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상 생일은 다르다? 앞서 이정재의 생일이 (1972년) 12월 15일이라고 했지만, 그의 호적상 생일은 1973년 3월 15일입니다. 정우성도 1973년생으로 둘은 동갑내기 절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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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다 도회적인 외모와 학력(숭의초등학교, 청담중학교, 현대고등학교 졸업)만 보면 왠지 고생이 뭔지 모를 것 같은 이미지가 팡팡 풍기는데요. 그의 양친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친할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후 연달아 낙마하며 정작 그는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냅니다.
집안의 물건들이 가압류당하고,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고등학교 땐 등록금을 내지 못해 선생님에게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또한 친형이 자폐증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는 이에 대해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안 힘들어본 사람 정말 아무도 없다"며 다부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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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연기가 아닌 건축, 미술 분야의 일을 꿈꿨습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 미술 선생님은 그가 학원에서 무료로 입시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미대에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아트스쿨과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 공부에 힘쓰게 됩니다. 이때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압구정동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손님으로 온 매니저의 눈에 들어 모델로 캐스팅되죠.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그렇게 모델의 길을 걷던 그는 1993년 크런키와 가나쵸코렡 광고로 초콜릿계를 점령하며 청춘스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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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로 스타덤에 오르다 그의 필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모래시계>입니다. 이 드라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정재도 없었겠죠.
<모래시계>에서 여주 고현정을 짝사랑하는 순정마초 보디가드 백재희를 연기하며 1995년 SBS 신인상을 거머쥡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 <아스팔트 사나이>의 정우성과 공동 수상을 했다는 것이죠. 인연이란 것은 신기한 것!
드라마가 끝난 후 폭발적인 인기를 견디지 못한 그는 자원입대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군 제대 후 또 한 번 터닝포인트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에게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준 영화 <태양은 없다>가 바로 그것!
이 작품은 이정재의 배우 인생에 있어 매우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우선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죠. 그의 나이 27살로, 청룡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의 기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신인상으로 인연을 맺게 된 정우성과 호흡을 맞춘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절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는데요. 두 사람은 지난해 소속사 아티스트 컴퍼니를 함께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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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몸짱 열풍을 불러오다 권상우와 비 이전에 이정재가 있었습니다. 1994년 영화 <젊은 남자>에서 근육질의 몸을 내보이며 국내에 몸짱 열풍을 불러오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