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성덕, 제임스 카메론이 결국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었습니다. <딥씨 챌린지>는 그간 제임스 카메론이 심해에 관해 가열차게 덕질해 온 기록과 심해용 잠수정을 직접 만들어(!) 지구에 현존하는 가장 깊은 해구까지 다녀온 탐험기를 아우른 다큐멘터리입니다.

나는 탐험을 겸하는 영화감독일까, 영화를 겸하는 탐험가일까?

<딥씨 챌린지>의 전반부는 심해 탐험에 매료된 제임스 카메론이 지난 작품들을 만들며 실험한 내용과 기술적 진보에 관해 소개합니다. 후반부는 비로소 완성된 잠수정 '딥씨 챌린저'가 마리아나 해구 한복판, 챌린지 딥을 탐사하는 경이로운 과정을 묘사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소년이던 19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탐험' 열풍이 불던 때입니다. 전쟁이 종식되고, 인류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빠른 속도로 세계를 확장했습니다. 구소련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로 쏘아 올렸고, 이에 질세라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냈습니다. 1960년엔 미 해군의 트리에스테호가 지구 최대 수심의 마리아나 해구 챌린지 딥 탐사에 도전했으나 수압에 의한 창문 균열로 20분 만에 잠수를 마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0,911m를 잠수해 인류 최초로 심해 잠수에 성공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인류 최초로 챌린지 딥 탐사에 도전한 유인 잠수정 트리에스테호와 잠수정에 탄 해군 돈 월시, 자크 피카르

어린 시절, TV 속 트리에스테호의 탐험에 매료된 소년 제임스 카메론은 상자를 잠수정이라 상상하며 해구 탐사를 꿈꾸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TV 프로그램 <자크 쿠스토의 바닷속 세계>의 애청자였고, 16세 때 당시엔 드물게도 스쿠버 자격증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50여 년이 지났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중년이 되었을 때까지도 마리아나 해구 탐사는 1960년에 비해 진보한 바가 없었습니다.
 
독서광이자 SF물을 탐닉하던 소년 제임스 카메론은 일찍부터 로켓, 비행기, 탱크 등을 직접 만들며 놀았습니다. 좀 더 자라 16mm 카메라를 손에 넣은 뒤엔 직접 만든 장난감들로 여러 특수효과를 실험하며 촬영을 연습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로저 코먼의 뉴 월드 픽처스에 입사한 뒤엔 <피라냐 2>(1981)의 연출로 장편 데뷔했으나 제작자의 심한 간섭으로 인해 여러모로 끔찍한 영화로 완성됐고, 혹평에 시달렸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에겐 지워버리고 싶은 흑과거겠으나 어쨌든 바다 영화로 감독 데뷔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합니다. 다행히 <터미네이터>(1984)와 <에이리언 2>(1986)의 대성공으로 제임스 카메론은 취향껏 본격적인 테크놀로지 실험에 돌입합니다.

<어비스>

<어비스>(심연, 1989)는 극악한 제작 과정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의 꿈의 프로젝트의 시작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작품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고등학생일 때 심해 다이빙에 관한 강연을 듣고 떠올린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배우들은 촬영 시작 전 잠수부 자격증을 따야 했고, 촬영용 수조의 물에 미생물이 자라 물이 변색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염소를 과하게 사용해 배우들의 머리카락이 심각하게 탈색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대역을 쓴 장면이 거의 없어 배우들이 죽을 고생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에드 해리스가 전신 잠수복을 입은 채로 토하는 일이 있었다느니, 제임스 카메론을 때렸다느니 온갖 루머가 떠다니지만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합니다….) 다이빙 수트가 고장나 제임스 카메론 본인이 수조 바닥에서 익사할 뻔한 사태도 있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이때 개발해 사용한 물 특수효과는 다음 작품인 <터미네이터 2>(1991)에서도 훌륭히 쓰이게 됩니다. <어비스>는 수중 촬영 역사상 최초로 사운드 동시녹음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타이타닉> 촬영 현장의 배우들과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1997)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제임스 카메론은 1995년, 직접 심해 탐험에 나섭니다. 영화 초반에 바닷속에 침몰한 타이타닉호가 보이는 장면은 실제로 대서양에 잠겨 있는 타이타닉호를 직접 찍은 것입니다. 그 장면의 촬영을 위해 제임스 카메론은 동생이자 스턴트 스태프인 마이크 카메론과 강력한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심해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하기까지 했습니다.
 
물에 대한 그의 집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2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속 탐험가가 된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 때 만난 심해 기술자들을 다시 모아 제2차 세계대전 중 북대서양에 가라앉은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호의 잔해에 관한 법의학적 연구를 마쳤습니다. 연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입항 허가가 늦어져 러시아 선박에 열흘이나 더 머물고 있던 때, 제임스 카메론은 해양을 더 심층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장비의 개발에 관해 생각하게 됩니다. 딥씨 챌린저의 아이디어는 여기서부터 탄생했습니다.

<비스마르크호의 비밀>
<고스트 오브 어비스>
<에이리언 오브 더 딥>

'탐험가' 제임스 카메론은 비스마르크호를 취재한 <비스마르크호의 비밀>(2002), 수장된 타이타닉호의 안팎을 촬영한 IMAX 다큐멘터리 <고스트 오브 어비스>(2003), 대서양과 태평양 심해를 탐사한 <에이리언 오브 더 딥>(2005) 등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몰두합니다. 33번의 잠수를 성공한 세 차례의 타이타닉호 잔해 탐사(1995년, 2001년, 2005년)와 한 차례의 비스마르크호 잔해 탐사, 대서양과 태평양, 코르테스 앞바다에서 이루어진 세 차례의 열수구 탐험까지 일곱 차례의 심해 탐사를 마친 직후였습니다. 그 사이엔 해양 로봇 장비와 3D 카메라 시스템, 수중 조명, 스풀링 광섬유 통신 시스템도 공동 제작했습니다. 이때쯤 탐험가로 완전히 전직하기 위해(!) 영화감독을 그만둘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만두었으면 <아바타>(2009)는 나오지 못했겠지요.

<아바타>

<아바타>를 준비하던 무렵부터 제임스 카메론은 티타늄, 유리 섬유 강화 플라스틱, 세라믹 등 세상에 알려진 최강도의 재료들을 공수해 딥씨 챌린저 제작에 들어갑니다. 1960년의 챌린지 딥 탐사에서 멈춰 있던 마리아나 해구 탐사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딥씨 챌린저는 수직 잠수를 위해 수직 어뢰 모양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해저에 도달해 천천히 움직이며 바다 생물과 박테리아, 지형을 관찰하는 시간보다 챌린지 딥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해수면까지 올라오는 왕복 약 22km의 거리가 훨씬 긴 여정의 목적에 부합하는 설계였습니다. 딥씨 챌린저는 수직적인 여정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챌린지 딥에서 올라올 때 시간당 약 13km의 속도를 내도록 고안되었습니다. "군용 SUV가 엄지발가락을 누르는 수준의 압력"을 견디게 하도록 구체 디자인에만 3년이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트리에스테호와 마찬가지로 잠수정 내부는 압력에 가장 잘 견디는 형태인 구체로 주조되었습니다. 11km 깊이의 챌린지 딥은 에베레스트 산을 거꾸로 세운 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네 개를 지어도 해수면에 닿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균열이라도 생긴다면 "50만분의 1초 안에 가루가 되어버릴" 상황이었습니다. 표본 채취용 기계식 팔과 거치대, 침전물을 채취할 중력 코어, 3D 카메라 등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예상과 가설이 항상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연구엔 불규칙적인 차질이 생겼고, 혁신적인 장비를 만드는 과정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간신히 길이 7m, 무게 11.5톤의 잠수정 딥씨 챌린저를 완성했지만 수중에서도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야 했습니다. 시드니 항구 부두 근처, 시드니 남부 저비스베이, 파푸아뉴기니 솔로몬해, 괌 등에서 점차 강도를 높여 시험 잠수를 시도했고 그 사이에 통신 시스템의 결함과 과도한 열 생성 문제, 컴퓨터 코드 오류로 인한 잠수 시스템의 결함 문제 등을 발견해 고쳐나갔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제임스 카메론과 딥씨 챌린저 개발에 함께했던 동료 앤드류 와이트와 수중영상감독 마이크 디그루이가 시험 잠수 중인 딥씨 챌린저의 항공샷을 찍다가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 순간을 "인생 최악의 날"이라 회고했습니다.

연구는 계속되어야 했고, 제임스 카메론은 마침내 딥씨 챌린저의 시험 잠수까지 모두 마치고 챌린지 딥 탐사에 나서게 됩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불과 1.1m의 조종실 안에 웅크린 채 지구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지점을 지나자 사방이 고요해지고 아무런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세 시간 가량을 머물러 1.6km 정도의 해저 탐사를 마치고 무사히 해수면으로 올라왔습니다. 예정된 탐사 시간은 5시간이었으나 해저에서 우현의 수평 추진 엔진과 유압기를 잃는 바람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챌린지 딥에서 채취해 온 샘플에서는 68종의 새로운 해저 생물이 발견되었고, 새우처럼 생긴 한 단각류는 알츠하이머병의 시험의약품에서 사용하는 복합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챌린지 딥에서 올라오자마자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 3D>의 런던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지구의 가장 깊은 곳, 마리아나 해구 챌린지 딥은 그저 궁금해서라는 이유로는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오랜 세월에 걸쳐 불가능에 도전한 이유는 숱한 쓰나미와 지진으로 지구의 땅이 심하게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해구 탐사의 필요가 적극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994년, 파푸아뉴기니의 타부르부르 화산과 불칸 화산이 폭발한 일은 인근 라바울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유럽 지역에 기후 변화의 대재앙을 일으켰습니다. 이때의 기후 변화는 지금까지도 지구에 발생하는 기상 이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화산의 폭발은 곧 해구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앞으로 인류를 강타할 지진과 쓰나미, 기상 이변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해구 연구가 필요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말합니다. "바다보다 우주 탐사에 훨씬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 바다는 지구라는 우주선에서 가장 거대한 생명 공급 시스템이지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바다를 지속적으로 망가뜨리고 있으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지구와 인류에겐 제2의, 제3의 제임스 카메론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딥씨 챌린지

감독 존 브루노, 레이 퀸트, 앤드류 라이트

출연 제임스 카메론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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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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