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화가 실사화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장르 규정이 불가하고 저질 병맛 개그가 난무하는 만화 <은혼>이 스크린에 살아났습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예매 오픈 10초 만에 매진되는 진기록을 보이고, 지난 7월 일본에서 개봉 후 2017년 개봉 실사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하는 등 국내 정식 개봉(12월 7일) 전부터 <은혼>의 팬들을 가슴 뛰게 만들었는데요. (나도 그들 중 하나~) 오늘은 만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긴토키 바보가 된 에디터의 사심 덕심 가득 포스팅입니다.


우선 원작부터 간단히 알아볼까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연재하고 있는 소라치 히데아키의 작품으로, 우주에서 외계인(천인)이 내려와 폐도령이 시행된 에도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전근대와 미래가 공존하는 어지러운 세상에 사무라이 정신을 간직한 긴토키와 그의 조수 신파치(일명 안경), 괴력소녀 카구라가 해결사 사무소를 운영합니다. 만화는 패전한 전쟁영웅, 몰락한 사무라이, 가출 소녀, 막부의 개가 된 경찰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을 다루는데요. 영화는 원작의 황금 장수풍뎅이 에피소드와 홍앵 편을 가져와 재가공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긴토키의 절친 카츠라가 행방불명되고, 연이어 발생하는 의문의 사건들이 불멸의 검 홍앵과 관련된 것을 알게 되며 해결사 3인방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한 원작의 세계관

일단 외계인이라니? 배경은 에도시대지만 설정은 판타지죠. <은혼>은 말도 안 되는 병맛 유머와 온갖 패러디가 종횡무진하는 작품임과 동시에 만화적인 리액션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것이 만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한 것이 아닌데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영화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지만, 이 어려운 일을 후쿠다 유이치 감독이 해냈습니다.

영화 <변태 가면>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은 특유의 개그감과 독보적인 병맛 연출력으로 국내에서도 마니아 팬이 꽤 많은 감독인데요. 소라치 히데아키 작가가 "후쿠다 유이치 감독이라면 맡겨도 괜찮다"고 신뢰를 보여준 만큼 그는 <은혼>의 견고한 세계관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해냅니다. 감독은 원작 속 마을을 비롯해 해결사 사무소, 만물상, 침실의 작은 소품, 캐릭터 의상의 원단까지 체크하며 디테일한 요소에 공을 들였고, 배우들은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 과장된 연기를 한껏 보여주며, 외계인은 대놓고 탈을 쓰고 나옵니다. 감독은 <은혼>의 영상미에 대해 "실사적인 느낌보다 애니메이션에 근접하게 가져갔다. 예를 들어 때리는 장면에서 일부러 슬로우 효과를 넣어 만화적으로 표현했다"고 했죠. 덕분에 영화를 보고 있으면 스크린을 통해 만화책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초호화 캐스팅과 놀라운 싱크로율

만화의 실사화는 원작 속 캐릭터들을 얼마나 생생하게 살려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죠. <은혼>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는데요. 화려할 뿐 아니라 싱크로율이 또 어마어마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주요 인물들을 한 명씩 살펴볼까요.

오구리 슌(사카타 긴토키 역)
파르페와 딸기우유를 사랑하고 시도 때도 없이 코 파는 게 낙인 바보 같은 사무라이지만 주인공입니다. 과거 사무라이 세력과 천인 세력이 충돌했던 양이전쟁 때 백야차라 불렸을 정도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전투력이 아주 강해지죠. 오구리 슌은 긴토키의 구불구불한 은발과 옷차림, 무심한 표정까지도 완벽히 재현해냈습니다.

스다 마사키(시무라 신파치 역)
안경, 아니, 신파치입니다. 영화는 긴토키와 신파치의 첫 만남을 그리며 시작됩니다. 신파치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긴토키의 조수가 된 신파치, 그는 유명 사무라이 가문의 자손이지만 폐도령이 내려지며 도장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데스노트> 시리즈 등에 출연하며 일본에서 가장 핫한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스다 마사키가 신파치로 분했습니다. 안경만 쓴 것 같은데 싱크로율 200%인 것!

하시모토 칸나(카구라 역)
캐스팅 소식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역할이죠. '천년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하시모토 칸나가 괴력소녀 카구라로 분했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카구라는 무지막지한 대식가! 라멘을 무려 한 입에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특급 매력을 선보였습니다.

나가사와 마사미(시무라 타에 역)
신파치의 누나 시무라 타에는 청순한 얼굴을 가졌지만 흉폭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스틸컷에서처럼 아련아련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도 일순간 단전에서부터 걸걸한 목소리를 끌어올려 소리 지르는 등 나가사와 마사미는 이런 이중적인 성격의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해냈습니다.

오카다 마사키(카츠라 코타로 역)와 엘리자베스
즈라 아니고 카츠라입니다. 긴토키의 죽마고우이자 양이전쟁을 함께 한 전우죠. 알 수 없는 생명체 엘리자베스와 꼭 붙어 다닙니다. 카츠라를 연기한 배우 오카다 마사키는 영화 <우주 형제>에서 오구리 슌과 형제 호흡을 맞춘 바 있으며 이번에도 두 사람은 특급 케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사람이 인형 탈을 쓴 채로 나오는데요. 이 어색함과 조악함을 오히려 영화 내에서 셀프디스하며 웃음으로 승화시킵니다.

사다하루
엘리자베스와 함께 <은혼>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죠. 카구라의 대형 애완펫 사다하루입니다. 엘리자베스와 달리 사다하루는 100% CG로 완성되었습니다. 

도모토 츠요시(타카스기 신스케 역)
타카스기 신스케는 긴토키, 카츠라와 어린 시절 절친임과 동시에 역시 양이전쟁을 함께한 전우입니다. 원작과 영화 속에서는 두 사람과 대립관계로 나오죠. 타카스기를 연기한 도모토 츠요시는 개인적으로 가장 고대한 배우입니다. 도모토 츠요시 때문에 이 영화가 보고 싶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요. 그는 20년 차 아이돌 그룹 킨키키즈의 멤버로, 이 작품을 통해 12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했습니다. 오구리 슌과는 드라마 <썸머 스노우> 이후 16년 만에 함께하게 된 작품입니다. 보라색 머리, 기모노, 안대, 담뱃대 등 디테일한 요소와 함께 특유의 서늘한 눈빛과 말투로 타카스기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냈습니다.

눈을 사로잡는 검술 액션

병맛 개그가 난무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어쨌든 액션 영화! 영화 속 가장 화려한 볼거리는 검술 액션입니다. 영화 <청년경찰>에 참여했던 장재욱 무술감독이 오구리 슌의 추천으로 합류하며, 아크로바틱을 결합한 장면을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바람에 따라 스타일리시한 액션에 독특한 모션을 추가해 '은혼'만의 액션 스타일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의 전통 검술과 난투 액션이 어우러지며 후반부 함선에서 펼쳐지는 대결 장면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거 저작권 괜찮은 걸까?

재밌게 보고 있으면서도 왠지 저작권이 걱정되는 부분이 한 두 장면이 아닙니다. 원작에서도 위험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대목들이 영화에서는 빠지는 것 아닐까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물론 원작에서만큼 방대하게 (게임, 애니메이션, 예능 프로그램, MC, 배우, 아나운서 흉내 등)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오프닝에서 <꽃보다 남자>의 "마~키노"를 따라 한 것부터 시작해 <기생수>의 오른쪽이, <원피스>의 악마의 열매, <기동전사 건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드래곤볼> 등 다양한 작품들을 언급하며 패러디했습니다. 덕분에 일본 만화나 문화에 대해 잘 아는 관객들은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만, 반대로 전혀 모르는 분들이라면 머리 위에 물음표만 잔뜩 띄우고 극장을 나설 수도 있습니다.

은혼

감독 후쿠다 유이치

출연 오구리 슌, 스다 마사키, 하시모토 칸나, 나가사와 마사미, 오카다 마사키

개봉 2017 일본

상세보기

이외에도 오프닝 장면에 한글이 나오고,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오구리 슌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등 꿀잼 포인트가 곳곳에 있습니다. 원작 만화의 팬으로서 <은혼>은 여러가지로 만족스러운 첫 실사영화였습니다. 현지에서의 흥행과 함께 내년 여름에는 후속편 <은혼 Part2>가 제작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죠.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오구리 슌이 긴토키를 연기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어서 만화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보며 2편 나오기만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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