬영이 결정됐다. <판타스틱 4>의 연출을 맡았던 조쉬 트랭크 감독은 촬영장에서 술이나 약물에 취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이런 이유에선지는 알 수 없지만 조쉬 트랭크는 <스타워즈> 앤솔로지 영화에서 하차해야 했다.
조쉬 트랭크 감독과 <판타스틱 4> 제작진과의 사이는 크게 틀어졌고 일종의 디스전이 벌어지는 양상도 있었다. 닥터 둠을 연기한 토비 켑벨은 “조쉬 트랭크 버전의 엔딩이 훌륭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개된 영화에서는 재촬영 된 분량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기존 촬영분과의 이질감이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케이트 마라의 가발 착용 유무로 구분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판타스틱 4>는 악평으로 자자했다. 만들지 말았어야 할 작품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어쨌든 사이먼 킨버그는 속편을 제작할 거라고 말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 판타스틱 4
-
감독 조쉬 트랭크
출연 마이클 B. 조던, 케이트 마라, 마일즈 텔러, 제이미 벨, 토비 켑벨
개봉 2015 미국
<빽 투 더 퓨쳐> (1985)
할리우드에서 캐스팅이 번복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이런 사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영화가 <빽 투 더 퓨쳐>다.
<빽 투 더 퓨쳐>는 4년 동안 제작 준비만 했다. 제작사들은 이 영화를 거부했다. 시간여행을 통해 엄마와 사랑에 빠지는 아들이라는 설정은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빽 투 더 퓨쳐>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이클 J. 폭스가 원래 마티 역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TV 시리즈 <사랑의 가족>(Family Ties)의 출연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에릭 스톨츠가 마티 역을 맡았다. 촬영을 진행하는 와중에 저메키스 감독과 제작자인 스필버그 감독은 이대로는 영화가 제대로 나오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에릭 스톨츠는 속된 말로 잘렸다.
마이클 J. 폭스를 데려오기로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마이클 J. 폭스는 <사랑의 가족>과 <빽 투 더 퓨쳐>를 함께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폭스는 <사랑의 가족>을 더 우선시해서 주중 일과시간에 촬영했다. <빽 투 더 퓨쳐>는 저녁 6시 반부터 새벽 2시 반까지 촬영을 허락했다. 야외 분량은 주말에 찍었다. 이런 촬영 일정은 배우와 감독은 물론 스태프 전체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빽 투 더 퓨쳐>는 개봉 이후 어마어마한 성공을 만들어냈다. 저메키스 감독은 속편을 연출하게 됐고, 이때는 처음부터 마이클 J. 폭스와 함께할 수 있었다.

- 빽 투 더 퓨쳐
-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마이클 J. 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리 톰슨, 크리스핀 글로버, 토머스 F. 윌슨
개봉 1985 미국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