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중의 덕은 아무래도 영화감독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취향을 영화에 담아 덕밍아웃 제대로 한 성공한 덕후 감독들을 모았습니다.


봉준호
▶ 만화 덕후

한국 대표 영화감독인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텔링 밑바탕엔 만화책이 있었습니다. 홍대 근처에 있는 만화 서점 '한양툰크'는 봉준호 감독이 자주 가는 단골 서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국열차>의 원작 만화를 만난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선 채로 만화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간 끝에 영화화를 결심한 것이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혔을 때는 19세기 영국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다룬 만화 <프롬 헬>을 읽고 실마리를 찾아냈습니다.

그의 덕후의 흔적은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설국열차> 원작자들이 내한해 함께 대담하는 자리에서는 원작자들에게 프랑스에서 자주 들르는 만화 서점을 추천해주며, 이곳에 한국 만화도 많다며 글로벌한 덕밍아웃을 해버렸고요. 과거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으러 간 곳에서 만화가 길창덕씨를 본 뒤 "지팡이 짚고 시상대 오르시는 모습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옥자> 콘티, 대학시절 <연세춘추>에 연재했던 만평

그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상상력의 원천은 '만화'라고 얘기해 왔는데요. 실제로 자신의 영화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리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그 퀄리티가 한 권의 만화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요. 알고 보니 대학 시절 학교 신문에 만평을 연재하며, 이미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니 언젠가는 만화책도 발간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설국열차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이완 브렘너, 알리슨 필, 고아성

개봉 201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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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
▶ 해양 탐사 덕후

제임스 카메론의 해양 탐사 덕질은 존경을 넘어 경이롭습니다. 덕질의 기록을 남기려고 영화를 찍는 게 분명해 보이는 그의 필모 속 작품들을 나열해볼까요?

제임스 카메론이 고등학교 때 심해 관련 강의를 들으며 떠올린 아이디어로 시작된 <심연>(어비스)은 수중 촬영 역사상 최초로 사운드 동시 녹음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타이타닉>을 준비하기 위해 심해 탐사에 나서 잠겨있는 실제 타이타닉 호를 직접 촬영했습니다.

2002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속 탐험가로 선정되어 가라앉은 전함 비스마르크 호의 잔해에 대해 심해 기술자들을 모아 연구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토대로 <비스마르크 호의 비밀>, <심해의 영혼들>, <에이리언 오브 더 딥> 등 다큐멘터리를 쏟아내는데요. 최근엔 지구상 가장 깊은 곳으로 잠수에 도전하는 <딥씨 챌린지>를 내놓았습니다. 탐험가로 전직을 위해 영화감독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는 그! 언젠가 진짜 그럴지도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이 글에 다 담기 어려운 그의 어마어마한 덕질 이력들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딥씨 챌린지

감독 존 브루노, 레이 퀸트, 앤드류 라이트

출연 제임스 카메론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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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셔젤
▶ 재즈 덕후

<위플래쉬>, <라라랜드> 두 편의 장편 영화로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감독이 된 데이미언 셔젤. 두 영화들을 봤다면 그가 재즈 덕후임을 모를 수 없습니다. <위플래쉬>, <라라랜드>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만든 저스틴 허위츠는 그와 대학 시절부터 덕질(?)을 나눈 친구였습니다. 둘은 인디밴드 '체스터 프렌치'를 결성해 활동했는데요. 클래식 음악과 재즈가 가미된 부드러운 록 음악을 주로 연주했습니다. 이들의 퀄리티는 당시 대형 음반사의 계약 제안을 받을 정도였는데요. 그러나 그들은 영화 제작에 도전합니다. 둘은 데뷔작인 흑백 재즈 뮤지컬 영화 <공원 벤치의 가이와 매들린>을 시작으로 <위플래쉬>, <라라랜드>에서 영화감독과 영화 음악을 맡아 재즈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위플래쉬>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고등학생 시절 스튜디오 밴드에서 재즈 드러머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밴드 지휘자였던 모델을 과장해 만든 캐릭터가 <위플래쉬>의 플랫처(J.K. 시몬스) 선생이었죠.

위플래쉬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개봉 201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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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 클래식 덕후

박찬욱 감독은 소문난 클덕입니다. 고전 음악, 실내악, 교향곡,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적 소양은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박찬욱 감독은 함께 작품 하는 배우들에게 클래식 CD를 선물한다고 합니다. <아가씨>에 출연했던 배우들도 박찬욱 감독에게 클래식 CD를 선물 받은 사연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의 감정 몰입을 돕기 위해 촬영 시작 4개월 전 직접 음악을 선정해 녹음한 클래식 CD를 선물을 주었다고 해요. 박찬욱 감독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클래식 FM 라디오 진행을 해보고 싶다고 털어놓기도 했죠.

그의 영화에서도 클래식 음악은 아주 중요하게 쓰였는데요. <친절한 금자씨>의 명장면인 "너나 잘하세요" 대사 후 비발디의 칸타타 '그만두어라. 이제 끝났다' 중 2악장이 삽입되어 흘러나왔었고요. 최근작 <아가씨>에서 백작(하정우)이 낭독회에 가입하는 장면에선 바로크 작곡가 라모의 클라브생 작품집 1권 중 9번 '탕부랭'이, 히데코(김민희)와 백작의 식사 장면에서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가 흘러나왔습니다. 이외에도 <올드보이>, <박쥐>, <스토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 결정적 순간에는 늘 클래식이 함께했습니다. 그는 "제 영화에는 바로크 음악을 많이 썼지만 평소 교향곡을 많이 듣고 지휘자는 가리지 않는다"며 폭넓은 클래식 애호가임을 입증했습니다.

아가씨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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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 철도 덕후

신카이 마코토의 아름다운 작화에 꼭 들어가는 배경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철도입니다. 물론 감독 본인이 철도 오타쿠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덕밍아웃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의 그림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걸 보면 관심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는 "나가노에 살던 무렵 열차를 볼 기회가 많아서 좋아했고, 철도가 지나가는 서정적인 장면을 좋아할 뿐" 마니아나 오타쿠로 부를 수준은 아니라고 딱 잘라 대답했습니다. (사실 일본의 진짜 철도 덕후들은 엄청난 급이라는 소문 듣긴 했습니다.)

덕후가 아니라는 겸손한 말과 다르게 그의 작품엔 철도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는데요. <초속 5센티미터>에서 극중 배경인 1995년 2월의 실제 운행 시간표 책자를 세밀하게 표현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불과 15초 분량의 광고에서도 마니악한 최신형 하이브리드 디젤동차를 등장시키기도 했다는군요. 이 정도면 이제 그만 덕밍아웃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초속5센티미터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미즈하시 켄지, 하나무라 사토미, 오노우에 아야카

개봉 200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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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
▶ 톨킨 덕후

피터 잭슨은 "톨킨의 세계를 영화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마음속에 소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감독이 이 프로젝트에 저 대신 참여하는 것은 보기 힘들 것"이라 단언할 정도로 톨킨에 대한 무한 사랑을 밝혔습니다. 톨킨은 소설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입니다. 피터 잭슨은 톨킨의 유족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허락을 받아내 영화화에 성공하고, 흥행과 평단 모두를 사로잡습니다. 누가 뭐래도 그는 가장 성공한 톨키니스트(톨킨 덕후)입니다.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감독 피터 잭슨

출연 일라이저 우드, 이안 맥켈런, 리브 타일러, 비고 모텐슨, 숀 애스틴, 케이트 블란쳇

개봉 2001 뉴질랜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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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에이브럼스
▶ 스타워즈 덕후

영화 팬덤계에서 스타워즈 덕후, 이른바 스덕들의 지분은 어마어마합니다. 많은 영화인들이 스타워즈 덕후임을 덕밍아웃 해왔는데요. JJ. 에이브럼스 감독도 그중 한 명입니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으로 <스타트렉> 시리즈를 흥행에 성공시켰던 그. 그러나 <스타트렉> 시리즈의 기존 팬들로부터 '스타워즈 덕후가 영화를 만드는 바람에 <스타워즈> 같은 영화로 바뀌었다'는 안타까운 질타를 받습니다. 결국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하차하고 제작자로만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감독을 맡으며 참아왔던 덕심을 마구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32년 만에 제작하는 시리즈라 명성이 부담되긴 했지만, 스타워즈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감독 J.J. 에이브럼스

출연 해리슨 포드, 마크 해밀, 캐리 피셔, 도널 글리슨, 그웬돌린 크리스티, 사이먼 페그, 오스카 아이삭, 막스 폰 시도우, 존 보예가, 데이지 리들리, 아담 드라이버

개봉 201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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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조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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