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화계는 슈퍼히어로의 전성시대다. 전성시대라는 말로는 부족할 수 있겠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은 새로 나올 마블의 영화, DC의 영화에 열광한다. 어느새 슈퍼히어로 영화는 영화시장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2018년 기대작에 <블랙 팬서> <엑스맨: 뉴 뮤턴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데드풀 2> <앤트맨 앤 와스프> <베놈> <엑스맨: 다크 피닉스> <아쿠아맨>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해외 매체 ‘콜라이더’는 슈퍼히어로 영화 장르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영화 10편을 소개했다. ‘장르를 정의한 10편의 슈퍼히어로 영화’다. 영화 리스트를 살펴보며 나름 수긍할 만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해 소개한다. 아이들의 유치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류가 되기까지의 여정이다.


슈퍼맨 (1978)
만화책이 아닌 영상으로 만난 슈퍼맨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 시작은 1940~50년대 미국 TV 시리즈인 듯하다. 그럼에도 많은 영화팬들은 크리스토퍼 리브가 출연한 1978년작 <슈퍼맨>을 기억한다. 크립톤 행성의 조엘 역으로 말론 브란도, 렉스 루터 역으로 진 핵크만 등이 출연하기도 한 <슈퍼맨>은 현대적 의미의 슈퍼히어로 영화의 시작이라고 봐도 좋겠다. 브라운관으로 보는 TV 시리즈와의 큰 스크린으로 보는 <슈퍼맨>의 차이는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냈다.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시각특수효과를 이용한 이 영화는 하늘을 나는 슈퍼맨을 정말로 그럴싸하게 보여줬다. 물론 당시로는 혁신적인 비주얼이었다. 또한 TV 시리즈의 유치한 코미디보다는 진지한 슈퍼맨의 정체성을 고민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슈퍼맨

감독 리차드 도너

출연 말론 브란도, 진 핵크만, 크리스토퍼 리브, 마곳 키더

개봉 1978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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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1989)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이라면 늘 배트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새로운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 구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악당, 빌런의 역할이 크게 부각됐다.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는 이후 히스 레저가 연기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 그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최고의 빌런으로 남아 있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팀 버튼의 <배트맨>은 명백한 성인 취향의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배트맨

감독 팀 버튼

출연 마이클 키튼, 잭 니콜슨, 킴 베이싱어

개봉 1989 미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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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2000)
2017년 개봉한 <로건>을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올드 팬이라면 2000년 개봉한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의 추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유주얼 서스펙트>로 단숨에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감독이 된 싱어는 <엑스맨>의 감독직을 맡기로 했을 때 솔직하게 고백했다. 자신은 코믹스의 팬이라고 말이다. 이 고백은 꽤 의미심장하다. 코믹스 원작을 ‘영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코믹스의 요소를 차용한 ‘영화’를 만드는 시도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비교하자면 일본의 만화 원작 애니, 극장판의 과정과 <엑스맨>의 제작 과정은 달랐다. 코믹스는 극장판이 아닌 영화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콜라이더는 “위신(prestige)을 얻을 수 있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슈퍼히어로 영화로 돈을 벌 명분을 찾았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스파이더맨 (2002)
<스파이더맨>은 위험한 도박과도 같았다. B급 영화인 <이블 데드> 시리즈의 감독 샘 레이미를 감독으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잭팟이었다. <스파이더맨>은 <엑스맨>과 같은 접근법으로 제작된 슈퍼히어로 영화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 연령대가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부응하듯 <스파이더맨>은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성적이 보여줬다. <스파이더맨>은 주말 수익 1억 달러를 넘긴 첫 영화가 됐다. 또 1억 1400만 달러의 주말 수익 기록은 4년간 깨지지 않았다. <스파이더맨>의 놀라운 점은 또 있다.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엑스맨>을 통해 유치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든다는 짐을 덜어버린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스파이더맨>을 통해 비평의 지지와 함께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다.

스파이더맨

감독 샘 레이미

출연 토비 맥과이어, 윌렘 대포, 커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랭코, 클리프 로버트슨, 로즈마리 해리스, J.K. 시몬스

개봉 200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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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우먼 (2004)/엘렉트라 (2005)
할리 베리의 <캣우먼>과 제니퍼 가너의 <엘렉트라>는 안 좋은 쪽으로 장르를 정의한 영화에 속한다. <스파이더맨>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급하게 슈퍼히어로 영화를 준비했다. 흥행 포인트는 여성 슈퍼히어로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후 여성 슈퍼히어로 영화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2017년의 <원더 우먼>이 나올 때까지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영화적인 완성도와 재미일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갤 가돗 주연의 <원더 우먼> 속편과 브리 라슨 주연의 <캡틴 마블>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캣우먼

감독 피토프

출연 할리 베리, 벤자민 브랫

개봉 2004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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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렉트라

감독 롭 보우먼

출연 제니퍼 가너, 테렌스 스탬프, 윌윤리, 고란 비스닉, 캐리 히로유키 타카와

개봉 2005 캐나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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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2005)
드디어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그가 누구냐고? 다 알지 않나?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콜라이더는 <배트맨 비긴즈>를 설명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을 필름메이커(Filmmaker)라고 표현했다. 감독(Director)과는 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 앞서 소개한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를 크리스토퍼 놀란은 완벽하게 리부트해냈다. 게다가 그것은 무비(Movie)가 아닌 시네마(Cinema)의 영역이었다. 무비와 시네마의 차이는 감독과 필름메이커의 뉘앙스 차이와 비슷해 보인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소개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더 이상 아이들을 위한 유치한 영화에서 벗어난 수준이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진지하게 각잡고 봐야 하는 영화라는 뜻이다. <배트맨 비긴즈>는 신나게 팝콘 씹으면서 떠들며 볼 수 있는 영화가 절대 아니었다.

배트맨 비긴즈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마이클 케인, 리암 니슨, 케이티 홈즈, 게리 올드만, 킬리언 머피, 톰 윌킨슨, 룻거 하우어, 와타나베 켄, 마크 분 주니어, 라이너스 로체, 모건 프리먼

개봉 200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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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2008)
<다크 나이트>는 정점이다. <배트맨 비긴즈>의 완벽한 리부트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 나이트>를 통해 슈퍼히어로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콜라이더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슈퍼히어로 영화를 통해 전쟁과 테러를 얘기하고 있다”고 썼다.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철학’이라는 용어를 접목시켜도 좋을 것 같다.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 메시지뿐만 아니라 <다크 나이트>는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를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이 완벽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보탠다면 아직까지 <다크 나이트>의 경지에 이른 슈퍼히어로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정점을 넘어설 영화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다크 나이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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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2008)
2008년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해가 아닐까 싶다. 거대한 흐름의 변화가 이뤄진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크 나이트>가 찍은 정점 이후 DC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마블 천하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화책 회사였던 마블이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슈퍼히어로 영화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언맨은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보다 훨씬 지명도가 떨어지는 슈퍼히어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또한 <아이언맨>의 성공으로 인해 지금은 익숙하고 당시로는 생소했던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이하 MCU, Marvel Cinematic Universe)가 시작될 수 있었다.

아이언맨

감독 존 파브로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테렌스 하워드, 제프 브리지스, 기네스 팰트로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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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2012)
MCU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가상 세계가 됐다. 어떻게 보면 영화가 TV 연속극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전편의 쿠키영상의 떡밥은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로 기능한다. 쿠키영상이 아니라도 MCU의 떡밥은 영화 곳곳에 숨어들었다. 전편을 보지 못하면 특정 장면의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팬들은 이런 요소를 찾아내는 재미를 알게 됐고 적극적으로 영화를 즐기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의 영민함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면에서 <어벤져스>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실 골수 마블 코믹스 팬이 아닌 대다수의 국내 관객들은 슈퍼히어로들이 한 영화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등 여러 슈퍼히어로가 뭉친 <어벤져스>는 또 다른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DCEU와 같은 또 다른 슈퍼히어로 세계관의 탄생을 부추겼다. <어벤져스>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 마블 영화는 영화시장의 절대적 강자,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어벤져스

감독 조스 웨던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에반스, 마크 러팔로, 제레미 레너, 사무엘 L. 잭슨, 톰 히들스턴

개봉 201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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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2016)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이들 영화라는 낙인을 지우고, 영화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마지막 하나의 관문을 지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관문은 ‘성인용’이라는 등급이다. 사실 미국에서는 R등급, 국내에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2004년 개봉한 <퍼니셔>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R등급 슈퍼히어로 영화로 <데드풀>을 기억할 것이다. 등급이 높아진다는 의미는 그만큼 잠재 관객의 감소를 뜻한다. 이 위험 요소를 감수하고도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위상이나 시장이 커졌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점이 있다. 팬들이 더 다양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드풀>의 시도는 성공으로 끝이 났다. 이 성공으로 인해 <로건>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데드풀>은 슈퍼히어로 장르의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조만간 LGBT 슈퍼히어로도 등장할지 모른다.

데드풀

감독 팀 밀러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개봉 201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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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